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그리스> ① "굴욕적 타협 없다"…얼마나 가혹하기에

편집부 / 2015-04-14 07:00:10
△ 급진좌파연합(시리자)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오른쪽)가 총리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자료사진)

<위기의 그리스> ① "굴욕적 타협 없다"…얼마나 가혹하기에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 "우리는 '빚 식민지'가 아니다." "우리는 타협할 준비가 됐지만 타협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지난 1월 그리스 총선에서 승리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이 입이 닳도록 해온 말이다.

정부 곳간의 현금이 바닥을 드러내는 절박한 상황에도 시리자 정부는 국제채권단이 압박하는 추가 긴축조치를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했다.

오는 24일 열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 회의는 국가부도(디폴트)를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지만 시리자는 굴욕적 타협은 없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 회의에서 '트로이카'로 불리는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성된 채권단과 그리스는 '개혁안'을 토대로 72억 유로(약 8조4천억원)의 구제금융 분할금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

이 분할금은 2010년과 2012년 2차에 걸쳐 합의한 2천4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 가운데 EU 측의 마지막 지급분으로 애초 지난해 12월에 지원하기로 했던 것이다.

당시 보수 신민당이 이끈 전 정부는 트로이카와 구제금융 지원 조건인 긴축조치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실적이 미흡하면 추가로 긴축을 약속하는 협상을 벌이다가 국내 정치 일정이 여의치 않자 협상을 2개월 미뤘다.

전 정부는 지난 2월로 예정된 의회의 대통령 선출이 실패하고 조기총선을 치러야 할 것으로 여론조사가 나오자 조기 대통령 선출이란 도박을 걸었다. 그러나 결국 예상대로 국민은 지난 1월 말 조기총선에서 '반(反) 긴축과 부채 탕감'을 약속한 시리자를 선택했다.

시리자 정부는 출범 직후 트로이카와 각을 세웠고 전 정부가 미뤄뒀던 협상 시한인 2월20일에 양측의 요구를 절충한 타협안을 이끌어 냈다.

양측은 기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6월 말까지 연장하며, 그리스가 마련한 개혁안을 토대로 4월 말까지 72억 유로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시리자는 채무 재조정과 긴축 철폐 등은 6월 말에 체결할 새로운 협상에서 결정하고 이 사이 필요한 부채 상환용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따라서 72억 유로는 계획보다 4개월 늦춰진 것이며 오는 24일 협상은 '6월 말 본협상'을 앞둔 '가교'(bridge) 협상이다.

'시간과 돈'을 쥔 트로이카는 '전초전' 격인 이 협상부터 그리스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트로이카는 그리스에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하라고 했으면서도 일방적 행동을 금지하고 평가는 트로이카가 하는 것이라며 개혁안에 긴축을 추가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그리스는 채권단이 요구하는 '개혁'은 그리스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꿔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임금과 연금을 깎으라는 요구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리스는 트로이카의 요구로 2010년 2월부터 7차에 걸친 긴축 패키지를 도입해 임금과 연금의 삭감, 증세, 사회안전망 지원 삭감 등의 고통을 겪었다. 2010~2014년에만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인 650억 유로의 재정지출이 삭감됐다. 이런 단기간의 대규모 재정지출 삭감은 구제금융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그리스는 뼈를 깎는 고통으로 빚을 갚았지만 오히려 빚은 늘기만 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10년 148%에서 지난해는 175%로 높아졌다.

트로이카가 개혁이라며 처방한 긴축에 실물경제도 무너졌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 GDP 기준으로 봐도 2007년 2분기 GDP는 634억 유로였으나 지난해 3분기에는 469억 유로로 6년간 생산 규모는 26% 줄었다.

지난해 실질 GDP는 0.6% 증가해 6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났지만 물가상승률이 -1%대로 명목 성장률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경상수지는 2013년 사상 처음으로 흑자를 냈지만 이는 트로이카의 요구로 도입한 최저임금 삭감과 노동자 해고 요건 완화 등 이른바 기업 경쟁력 강화 조치 덕분에 수출이 늘어서가 아니다. 혹독한 긴축으로 소비가 얼어붙어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입액은 6년 전보다 36% 줄었다.

고용지표의 악화는 더욱 심각하다. 실업률은 2008년 7%대였지만 구제금융 패키지가 시행되는 내내 증가세를 이어가 2013년 7월에는 27.9%까지 올랐고 최신 통계인 올해 1월도 25.7%로 경제활동인구 4명 중 1명은 실업자다. 청년층만 놓고 보면 실업률은 2008년 20.4%였으나 2013년 2월 60.8%로 치솟았으며 최신 통계는 50%대 초반이다.

건강 부문 재정지출은 40% 삭감돼 공공의료는 형해화됐다. 국립병원 의사들은 외국이나 민간 부문으로 빠져나갔고 무료인 국립병원에는 환자들이 밀려 급행료 등의 명목으로 뇌물을 줘야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백신 예산의 부족으로 독감 사망자가 100명이 넘었다거나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난로를 때거나 촛불을 켠 집들에서 일산화탄소 중독과 화재로 숨졌다는 현지 언론들의 보도가 잇따랐다.

그리스는 2008년 자살률(인구 10만명당)이 2.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였지만 긴축 정책 이후 월별 자살 건수가 36% 급증했다는 연구조사도 나왔다.

5년간 가혹한 긴축의 결과는 2009년 총선에서 득표율 4.6%에 그쳤던 시리자가 36%의 지지를 받아 집권하게 만들었다.

그리스 국민은 유로존 탈퇴에는 절대다수가 반대하지만 인도적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시리자에 거는 기대는 식지 않고 있다. 그리스 일간 아브기가 지난 6일 보도한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치프라스 총리의 지지율은 78%였으며, 응답자의 63%는 현 정부의 협상 전략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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