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당했던 교수들, 비책 마련하기도<br />
"결국 취업 문제…학교내 원칙 마련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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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활의 반은 도서관 생활 |
(서울=포커스뉴스) 훔친 공무원 신분증으로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국가직 7급 공무원 시험 성적과 합격자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대학생이 27일 대입수학능력시험과 토익(TOEIC)시험 등에서도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확인돼 추가기소됐다.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에 따르면 사문서변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대학생 송모(27·구속기소)씨는 수능·토익시험 등에 위조한 진단서를 제출해 저시력자 행세를 하며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송씨의 범행 사실이 알려진 뒤 온오프라인에서는 이같은 범행이 비단 송씨의 얘기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대학 출석이나 시험 등을 위해 허위진단서와 처방전을 발급받아 출석을 인정받거나 시험을 리포트로 대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포커스뉴스>는 28일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결석부터 시험 대체…'5분만에 뚝딱' 허위진단서 하나면 OK). 대학가 인근 병원에서 어렵지 않게 진료확인서를 발급받은 것은 물론 온라인을 통해 허위 진단서, 처방전 제작도 5분이면 충분했다.
◆ "아프다고 우기면 방법 없다"…동네 병원·보건소 '나몰라라'
학생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되고 있는 동네 병원과 보건소는 정작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K대와 H대 사이에 있는 S내과의원 간호사는 "실제로 아픈지 안 아픈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실제로 아픈지를 결정하는 건 의사선생님의 몫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아프다고 하는데 거짓말부터 의심하기는 어렵지 않나"고 반문했다.
인근에 위치한 M의원 간호사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허위진단서를 끊어주면 큰일 난다. 진료는 받게하고 진단서를 끊어주고 있다"면서도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구분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일부 병원에서는 이미 학생들의 '꾀병'을 눈치채고 있었다.
S대학 인근 지하철역에 자리잡은 H내과의원 관계자는 "딱 보기에도 아프지 않은 학생들이 와서 진단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가 인근에 있는 작은 병원이다 보니 자세한 검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감기 등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이제는 그런 친구들이 오면 먼저 진료확인서를 끊어줘야 하냐고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꾀병아닌가 의심도 하고 꼬치꼬치 캐묻고 했었는데, 막무가내로 우기는 학생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며 "당연히 그러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병원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 알면서도 당했던 교수들, 비책 마련하기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생들의 허위 진단서 및 처방전 제출 문제는 교수들 역시 인식하고 있었다.
수도권 소재 D대학 국문과 교수를 지냈던 이모(52)씨는 "과거 허위처방전 문제로 골머리를 썪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주일에 두 번으로 나눠져있던 수업이었는데, 한 학생이 절반 정도 수업을 출석하지 않았다"며 "그리고는 그 기간에 맞춘 처방전을 제출했는데 처음에는 멋모르고 모두 출석을 인정해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음 학기에도 그 학생이 내 수업을 신청했는데, 수업에 안나온 날 학교 주변 술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봤다"며 "그때부터 처방전이나 진단서를 제출해도 출석을 인정해주지 않게 됐는데 교수 생활을 하며 믿었던 학생에게 배신당한 경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경험을 한 교수는 생각보다 많았다. 기자가 통화한 수도권 소재 대학 7곳의 교수 9명이 허위 진단서를 제출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수들 사이에서도 비책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었다.
H대학 영문과 이모 교수는 "진료확인서를 제출하더라도 출석점수 전부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무단 결석에 따른 감점이 3점이라고 가정할 때 진료확인서 등을 제출한 학생에게는 2점을 감점하고 1점만 부여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사실 진단서라는 게 실제로 아파서 가는 친구들도 있지만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며 "기본적으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믿기는 하지만 그래도 출석을 모두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어 "출석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성이 분명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 부분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며 "개강 첫날 이런 내용을 자세히 공지해 출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K대학에서 정보통신 관련 공학을 지도하고 있는 김모 교수 역시 허위 진단서에 대한 자신만의 비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나같은 경우는 처방전이나 진료확인서는 아예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출석 인정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진단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단서를 바로 나에게 제출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학교 학적과에 방문해 관련 부서장들의 사인을 받아오도록 별도 양식을 만들었다"면서 "학적을 담당하는 부서 역시 자신들의 사인이 꼭 들어가야 하고 책임소재가 분명해지기 때문에 해당 병원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나도 처음에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얼마나 아프면 학교를 못 나올까'라는 생각에 그냥 처방전으로 출석을 대체해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안전장치를 마련해뒀다"며 "이런 절차를 만들고 나서는 진단서를 제출하는 학생이 3분의 1도 안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학 차원에서 김 교수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지방의 사립대학인 W대학 역시 학칙을 강화해 이같은 허위 진단서 제출을 막고 있다고 했다.
W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모 교수는 "학생들이 수업을 빠지고 진단서를 가져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보니 2~3년 전 학칙이 강화됐다"면서 "정식 진단서를 첨부해서 교무처에서 1차 검열을 하고 교무처장과 총장 도장을 받는 형태의 결재라인을 구축한 상태"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가끔 학교에서 특정 학과를 정해서 결석한 학생의 출석 인정 문제에 대한 증빙서류를 가지고 있는지를 검수하기도 한다"면서 "무작위로 하다보니까 평소에 출석부를 잘 관리해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교수들도 이런 부분을 잘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 "허위진단서 제출, 결국 취업 문제…학교내 원칙 마련이 우선"
일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들은 허위진단서 제출 문제의 원인으로 '취업난'을 꼽았다.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성적에 집착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고 이 때문에 출석 인정을 위한 편법이 등장한 것이란 얘기다.
서울소재 Y대학 심리학과 김모 교수는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고 학생들도 학점에 신경을 많이 쓴다"면서 "출석이 학점에 큰 영향을 미치다보니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학생들 사이에 '남들이 다 하니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 같다"면서 "남들이 모른다면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D대학 교무처에서 근무 중인 이모(29)씨는 "학교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내가 대학 때도 이런 식으로 출석을 인정받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아직까지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학교나 교수들 역시 이런 부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만큼 복잡한 절차를 도입하거나 해서 허위 진단서를 제출한 학생에게 강력한 처벌 등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 입장에서는 그런 제도를 만들면 일이 더 많아지는 측면이 있어서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말로 학생들을 위하는 학교라면 이런 기본적인 질서에 대한 부분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이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합니다. <사진=포커스뉴스 DB><사진=픽사베이>이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합니다. <사진=포커스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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