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를 자문하는 전문가 기구가 6일 공개한 보고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정치학자·언론인·기업인 등 16명으로 꾸려진 자문기구는 보고서에서 "일본이 무모한 전쟁으로 여러 나라에 피해를 줬다"며 침략과 식민지배는 인정하면서도 사죄는 권고하지 않았다.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1920년에 일정의 완화도 있었고 경제성장도 실현됐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과혹화(過酷化) 됐다"고 평가했다. 과혹은 '지나치게 참혹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어렵고 생뚱맞은 단어를 보고서에 굳이 인용한 저의가 뭔지 궁금할 따름이다. 보고서는 또 "서구, 미국, 러시아, 일본은 세계를 식민지로 삼았다. 지금은 허용할 수 없는 가치관이지만 열강은 발전한 나라들이 '야만', '미개'의 지역을 문명화하기 위해 식민지화한다는 구도를 세계에서 보편화하려고 했다"고 적었다. 마치 19세기 말 일본을 풍미했던 후쿠자와 유기치의 '탈아론'(脫亞論·아시아에서 벗어나 구미열강의 일원으로 참여하자는 주장)을 다시 접하는 느낌이다.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해 많은 비서구 식민지인들에게 용기를 줬다"며 조선 식민지화의 단초가 된 러일 전쟁 승리를 찬미하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압권은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을 온통 한국에 전가하면서 한국의 대일정책을 '이성과 심정(감정) 사이에서 요동쳐 왔다"고 규정한 대목이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이성적으로는 국제정치에서 협력해야 할 나라지만, 심정적으로는 부정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회와 망언, 사죄와 강변을 오가는 일본은 어떠한가.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과했다가, 위안부를 창녀로 비하하고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며 역사 수정주의의 길을 걷는 일본의 이중성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일본인에게 한국은 이성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한 이웃이지만, 감성적으로는 짓밟고 무시해도 되는 나라가 아닌 것인지 말이다.
한국에는 일본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일본을 편드는 사람도 있고, 배척하는 사람도 있다. 극일을 해야 한다는 사람도, 반일을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일본 역시 혐한론자와 친한론자가 공존한다. 근대화 시절엔 정한론(한국 정벌론)이 일본 정계의 대세인 때도 있었다. 그 넓은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고, 지금의 한일 관계 악화를 한국 386세대의 반일감정 때문이라는 둥, 박근혜 대통령의 엄격한 대일자세 때문이라는 둥 하면서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는 온당치 못하다. 공개될 것을 전제로 한 보고서에 "한국이 1987년 민주화된 뒤에 대일본관이 심정으로 변했다"고 적시한 것은 한국내 이념적 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지금 아베 정권은 보편성과 타당성 어느 것 하나 확보하지 못한 채 '강한 일본'만을 외치는 감성정권으로 외부에 비치고 있다. 오죽하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같은 보수의 원조마저도 "역사의 부정적 부분을 직시할 용기와 겸허함을 가지라"고 아베 총리에게 충고했겠는가. 일본내 최대 발행부수의 보수지 요미우리 신문도 "총리는 침략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사죄의 표현도 아베 담화에 포함하라"고 촉구했다. 유엔을 포함한 전 세계의 일치된 목소리 역시 아베 총리에게 과거사를 왜곡하지 말고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명백히 사과하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와 그 주변이 자신들만의 '심정의 세계'에 몰입돼 이성의 외침을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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