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위해선 학교·취업시장 차별도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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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혼모 창업실습장 `착한 커피숍' (연합뉴스 자료사진) |
<베이비박스 5년 後> ④'미혼모 홀로서기' 어렵다
생계·주거지원 확대 필요…"아이와 함께 살 길 열어줘야"
자립 위해선 학교·취업시장 차별도 없애야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아기 아빠도 없이 임신해 아이를 낳는 여자라고 손가락질당하고, 일하던 편의점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상황에서 아이를 혼자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올해 다섯 살 된 딸 진주(가명)와 함께 사는 정수진(34·여)씨는 5년 전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 온다.
당시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낳아 직접 키우려 마음먹었지만, 생계에 대한 압박과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해 진주를 입양기관에 보냈다가 바로 데려오며 눈물을 쏟았다.
정씨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려 동사무소를 찾아 도움을 청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아 힘들었다"며 "이후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아이와 함께 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살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미혼모의 힘겨운 '홀로서기'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부모 중 상당수는 정씨처럼 아이와 함께 살고 싶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포기한 미혼모나 미혼부다.
이들이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가장 높은 벽은 생활고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권희정 연구원은 "10대나 20대 초반에 출산한 미혼모의 경우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경우도 많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립하기 전까진 외부의 지원이 필수"라며 "이후에도 홀로서기를 위한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2년 발간한 '한부모 가족의 생활실태와 복지욕구 보고서'를 보면 한부모 가족의 월평균 소득은 93만3천∼98만9천400원, 지출은 101만8천800∼115만5천원으로 '적자 가계부'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 가운데 양육비 비중은 절반에 육박했다.
정부도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미혼모 등에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 규모를 보면 아동 양육비 월 10만∼15만원, 자립지원촉진수당(만 24세 이하만 해당) 월 10만원, 중·고등학교 자녀 학용품비 연 5만원 등으로 '기저귀 값'을 대기에도 빠듯한 수준이다.
삶의 기반이 되는 주거도 불안정하다.
급한 대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모자가족복지시설 등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작년 말 기준으로 이런 시설은 전국 123곳, 2천536가구에 불과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마저도 입소 가능 기간은 1∼5년으로 제한돼 있다.
◇ 학교·취업시장서 차별 없애야 '홀로서기' 가능
싱글맘이 학교나 일터에서 받는 차별도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8년 벌인 '청소년 미혼모 교육권 실태조사' 결과 청소년 미혼모의 81%가 공부를 계속할 의지가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주위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 등으로 자퇴를 강요하며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고생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자퇴를 강요한 인천의 한 고등학교의 행위를 인권침해라고 판정하고 학교장에게 여고생의 재입학을 권고해 이 학생은 학교로 돌아가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학교 현장에서는 미혼모라는 이유로 쫓겨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권희정 연구원은 "학습권 보장이라는 측면과 함께 미래에 좋은 일자리를 얻어 튼튼한 생활 기반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라도 미혼모를 학교에서 내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취업 전선'에서도 크고 작은 불이익이 존재한다.
200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모의 32.9%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순간으로 '취업할 때'를 꼽았다.
이웃관계(17.4%)나 가족관계(11.2%), 혹은 결혼할 때(11.2%)보다도 직장을 구할 때 가장 심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는 "미혼모 대다수가 아이와 함께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고 당당하게 살길 원하지만, 노동시장 진입부터 차별당하고 있어 쉽게 자립기반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기업과 사업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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