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환 칼럼] 공자가 사람 고기를 먹었다는 설에 대해

부자동네타임즈 / 2015-03-20 20:31:11

△주장환 소설가

주장환 소설가(사진) < 논어익는 마을 촌장>


최근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공자가 사람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인의예지를 중시하는 공자가 인육을 먹었다는 주장은 뜬금없어 보였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니 단순히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 연유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 이유는 단순히 공자에 대한 흠집내기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의 식인역사는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어린 시절 드라큐라나 사람 잡아 먹는 이야기는 동네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야간용 단골 메뉴이기도 했다.


대부분 인류문명의 무덤 밑에는 잔인하게 물어뜯긴 흔적이 역력한 인간의 뼈가 보인다. 가장 오래된 식인 잔혹사는 중국 베이징 인근의 저우카우덴의 한 동굴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사람의 살을 발라내고 뼈의 골수를 빨아 먹었다.

 

이들은 뇌수도 뽑아 먹었는데 태국 등지에 여행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그 곳에서 원숭이의 뇌수를 뽑아 파는 것을 봤을 것이다.


파푸아 뉴기니아 등지에서는 부모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시신을 먹는다. 뉴기니 기미족 여인들이 죽은 남편을 먹으면서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자.


“우리는 남자가 썩게 버려두지 않아요. 우린 그를 측은하게 여겨요. 나에게 오세요. 그러면 당신은 땅위에서 썩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몸이 내 안에서 한 몸이 되게 해주세요.” 이 외침을 자세히 들어보면 눈치빠른 독자들은 아하!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그래! 그렇다. 이들에게 식인은 단백질이나 지방을 보충하려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이들이 남편과 부모, 자식, 형제자매의 시신을 먹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다. 바로 죽은 자의 영혼과 육체를 고스란히 자신의 몸속에 간직하려는 종교적 의미인 것이다.

 

이들은 바로 영적이거나 사회적인 아이덴디티를 위해 사람을 먹은 것이다. 그것은 윤리에 가깝다. 바로 그들 나름의 예(禮)인 것이다.


기미족 여인들은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영혼을 붙잡고자 했으며 자산의 생식능력을 증강시키고 사내아이를 낳기 위해 식인을 했다. 사람 고기는 바로 신의 음식이며 신과 만나는 산파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1991년에 만들어져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자신의 환자 9명을 살해한 다음 살을 뜯어 먹는 흉악범 렉터는 배고파 사람의 살을 먹는 게 아니라 식인대상자의 힘을 빼앗는 의식을 메타포로 전달한다.


인간에게 영적세계로 가는 핵심의 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명상과 깨달음. 무와 공의 절대적 만남, 신에의 의지 등이 그런 것들이다.

 

기미족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의 식인행위가 모두 영적세계로 이어지는 열쇠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후 이런 생각들이 종교와 철학의 식민지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식인에 대한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대체로 인류가 곤궁했던 시기나 전쟁이 잦았던 시기에 이런 식인행위가 있어 왔다고 유추하면 거의 틀림이 없다. 심지어 3년간 시묘살이 하는 것도 누군가가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서양문화의 정전이라는 '오디세이아'에는 무시무시한 식인종 레스트리고네스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인도의 칼라티아이인은 부친을 식인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으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중국 복주(福州)에서의 식인풍습이 기록돼 있다.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손 크루소'나 유성룡의 '징비록'에도 언급되고 있다.


성경에도 <또 왕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너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니 그녀가 대답하기를 “이 여인이 내게 말하기를 ‘네 아들을 내놓으라. 오늘은 우리가 그를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으리라.’ 하기에, 우리가 내 아들을 삶아 먹고 다음 날 내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 아들을 내놓으라. 우리가 그를 먹으리라.’ 하니 그녀가 자기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더라>(왕하 6:28,29). <가련한 여인들의 손이 자기 자식들을 삶았으니 내 백성의 딸이 멸망할 때에 그 자식들이 그들의 음식이 되었도다>(애 4:10)라는 글들이 보인다.


1920년 -30년 사이에 국내신문들을 보면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 여자를 사서 아이를 낳게 한 후 간을 꺼내 먹으려다 잡힌 사건도 있다. 당시 동아일보는 <소녀 간을 빼내기 위해 중국인이 계집애를 산채로 가슴을 째고 간을 꺼낸 혐의로 체포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 인육시장에 많은 소녀들이 팔려간다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근세에도 중국 국공내전 기간인 1948년 5월부터 10월 사이, 창춘시내에 인육을 파는 상점이 나타났으며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엔 광서성에서 홍위병들이 137명의 반혁명분자를 붙잡아 식인 페스티벌을 벌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건국 이후 청나라 멸망 때까지 식인의 기록이 사기(史記) 등에 숱하게 언급되고 있다. 사기에는 은나라의 주왕이 신하들을 ‘해(醢/인체를 잘게 썰어 누룩과 소금에 절인 고기)’, ‘포(脯저며서 말린 고기)’, ‘자(炙구운 고기)’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노신의 ‘광인일기’나 ‘수호지’ 등에도 언급돼 있으며 노신은 식인풍습을 중국의 ‘2대악’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공자가 식인을 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인터넷 카페 pgr21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불해’라는 분에 따르면 ‘중국의 식인문화' 라는 책을 쓴 대만출신(일본서 활동)의 황문웅이라는 사람이 퍼뜨린 것이라고 한다.


이 사람에 따르면 중국의 식인문화가 생겨난 이유로 중원을 둘러싼 격한 쟁투에 따른 잔혹한 형벌제도의 탄생과 사람을 잡아먹는 형벌이 성문법으로 제정되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잦은 기근과 천재지변, 전쟁, 농업기술낙후로 인한 식량부족 등이 맞물리면서 확산되었다고 한다.


신불해는 앞서 언급한 우왕의 이야기와 공자를 황문웅이 연결시켜 생긴 조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즉 황문웅은 <중국에선 이전부터 음지에서 식인 풍습이 있었다☞그러니 당대에도 식인 풍습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니까 그 시대에 살던 공자도 식인을 했을 것이다>라는 유치한 해석으로 공자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불해는 또 황문웅 "일본 극우로 난징대학살, 중국침략 등도 모두 부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참고로 황문웅이 쓴 책을 살펴보니 대충 이런 종류였다.


▲ 황문웅의 책 '한국과 중국이 죽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근현대사


‣만주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다(満州国は日本の植民地ではなかった)
‣중일전쟁은 침략이 아니다(日中戦争は侵略ではなかった)
‣근대중국은 일본이 만들었다(近代中国は日本がつくった)
‣한국은 일본인이 만들었다(韓国は日本人がつくった)
‣대만은 일본인이 만들었다(台湾は日本人がつくった)
‣한국・북한을 영원히 침묵시킬 100문 100답(韓国・北朝鮮を永久に黙らせる100問100答)


신불해의 주장처럼 황문웅은 거의 미치광이 수준의 국수주의자로 아베보다 단수가 더 높은 인물로 추정된다.


공자가 ‘해’를 즐겨 먹었다는 설은 <공자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 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자로의 시신이 해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집안의 해 단지를 모두 엎어 버리게 했다.

 

그리곤 이후 식탁에 해가 올라오자 "내가 차마 어찌 이걸 먹겠느냐"고 탄식하며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 이야기는 공자의 언행 및 제자와의 대화를 기록한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내용이다.


물론 이 문장을 보고 공자가 인육을 먹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황문웅은 “이후 해를 먹지 않았다”는 문장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볼 수 있다. 즉 ‘이후’란 말이 나오는 것은 ‘이전’에 먹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300 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란 책을 를 쓴 김택민이란 분은 ‘당육전’을 인용해 해를 <사슴, 토끼, 양, 물고기로 담그는 젓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인류역사에 식인풍습은 광범위하다. 중국 못지 않게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고기를 즐겨 먹는 유럽에서도 기아와 전쟁 등으로 인한 식인행위는 생존을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공자가 인육을 먹었는냐 안 먹었느냐?”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 그가 인류의 모범이 되는 성인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 대답이 지금 우리의 상식적 판단을 뛰어넘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든 죽은 자의 영혼과 육체를 간직하려는 종교적 의식이든 섣불리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삶은 절규에 맺힌 자화상이었으며 음식은 생명을 불어넣는 야성의 에너지였다.

진화의 단계에서 대부분의 종(種)들은 위험이나 기회를 본능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넘어가거나 캐치해 나간다. 모든 시대의 사람들은 당시 행동에 대한 실용적이고 철학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근거를 제시하는 데는 충분히 어떤 가책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양심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일에 대한 판단은 시대적 상황과 그 때의 환경 및 도덕적 기준 등 여러가지가 고려돼야 한다.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피레네 산맥 이쪽에 있는 정의가 저쪽에서는 불의가 된다”고 했다.


역사 속 ‘데카메론’을 수없이 보아왔던 진정한 인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알아야 된다고 허용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음식에 대한 금기(개를 먹지 말라, 소를 먹지 말라 등)는 종교나 관습에 기초한 윤리적 규범을 보여주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놓여져 있는 아픔을 일부러 끄집어내 상처를 만들지 않으며, 다만 신성한 정신을 지켜봄으로써 인류의 아픔을 치유해준다. 그것이 군자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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