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 다음 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할 것인지가 우리 외교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박 대통령이 이 행사에 참석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일본 교도통신의 보도도 있었다. 우리 정부와 미국 백악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미국 정부가 이 행사에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이 행사에 초대받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직 참석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불참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그 방증이다. 특히 이번 행사에 '열병식'이 포함된 데 대해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단순한 기념 퍼레이드 차원을 넘어 중국이 군사적 패권을 대외에 과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의 대대적인 행사 개최가 아시아 주변국에 '반일 정서'를 고취해 미국의 대(對)아시아 전략에 차질을 빚게 하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미국이 중국의 군사적 패권 과시에 경계심을 갖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행사가 한미일 동맹의 균열을 조장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은 미국보다는 일본 측의 논리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 측이 박 대통령의 기념식 불참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일본 언론을 통해 처음 보도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한 번쯤 의구심을 가져볼만한 대목이다.
일본은 미일동맹 못지않게 중일관계 개선에 외교적 방점을 두어왔다. 지난 4월 반둥회의 때 필사적으로 중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이나, 미쓰비시가 한국인 강제 노역 피해자는 외면하면서도 중국 노동자에게는 보상을 해 주겠다고 나선 것도 중국의 환심을 사려는 조치였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중국의 승전 기념식을 전후해 방중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왔다. 하지만 중국 측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 등의 조건을 내걸자 어쩔 수 없이 이를 포기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들은 끊임없이 중국과 관계 개선을 도모하면서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 일본이다. 더욱이 종전 70주년 기념식에 과거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한국과 중국 지도자가 한데 모이는 것 자체가 일본에는 큰 부담일 것이다. 이를 훼방 놓으려고 일본 측은 '박 대통령 기념식 참석=한미일 동맹 균열'이라는 논리를 개발, 전파하고 있는듯하다.
일본은 그간 여러차례에 걸쳐 우리와 미국 사이에서 '이간질' 외교를 벌여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책임론을 명확히 지적해 왔던 미국 조야에서 올해 초부터 '한국 피로증'이 불거진 것은 일본의 다각적인 로비 때문이었다. 요란스런 미일 동맹 강화가 한미 동맹의 약화로 해석됐던 것도 일정부분 일본의 책략에 휘말린 결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남북 간 대결이 고조될수록 우리의 선택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외교 현실이 일본의 이간질 외교가 통하게 하는 토양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외교 안보 당국자들은 되돌아 봐야 한다.
한중 역사 인식 공유가 표면화된 것은 근원을 따져보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행보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역사·영토 도발이 없었다면 한일 관계가 이처럼 악화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중 간 역사 인식 공유는 이슈조차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오는 14일 발표될 아베 담화에서도 자신들의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회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철저한 한국 무시 기조하에 우리 외교를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일본의 책략에 우리 당국이 더 이상 놀아나선 안 된다. 미중 간 신형 대국관계 형성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심화하고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실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우리 외교의 전략적 목표는 명확하다. 원칙을 지키면서 유연함과 순발력을 발휘하는 외교력이 지금 우리에겐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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