38년만에 복귀한 문숙 "60살 됐으니 인생 불꽃 피워야죠"

이현진 기자 / 2015-08-13 15:32:15
"이만희 감독, 사람을 사랑한 분…되돌아온 촬영현장서 숨통 트여"


[부자동네타임즈 이현진 기자] 1970년대 중반에 활약하다가 홀연히 영화계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던 은막의 스타 문숙(61)이 38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복귀작인 '뷰티 인사이드' 개봉을 꼭 1주일 앞둔 13일 문숙은 수십 년 공백이 무색하게 여전히 이국적인 외모와 시원한 미소를 자랑하는 '천생 여배우'의 모습으로 인터뷰 장소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배우의 자태는 세월과 관계없는 듯하다고 첫 마디를 건네자 문숙은 "미국에서 지내던 젊은 시절에는 해변에 가도 남들처럼 누워 있지 못했다"며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지만 그랬어요. '내가 대한민국에서 배우를 하던 사람이라는 긍지가 있지' 했던 거죠. 한국에서 배우 활동을 한 시간이 7년인데 그게 나라는 사람의 '퍼스낼러티(personality)'에 한 배경이 된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편안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는 자유롭고도 열정적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그런 성격이었는지 묻자 "아니었다"고 했다.

"그때는 소심하고 괜히 스트레스받는 성격이었어요. 영화 할 때도 '남들이 나보다 잘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했죠. 그래도 연기는 무조건 재미있었어요. 우리가 잘 놀아야 영화도 잘 나오거든. 우리가 행복하게 찍어야 보는 사람도 즐거워요."



그렇게 즐거운 연기생활은 '뭐가 뭔지도 모를'만큼 그에게 갑자기 찾아왔다. 그는 연기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시절 TBC 드라마 '세나의 집' 주연으로 데뷔했다.

"트레이닝만 계속 받을 때 서미경(미스 롯데 출신 배우)씨가 그 드라마 주연을 하다가 베트남전 위문 공연을 갔다가 못 돌아오는 바람에 녹화 '펑크'를 낸 거예요. 갑자기 '어어?' 하면서 제가 투입된 거죠. 어린 나이에 집과 촬영장만 오가게 됐으니 저는 그때 포장마차 한번을 못 가봤어요. 멍게라는 걸 먹어본 게 이번에 한국 들어와서가 처음이라니까요. (웃음)"

영화에서도 이만희 감독의 '태양 닮은 소녀'(1974)를 시작으로 처음부터 주연만 맡았다. 그는 뭐가 뭔지 알아차릴 틈도 없이 당대의 스타들과 함께 연기를 하는 황홀함에 빠졌다고 했다.

"강부자·신성일 선생님 같은 분들 연기할 때 옆에 있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다는 것보다…. 이번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는 강부자 선생님은 다시 만나뵀는데 어디 있다가 이제 왔느냐고 눈물을 글썽이시더라고요."

이후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처럼 펼쳐졌다. 그는 '태양 닮은 소녀'에 이어 '삼각의 함정'(1974), '삼포 가는 길'(1975)에 잇따라 출연한 이만희 감독의 '뮤즈'였다.

작품 밖에서도 사랑에 빠진 둘은 23살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배우 문숙은 이만희라는 영화감독을 '거장이라는 말이 부족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천재적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을 때도 모든 삶을 영화로 대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삶을 볼 때 다 영화의 장면 장면으로 봐요. 사람을 볼 때는 다 자기 배우로 보고요. 한 사람이 가진 캐릭터, 그 사람의 분위기를 그렇게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남녀를 떠나 인간애라는 걸 가졌던 거죠. 높낮이도 없어요. 청계천 다리 밑에 노숙자들을 찾아가서 소주를 마시고 그랬어요. 그런 게 자기 영화에도 나타나는 거예요. 그 사람을 만난 사람은 누구나 그를 좋아했어요."

결혼 1년 만에 이 감독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둘의 사랑도 막을 내렸다.

그는 2007년 내놓은 산문집 '마지막 한해'에서 이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부터 사별 이후의 절절했던 마음까지 고백한 바 있다.

"예상을 하고 가셨으면 준비를 했을 텐데…. 그분이 워낙 과묵해요. 어디 아프다거나 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그걸 감지하기엔 어렸던 거 같고."

사별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자 그는 담담하게 "그건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나의 삶의 한 부분으로 승화된 것 같아요. 성남 분당에 감독님 묘가 있는데 혜영이(이 감독의 딸인 배우 이혜영)도 나도 가끔씩 가봐요. 혜영이가 감독님 돌아가셨을 때 어렸으니까 감독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다른 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데, 저도 한국에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 감독 사후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미대에 진학했다. 결혼과 이혼 사이에 두 아이를 얻었고 뉴욕과 산타페에서 화가로서 활동을 이어 갔으며 틈틈이 명상과 요가, 자연치유식 등을 공부하고 가르쳤다.

한곳에서 4∼5년씩 머물며 살던 그는 하와이에서는 가장 긴 10년간 머물렀고 현재 한국에서는 1년 넘게 지내고 있다.

그는 아주 최근까지도 배우 시절 들고 다녔던 화장품 가방을 버리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을 떠날 때는 다시 돌아올지 말지 생각을 할 틈도 없었어요. 막상 거기에 갔으니까 실패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공부를 했던 거고. 언제부턴가 화가로 살면서는 배우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았어요. 그때는 '남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내 역할을 우아하게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죠."

'뷰티 인사이드' 출연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이뤄졌다. 알고 지내던 배우 한효주가 자신이 출연할 작품인데 제작사에서 그의 출연을 바란다며 다리를 놓고 나선 것.

"저는 주어진 상황에 '노(No)'를 잘 안 해요. 다 삶의 체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요. 좋은 기운만 있다면 소중한 삶의 선물로 생각해요."

그렇게 시작한 작업은 1분 1초가 즐거웠다고 한다.

"무지하게 재밌더라고요. (웃음) 내가 놀던 물이잖아요. 숨이 막 쉬어지더라고. 영화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다는 따뜻한 느낌은 획기적일 정도였어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묻자 그는 "무엇에든 열려 있다"고 했다. "시간은 선물"이기에 일단 한국에서의 삶을 풍족하게 누릴 계획이다.

"가방 한 개 가지고 왔는데 이제 두 개로 늘어났어요. 하와이에 있는 집은 관리하는 데 손이 많이 가서 정리를 했어요. 어느 순간 그 집이 나를 소유하고 누가 주인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그대로 산다면 끝이 보이잖아요. 그렇게 조용히 지내다가 가겠구나…. 내가 60살이 된 지금, 내가 나를 위해서 불꽃을 피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평생 누군가를 돌보는 삶을 살았는데, 이제 부모님도 안 계시고 아이들도 (장성해) 날아가고 나만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거잖아요. 내게 주어진 시간이 삶의 선물이니까 어떻게 후회 없이 꽃피울 것인가 생각했고 여기에 있죠. 아침에 눈을 뜨면 '나만을 위해 어떻게 살까'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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