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야당 지지하면 빨갱이 소리, 예전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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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스4·13 르포> '朴의 아성' 대구 최대, 서문시장의 표심은 |
시장(市場·market)은 경제용어다. 재화·서비스(용역)가 거래되어 가격이 결정되는 장소를 말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시장은 입소문의 진앙이자, 치열한 경쟁지다. 정치에서 시장은 곧 '민심'이다. 특히 선거의 측면에서 '표심'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시장을 찾는다. 선거 때는 승패를 결정짓는다. <포커스뉴스>는 4·13총선을 5주 가량 남겨두고 전국 16개 광역시도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을 찾는 '르포-시장민심(市場民心)'을 시작한다.(편집자 주)
(대구=포커스뉴스) 대구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에 갈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힘이 펄펄 솟는다. 야당 의원, 이어 이명박 대통령과 맞서던 시절, 대선·총선 등 큰 선거 때마다 서문시장에서 기(氣)를 받았다. 이 시장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텃밭인 대구·경북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이다. 한마디로 '박의 아성(牙城)'이다.
요즘 대구는 유승민 의원을 둘러싼 '진박 논란', 김부겸 전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숙원을 이뤄낼 수 있을지 등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이런 대구의 민심, 특히 서문시장을 찾은 서민들의 목소리를 8일 들어봤다. '역시나 TK는 새누리'라는 인상을 지울순 없었지만, "나라가 망해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말까지 한 유권자는 없었다. 반대로 지역주의를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 "불쌍한 우리 대통령…싸움질만 하는 야당, 싫다"
서문시장의 상인들과 장 보러 나온 대구 시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한목소리로 '국민은 먹고사는 고통으로 아우성인데 정치는 권력 싸움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지지 정당을 묻는 말에는 여러 목소리가 나왔다. 새누리당을 향한 지지세가 뚜렷한 가운데 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도 눈에 띄었다.
"새누리당이 좋지. 박근혜가 얼마나 잘하는데 숭(흉)만 볼라카면 안돼" 서문시장에서 만난 이덕희(87·여)씨는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칭찬했다. 9살부터 대구에서 살았다는 이씨는 야권을 향해 "맨날 싸움만 하려한다"면서 "니 잘했니 내 잘했니 하며 정치는 하지 않고 싸움만 자꾸 해쌌노"라며 쓴소리를 했다.
서문시장에서 20년간 정육점을 운영해온 유순옥(60·여)씨도 "야당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며 손사래를 쳤다.
유씨는 "야당이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것만 반대해야지 무조건 반대하니까 이번 야당만은 정말 싫다"면서 "너무 터무니없이 다 반대하니까 싫다"고 말했다. 야당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이다.
그는 동구을에서 4선을 노리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유씨는 "내가 태어난 곳이 동구고 지금도 친정이 동구을에 있다"면서 "나는 (유승민 4선)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씨는 "어제(7일) 모임에 가서 보니까 민심이 유승민은 아니더라"라면서 "그쪽에선 이재만 후보자를 많이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이유를 묻는 말에 유씨가 내놓은 답은 "인간적인 면에서 배신자라는 느낌"이라는 것.
유씨는 대구·경북(TK) 지역의 비박계 현역 의원들을 물갈이 해야 한다는 'TK 물갈이론'에 대해 "당연히 물갈이해야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이 당시 여당 원내대표이던 유승민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를 한다고 일갈했다. 이후 '진박 논란'이 총선 내내 대구지역을 관통하고 있다.
대구에서 40여년간 살아온 손미자(57·여)씨는 "새누리당도 있어야 하지만 야당도 있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어떨 때는 (야당이) 너무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손씨는 "반대도 좀 적당히 해서 합의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면서 야당을 비판했다.
여당 지지자인 손씨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잘하리라고 우리가 믿고 뽑았다"면서 "잘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굉장히 힘든 시기를 맞이한 것 같아 안쓰럽다"며 "힘든 일 하고 있다. 같은 여자로서 후원한다"고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 "예전 야당 지지하면 빨갱이, 지금은 달라"…지역주의 타파 목소리도
이처럼 대구에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우세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대구 민심에서는 '지역주의의 균열'도 느껴졌다.
야당 지지 목소리는 기존 여야로 양분된 진영 논리와 단순히 지역에 근거를 둔 정당 지지를 거부하는 시각에서 비롯됐다.
3대째 대구에 터잡고 살고 있다는 권영태(37)씨는 "나는 새누리당을 아주 싫어한다. 새누리당이 우리나라에서 퇴출당했으면 좋겠다"며 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권씨는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여당은) 거짓말도 많이 하고 공약도 지키지 않는다. 대통령이 공약한 것을 자기네가 엎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예전에 대구에서 야당을 지지하면 빨갱이라 그래서 지지를 드러내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드러내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새누리당 지지율이) 90%까지 나오던 것도 지금은 그만큼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예전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구 토박이라고 자신을 밝힌 김성태(34)씨 역시 더민주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젊은 층은 아무래도 더민주를 많이 지지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내 주위에도 새누리당보다는 더민주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장에 오는 손님 중에서도 박근혜 정부에 대해 크게 실망해 새누리당은 안 되겠다고 결론 내린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박중기(21·가명)씨는 "따로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야당을 뽑을 것"이라고 했다. 박씨는 그 이유로 "대구 쪽에 극단적으로 말해서 일당 독재라는 말까지 있다"면서 "나 한 사람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여당이) 경각심을 갖고 잘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야당을 뽑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박 대통령에 대해 "2000년대 들어 최악의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면서 "경제·외교 무엇 하나 뚜렷한 성과를 낸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TK 지역 내 '진박(眞朴·진실한 박근혜의 사람)연대' 논란에 대해서도 "진박·친박이라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을 이어갔다.
박씨는 "박 대통령이 자꾸 관여하는데 삼권분립을 생각하면 잘못된 것 아닌가"라며 "사람 됨됨이나 공약이 아니라 대통령을 내세워서 맹목적으로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면서 " 대통령 이름 팔아서 민심이나 표심을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60년을 살아온 이원환(60)씨 역시 "친박이나 비박 이런 파벌 싸움은 없어져야 한다"면서 "친박·비박 이런 식으로 하니까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총선에서 정당보다 인물을 보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찍어주고 싶다"면서 최근 괜찮은 인물로 수성갑에 출마하는 더민주의 김부겸 후보를 꼽았다.
◆ 서문시장·평화시장…대구 민심의 바로미터
<포커스뉴스>가 대구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8일 찾은 곳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서문시장과 평화시장이다.
서문시장은 5000여명의 상인이 4600여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대구 최대 전통시장이다. 위치는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인 중구와 김상훈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 서구에 속해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서문시장을 방문한 데 이어 지난해 9월에도 이곳을 방문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해 9월, 3년 만에 시장을 다시 찾은 박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환영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서문시장이 있는 지역 국회의원인 김희국·김상훈 의원을 초청하지 않아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이들 두 의원은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한다고 비판한 유승민 의원의 측근으로 뽑히는 '비박(非朴)계'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유 의원에 대해 편치 않은 심기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한편, 일명 '진박 감별사' '친박계의 신 좌장'으로 불리는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월 '진박연대'에 속하는 대구 지역 예비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 의원은 곽상도(중남), 윤두현(서), 정종섭(동갑), 추경호(달성) 후보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참석해 진박계 후보자 지원에 나섰다.
평화시장은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인 동구갑에 있다. 평화시장은 '닭똥집골목'으로 유명해 닭똥집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구역과 재래시장 가판이 주를 이루는 구역으로 이뤄져 있다.
◆ 최근 선거 결과 '여당'의 절대적 우세
역대 선거에서 대구 민심은 어땠을까. 18대 국회의원 선거(2008)와 19대 국회의원 선거(2012), 18대 대통령 선거(2012) 등 최근 세 개 선거 결과를 반추해보자.
박 대통령은 TK에서 득표율 80%를 넘긴 첫 대통령이다.
그동안 TK 지역에서 대선 투표율은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당시 이 지역 투표율은 79.66%로 80%에 육박했다. 이는 전국 평균 투표율 75.84%를 웃도는 수치이며 광주광역시(80.37%)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투표율이다.
TK 지역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투표율이 나온 것은 이 지역 출신인 당시 박근혜 후보를 향한 기대와 지지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에서 압도적인 득표율 80.14%를 얻었다.
한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19.53%의 득표율을 얻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여당이 우세했다.
대구에는 총 12개의 선거구가 있다. 지난 18대 총선 결과 대구 지역 의석수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 8석, 친박연대에 3석, 무소속에 1석이 각각 돌아갔다.
19대 총선의 결과는 새누리당의 절대적 승리다. 야권은 대구에서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고 12개 선거구의 당선자는 모두 새누리당에서 나왔다.
당시 대구 지역에서 새누리당 득표율은 평균 60.31%였으며 나머지 39.69%는 민주통합당 등 야당과 무소속 후보자가 득표했다.
대구의 문을 두드리는 야권 후보자에게 대구는 고립무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8일 야권 험지에 출마하는 더민주 소속 예비후보들을 격려하기 위해 대구를 찾았다.
김 대표는 이날 지역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 김부겸 후보를 비롯한 후보들을 격려하러 왔다"면서 "우리 당이 지속적으로 대구나 영남권에 당세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더민주가 앞으로 어떻게 변신해서 나아갈 것인지를 분명히 제시하려고 한다"면서 "과거와 같은 투표 성향이 대구나 영남 지역에서 변화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수성갑에 출마하는 김부겸 후보자에 대해 "4년 전 총선에서 받은 그 지지도와 지난번 시장 선거에서 받은 지지도를 고려할 때 대구가 한 번은 대구를 대변할 야당 의원을 내지 않겠느냐"면서 "지난번 새누리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 이정현 의원이 배출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수성갑에서 우리 김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겠다는 예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2012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으며, 2014년 대구시장 선거 때에는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그는 최근 두 선거에서 모두 40%가 넘는 득표율을 세웠다.
20대 총선이 성큼 다가온 시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8일 기준) 대구 지역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60명이다. 이 중 새누리당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는 50명이다.
김부겸·홍의락 등 야권 후보자들의 득표율과 여당 내 비박 대 친박 구도로 불거지고 있는 'TK 물갈이론'이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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