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벼랑 끝에 몰렸던 팬택이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스스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폐지를 신청했던 팬택은 파선 선고 하루 전인 16일 법원이 옵티스 컨소시엄의 팬택 인수를 허가하면서 다시 재기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팬택의 관리인과 옵티스 컨소시엄 사이에 양해각서가 체결됨에 따라 옵티스의 팬택 실사를 거쳐 다음 달 17일까지는 인수합병(M&A) 투자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라고 한다. 옵티스 컨소시엄은 '희망 고문'만 했던 과거의 인수 후보들과는 달리 이행보증금(계약금)으로 20억원 가량을 미리 내는 등 진지한 자세를 보이고 있어 기대가 더욱 크다. 하지만 그동안 누구도 선뜻 팬택 인수를 결정하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 같다.
'벤처 신화'의 상징인 팬택은 정보기술(IT) 붐의 태동기였던 1991년 설립된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거대 기업의 틈바구니에서 독창적이고 사용자친화적인 모델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우리나라 제3위, 세계 5위의 휴대전화 생산업체로 발돋움했다. 스카이폰 모델들은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이 형성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중견업체의 한계, 그리고 스마트폰으로의 급속한 진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쇠락을 길을 걸었다. 자업자득인 면이 크지만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이 기술과 패기만으로 경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팬택이 24년동안 구축한 기술력과 노하우, 마케팅 능력은 여전히 사장시키기 아까운 귀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지난 10년간 연구개발(R&D)에 투자한 금액만 2조5천억원에 달하고 등록 및 출원특허는 2만건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팬택의 현재 시장가격은 1천억에 불과하다고 하니 헐값 중의 헐값인 셈이다.
이런 가격에도 지금까지 인수자를 찾지 못한 것은 애플, 삼성, LG 등 거대기업이 호령하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팬택 정도 크기의 기업이 틈새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저가 시장은 샤오미를 필두로 한 중국 업체들이 맹렬하게 장악해가고 있으니 어떻게 생존전략을 짜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팬택처럼 벤처로 출발한 국내 IT 기업 옵티스가인수에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세계적 IT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삼성전자 출신들이 팬택 인수를 주도하는 것도 재기의 희망을 부풀게 하는 요소이다. 옵티스의 이주형 사장이 삼성전자 출신이고, 옵티스의 대주주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끄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스카이레이크'이다. 진 전 장관은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었다.
팬택 내부에서는 옵티스의 인수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앞서 3차례의 매각 시도가 모두 무산됐기 때문이다. 금년 초에도 한국계 미국 자산운용사인 원밸류에셋매니지먼트 컨소시엄이 수의계약 방식으로 인수를 추진하다가 막판에 포기해 직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번에 옵티스는 계약금을 미리 내는 등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하지만 인수 가격, 고용 승계 등 많은 난제가 남아 있고 실사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견될 수도 있는 만큼 안심하기는 이르다. 벤처 신화의 자존심, 국가자산인 IT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1천100명 팬택 직원들의 생존권이 달린 만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멋진 타협을 이뤄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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