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 칼럼] 일본, 반성 없이는 미래도 없다

황종택 기자 / 2015-04-24 09:03:47
△ 부자동네타임즈 황종택주필

 [부자동네타임즈 황종택 주필] 인도까지 돌진해 무고한 ‘살상’과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전범들이 누워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정치인 등 지도층들이 떼거리로 참배하는 행태는 일본사회의 뚜렷한 우경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일본 인사들의 극우적 언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엔 다르다.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총대’를 멧다는 사실이다. 그리곤 작심한 듯, 망언을 죄의식 없이 배설하고 있다. 망언의 핵심은 침략 부인이다. 진실 은폐다. 역사왜곡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베‘일본호 극우 열차’가 폭주하고 있다. 브레이크 고장 난 듯한 질주(疾走)다. 난행(亂行)이다. 총리는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술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국가 간 관계에서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무엇이 침략인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침략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하고 있다.

 

역사의 시계추 되돌리는 망언망동

 

일본은 전범국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옛 죄상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아시아국가의 비판을 경청하겠다고 다짐한 1982년 미야자와 담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93년 고노 담화, 침략·식민지배를 반성한 95년 무라야마 담화 등을 통해 역대 일본 정부가 거듭 자숙하는 입장을 표하지 않았다면 국제사회는 그리 너그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아베류’ 같은 극우 망언망동파들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답은 불 보듯 훤하다. 전쟁·군대보유 포기를 명시한 평화헌법 폐기를 겨냥한 책동의 일환으로 비친다는 점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100여 년 전으로 역사의 시계추는 되돌아가 동양평화, 나아가 인류평화는 또다시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일본을 위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 내부에서마저 아베 정권을 향한 비판의 여론이 작지 않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는 “역사적인 사실을 바로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독도·교과서 이슈 등이 경제 등 다른 분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일본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웃나라의 신경을 거스르는 행동이 유행처럼 정치에 퍼지는 것을 우려한다”고 꼬집었다. 위정자의 무딘 국제감각을 질책하고 있음이다.

일본은 어찌해야 할까.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같은 전범국이었던 독일, 독일인의 모습을 닮는데 있다. 독일은 나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모두 받아들였다. 앙겔라 메르켈 현 독일총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독일인은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대학살) 등 나치 범죄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는 진실한 고백을 한 바 있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도 아니고 조상이 범한 역사적 과오지만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자세가 말처럼 쉬운 일인가.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은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도 눈이 멀게 됩니다”라고 독일 국민에게 호소해 세계인의 박수를 가져왔다. 그뿐 아니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이스라엘 의회에서 “독일의 과거 범죄를 결코 잊지 않고 떨쳐 버리려 애쓰지도 않을 것”이라며 과거 잘못을 참회했다. 빌리 브란트 옛 독일 총리의 폴란드 그단스크 교외에 소재한 2차대전 희생자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사례는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단초였다.

 

독일인들의 진실한 참회 본받아야

 

여기에 더해 독일은 2000년 7월 ‘기억, 책임 및 미래재단’ 설립을 위한 법률을 만들어 100억 마르크(약 7조8000억원)를 모아 나치 정권에 의한 강제노동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고 있다.

반성이 없으면 성장은 없다. 옛 선인들은 하루 세 번 반성하며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남을 위해 일할 때 혹시 소홀함이 없었는가. 친구들과 사귀면서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았는가.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바는 없는 가 등이다.

 

 

반성 없이는 미래도 없는 법이다. 지난 잘못을 돌이켜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 내일을 기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앞으로 나가는 것만 알고, 뒤를 돌아볼 줄 모르면 슬픈 일이다. 도연명이 ‘귀거래사’에서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았고 장래의 일은 올바로 할 수 있음을 알았으니, 실로 길 잘못 들어 멀어지기 전에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글렀음을 깨우쳤네(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라고 읊었음을 눈여겨보자.

 

 

‘작비금시(昨非今是)’ 정신이다. 과거 행동은 잘못됐고, 오늘을 반성해 바로잡았다는 뜻이다. 사람은 이렀듯 나날이 향상하는 삶을 살아야지 퇴보하면 안 된다. 동시대 인물인 공자로부터 군자라고 칭송받은 위나라 대부 거백옥은 50세 때 지난 일을 돌아보며 과거 삶

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새 삶을 살았다. 그래서 50세를 잘못을 안다는 의미에서 ‘지비(知非)’라고도 한다. 그렇다. 일본은 참회해야 한다. 그리고 “의롭지 못한 일을 하면 반드시 멸망을 자초한다(多行不義必自斃)”는 ‘좌전’의 경고를 되새기길 촉구한다.

 

 

세계는 개방화와 자유화의 격랑 속에서 물리적인 국경의 개념이 사라지는 지구촌 시대에 돌입한 지 오래다. 일본이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고 한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와 진정한 선린·우호 관계를 구축하려면 먼저 과거사 청산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진심 어린 과거사 청산 노력을 일본은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일본, 일본인들의 역사인식 전환을 촉구한다. 그 첫 출발은 ‘진실 말하기’(true-telling)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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