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없는 느린 민주주의"…이화여대 '신개념 농성'

편집부 / 2016-08-08 09:51:18
총학생회, 외부세력 개입 거부…'만민공동회'로 결정<br />
농성 초기부터 정치색 덧씌워질까 극도 경계 <br />
안전·초상권 보호 이유로 철저한 폐쇄성 유지<br />
소녀시대 곡 제창…"제2의 임을 위한 행진곡"
△ 이대 졸업생, 졸업장 반납 시위

(서울=포커스뉴스) "우리는 정치색을 띤 어떠한 외부세력과도 무관합니다. 오로지 이화인의 목소리입니다."

7일 오후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내 벽면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글귀다. 그 앞을 지나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학생에게 "본관 점거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했지만 "개인 인터뷰는 일절 하지 않는다. 이대 언론 대응팀에 메일을 통해 문의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교 측의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이 '학위 장사'라고 반발하며 지난달 28일부터 12일째 본관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대학가의 저항문화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 이대 점거농성을 '대표성 부재', '폐쇄성', '놀이' 3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봤다.


◆ 사태 초기부터 정치색 덧씌워질까 극도 경계

이화여대 학생들은 농성 초기부터 자신들의 행동에 정치색이 덧씌워질까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대학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소위 운동권도 총학생회도 없었다.

학내에 경찰병력 1600여명이 투입되면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달 30일, 학생들은 운동권 학생들의 농성장 출입을 제한하고 그들의 발언을 막기도 했다. 학생들의 주장이 왜곡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주의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1일 오후 예정됐던 전국대학생총연합회의 이대 사태 관련 기자회견이 취소된 직후 농성장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취합하던 한 학생은 "우리가 벌이는 농성은 다른 어떤 단체와도 연계돼지 않았다. 사전에 전대련과 기자회견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으며 취소 통보 역시 받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농성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공식입장을 전달하는 언론팀은 "학생들이 총학과는 별도로 움직이는 자발적인 조직인가"란 기자의 질문에 "본관 점거 농성은 총학이 주도하는 행동이 아니다. 학생들이 자발적이고 유연하게 현장과 외부에서 필요한 이들을 찾아 담당팀을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가 없다 보니 의사 결정이 다소 느리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3일 오후 이대 본관 정문에서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철회 기자회견을 했지만 학생들은 이에 대한 입장을 곧바로 정리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계속 대기해야 하는 기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자 학생들은 "느린 민주주의를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대 언론팀은 현장에서 급박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학생들의 입장은 본관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어 거수로 결정하고 공식 입장은 언론팀이 단체대화방의 의견을 거쳐 준비한다고 전했다.



◆ 안전과 초상권 보호 이유로 철저한 폐쇄성 유지

'대표 없는 저항행위'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그들만의 '폐쇄성'을 유지한 것도 특이점이다.

학생들은 외부인의 농성장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구성원들의 개별 인터뷰를 자제시켰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의 안전과 초상권 보호한다는 이유에서다.

농성 초기 학생들은 대학 본관 입구에서 학생증을 일일이 확인하고 보라색 스티커(추후 녹색 종이 팔찌로 변경)와 마스크를 배분했다. 스티커와 팔찌로 이화인임을 '인증'해야 본관에 출입할 수 있었다.

또 이화여대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들도 개별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이대 사태 이후 기자가 접촉한 이대 재학생·졸업생 10여 명은 입을 모아 "언론 대응팀에서 언론을 상대하고 개인 인터뷰는 자제해달라는 지침을 전달받았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언론팀은 본관 내부 공개와 학생들의 개별 인터뷰 금지에 관해 "본관 내부에서 장기간 시위 중인 학생들의 안전과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어 "이미 한 언론에서 학생의 실명이 보도되면서 언론에서 신변보호나 초상권 보호를 약속하더라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사진이나 영상 촬영인 시위 중인 학생 대다수에게 심리적 동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태 초기 학생들은 언론을 다소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스스로 언론팀을 꾸려 일괄적으로 질문을 받고 답변을 전달하며 본관 내부 사진을 제공하기도 했다. 본관 우측에 간이 천막을 세워 기자들을 위한 '기자프레스 센터'를 만들고 물과 음료수 등을 제공하며 공정한 보도를 당부했다.



◆ 소녀시대 곡 제창…"제2의 임을 위한 행진곡"

학생들은 '찜통더위 속 집단생활'이라는 열악한 환경 안에서도 그들의 방식으로 나름의 저항문화를 만들어냈다.

지난달 30일 학생들은 경찰과 대치하는 와중에 아이돌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노래했다. 해당 영상은 농성에 참여한 학생들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인 'Save Our Ewha'와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를 두고 한 네티즌은 "세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운동가요로 이 노래가 나왔다"며 "제2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냉방이 되지 않는 본관 복도에서 펼쳐진 '독서 농성'도 주목받았다. 학생 100여 명은 무릎에 책을 올려놓은 채 손에는 '시위할 시간에 공부하래서', '학문을 위한 대학에 다니고 싶습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해당 시위는 이대 농성을 두고 '공부할 시간에 시위하나', '그 시간에 공부나 하라' 등의 네티즌 반응에 대응하는 취지라고 알려졌다.

언론팀은 "본관에서는 자발적으로 보드게임을 가져와서 카페를 여는 학생, 안에서 만화를 그려서 연재하는 학생, 목탁을 두드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학생, 리코더로 신청곡을 불러주는 학생 등 재미있는 이벤트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대 농성에서 나타난 새로운 저항문화에 대해 "이전에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나서서 집단적 행동을 보이는 형태로 변화했다"면서 "농성장에서 운동권 노래가 아닌 대중가요가 흘러나온다는 것은 학생들이 기존 학생 운동 방식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사회운동에서 신사회운동으로 변화하는 와중에서 촛불 운동 등 다양한 양상이 드러났는데 이대 사태 역시 이러한 새로운 집단행동의 연장 선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문제로 학교와 학생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들이졸업장 반납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6.08.02 김흥구 기자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엿새째 이화여대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2일 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에 다양한 목소리의 시위성 글들이 붙어 있다. 2016.08.02 김흥구 기자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건물에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문구가 부착돼 있다. 2016.08.02 이승배 기자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본관 앞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철회 소식을 들은 이화여대 학생들이 완전 철회가 확인될 때까지 "농성을 당장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2016.08.03 김흥구 기자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엿새째 이화여대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2일 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에 다양한 목소리의 시위성 글들이 붙어 있다. 2016.08.02 김흥구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에 고졸 출신 직장인 등을 위한 단과대 설립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이대학보사> 2016.07.30 포커스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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