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도시락 가게 알바생 이승현씨 "자는 시간 빼고 전부 일에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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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과 열정 |
(서울=포커스뉴스) "왜 이 무더위에 땀나는 일을 골라서 하냐고요? 힘든 일이라고 해서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편한 아르바이트(알바)가 있었다면 차라리 그 일을 했겠죠. 문제는 좋은 알바를 골라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데 있어요. 좋은 알바 자리도 결국 다 빽(배경)이 있어야 할 수 있거든요."
지난 13일 오전 11시쯤 서울 영등포구 H대형마트 주차장 입구에서 만난 H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생 이정호(가명·20)씨는 3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이씨는 성인 한 사람이 쓸만한 크기의 파라솔이 설치된 단상에 올라 주차장으로 오가는 차량들에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른바 알바계의 '3D업종'으로 불리우는 대형마트 주차 수신호 알바생이다.
한주 동안 10시간씩 작은 파라솔 하나를 의지한 채 무더위 속에서 사투를 벌인 그의 체중은 벌써 2.5㎏이나 줄었다.
이렇게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한달을 모두 채웠을 때 그가 벌 수 있는 돈은 최저임금이 적용된 170만원가량이 전부다.
그러나 이씨는 매 방학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흙수저'로 자신을 지칭하면서 대형마트 주차 수신호 알바에 나름 만족감을 표현했다.
그는 "방학 이후로 2주 동안 평일에 할 수 있는 알바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얻은 자리가 주차장 수신호 알바였다"며 "자칫 더 늦게 일이 구해지면 학교를 휴학해야 하나 걱정도 됐는데 천만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더운 날씨와 상관없는 사무직 알바에도 몇번 지원해 봤지만 여성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며 "대학동기 친구는 대기업 이사인 아버지의 지인 회사에 단기 알바로 일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은 솔직히 부럽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잠깐의 휴식시간 동안 카카오톡 메신저를 이용해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여행을 가자는 친구의 말에 여름방학 동안 알바를 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하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는 "방학 때 학비나 생활비 걱정없이 농활(농촌활동)도 가고 피서지로 여행도 가는 대학동기들을 보면 무척 부러운 게 사실"이라며 "그래도 당장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 아는 형님으로부터 '개밥 주는 알바'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한 부잣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한우를 구워주는 일이었다는데, 당시 개밥 값이 자신의 알바비보다 많아서 상처를 받았다고 하더라"면서 "잘 모르지만 이런 게 흙수저의 인생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 하루 절반 이상을 뜨거운 불 앞에서…쉬운 일은 경쟁 치열
"하루종일 불 앞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주방이라서 에어컨도 켤 수 없다보니 땀이 많이 날 수밖에 없죠."
H대 간호학과 3학년, 남학생 이승현(가명·23)씨는 서울 송파구의 A즉석도시락 가게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뜨거운 주방 열기에도 머리카락이 음식에 빠지는 것을 막고자 날마다 위생 모자를 쓴다는 그는 "일하는 중에도 계속 땀이 흐른다"고 말했다.
이씨는 하루에 13시간, 주 6일을 뜨거운 주방에서 일한다. 단체 주문이 들어오는 날이면 16시간씩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씨는 최근 너무 오래 일어서서 일하는 탓에 다리에 염증이 생겨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추가 근무를 해도 정해진 돈(10일 근무시 100만원)만 받을 뿐 추가로 받는 돈 없다. 그래도 오랜 시간 일을 할 수 있고 그만큼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으니 좋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바닥 공사, 12시간 설거지 등 주로 극한 알바를 해왔다는 그는 "고임금의 비교적 쉬운 일은 제가 들어갈 수가 없다"며 "그런 데는 경쟁률이 너무 세다. 단기간으로는 잘 뽑으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조금 강도가 낮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냐는 질문에도 "학교 차원에서 간호학 전공과 관련해 일자리를 구해주는 게 있긴 하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웬만하면 병원에서 여자 실습생을 더 선호해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라고 답했다.
이씨는 또 "쉬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일을) 해야 한다"며 "쉬운 일을 찾아보려고 해도 오랜 시간을 구하지 않는 게 많아서 돈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일을 끝내고 나면 잠만 자느라 개인 생활은 없다. 그래도 9월부터는 학교를 다니면서 돈을 써야 하니 방학 때만 반짝 돈을 버는 것"이라고 높은 강도로 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씨가 한달에 26일 이상 400여시간을 일하면서 버는 돈은 240여만원이다.
얼핏 들으면 많은 금액이지만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6030원)과 큰 차이가 없다. 자기 생활을 포기하고 학비와 생활비 마련에 여름방학 전부를 내건 그에게 그리 큰 돈은 아닌 셈이다.
그는 "시간에 비해서 많이 받는 건 아니"라며 "하루종일 자는 시간 빼고 거의 다 일하는 거니까"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여태껏 학비는 스스로 마련했다"며 "(집이 힘든데) 학비까지 부모님께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더운 여름 날씨와 무관하거나 사무직과 같은 쉬운 알바에 많은 대학생이 몰리면서 당장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일부 흙수저 대학생은 상대적으로 힘든 알바를 골라야 하는 처지다.
치열한 경쟁 속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또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진 알바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흙수저 대학생에게 많은 시간을 일만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대학생활의 큰 추억이 될 수 있는 농활이나 자원봉사 활동 등은 흙수저 대학생에게 사치일 뿐이다.
주차장 수신호 알바생 이정호씨는 "여행을 가자고 조르던 친구와 결국 저녁에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기로 정했다"며 "스스로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은 가장 큰 위안이다"고 말했다.
연신 땀을 훔치며 인터뷰에 응해준 이씨는 저녁에 마실 시원한 맥주 한잔 생각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양지웅 기자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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