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슬람 매력에 빠져<br />
히잡은 그녀에게 정체성이자 도전의 상징<br />
한국인 무슬림으로서 편견 바로잡는 중재자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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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무슬림 여성 송올라씨 |
비(非)이슬람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무슬림(이슬람 신도)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여성이라면 또 다른 시선과 편견과도 맞서야 한다.
한국이슬람원에서 근무하는 송올라(29‧여‧ola)씨와의 인터뷰는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이제껏 외국언론과는 부담없이 인터뷰를 했지만, 국내 언론에는 처음 속내를 털어놓았다.
송씨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에 당당히 맞서며 9년째 무슬림으로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이다. 그녀에게서 이슬람을 선택한 이유, 그리고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여성 무슬림으로 사는 것, 아니 살아 나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 호기심 많던 소녀, 이슬람 교리의 매력에 빠지다
학창 시절 송씨는 호기심 많던 소녀였다. 남들의 신경 쓰지 않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며 고고학자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아랍과 이슬람은 언제나 궁금한 미지의 세계였다. 인류 4분의 1이 믿는 종교임에도 한국에서는 무관심한 이유도 궁금했다. 그래서 선택한 전공이 아랍어였다.
아랍어를 배우면서 송씨는 이슬람의 매력을 하나씩 알아갔다. 무엇보다도 1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교리가 지금까지 잘 지켜져 내려오는 것이 가장 신기했다.
"사실 어느 종교든 인간에게 좋은 가르침을 준다는 점은 같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현대까지 교리의 가르침이 잘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에요."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것을 떠나 인간의 실생활과 현실을 담고 있는 이슬람 성서 '꾸란'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꾸란을 보면 종교적인 것을 떠나 생활과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여성이 출산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고, 재산 상속은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까지 꾸란에 담겨있거든요. 그런 점을 봤을 때 대단히 신선했고, 상당히 논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여성과 남성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이슬람의 시각은 송씨가 이슬람에 빠져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송씨는 이슬람이 남녀를 바라보는 시각을 한마디로 말해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라고 표현했다.
"꾸란은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평등한 존재로 인정합니다. 다만 기계적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이죠. 남녀 간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남성이 나서서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성은 남성이 보호해야 할 존재이지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도 있고요. 사실 어느 나라에도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고 그런 사람은 어디서든 비판을 받죠. 이슬람도 마찬가집니다. 지금껏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이슬람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죠."
실제로 라마단 기간 동안 이슬람 서울성원에서 지켜본 결과 무거운 물건을 나르고 요리를 하는 등의 육체적인 일은 주로 남성들의 몫이었다. 심지어 식사 순서도 여성과 아이들 먼저였다. 이밖에도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편한 실내에서 식사를 하는 등 곳곳에서 이슬람의 '레이디 퍼스트'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 한국에서 히잡 쓴 여성으로 사는 것
송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녀가 무슬림의 길을 선택했을 때의 가족들 반응이었다. 다행히 가족의 반대는 없었다고 한다.
"저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무슬림 생활을 하고 있어요. 가족들도 반대하지 않았고, 대신 걱정은 많이 해주시는 편이에요. 혹여나 이슬람을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해서요. 저 같은 경우는 친구들도 아랍어를 전공했다 보니 이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직장까지 이슬람 관련 일을 하고 있으니 행운인 거죠."
편하게 무슬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송씨지만 이슬람국가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히잡(무슬림 여성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쓰는 가리개)을 쓰고 생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송씨의 본명을 밝힐 수 없었던 이유도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부정적인 시선 때문이었다.
그래도 송씨는 그녀가 개종을 선택했던 9년 전보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히잡을 쓰고 다니면 일단 모습 자체가 특이하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쳐다보긴 해요. 그래도 확실히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느끼는 게, 예전에는 이상한 눈으로 계속 쳐다봤다면 요즘은 '아 무슬림이구나' 하고 지나간다는 분들이 많으세요. 무슬림도 평범한 사회의 일원이라고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아진 거죠."
송씨에게 히잡은 이슬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도구면서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이자 통합의 상징이다.
"히잡은 종교적인 정체성도 있지만, 어떤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 제가 그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곳의 문화와 역사, 정신 등을 좋아하고 배워간다는 점에서 히잡은 제게 도전이자 함께 하고자 하는 통합의 상징이 되는 거죠."
한국에서 히잡은 송씨를 비롯한 몇몇 여성 무슬림만이 가질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다. 현재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히잡의 수만 해도 300장이 넘는다.
"제가 가지고 있는 히잡은 대부분 일반 스카프예요. 외국에 있는 친구들이 히잡을 선물해주기도 해요. 히잡에 대한 특별한 규제나 규정 같은 것은 없어요. 다양한 색깔과 패턴으로 히잡의 멋을 표현할 수 있는 거죠."
이렇게 히잡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넘치는 송씨지만, 그녀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날이 있다.
"한 번은 친구 결혼식에 히잡을 쓰고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하객들이 모두 신부는 안 보고 저만 보고 있는 거예요. 정말 친한 친구고, 무슬림인 저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지만 너무 미안했어요. 그 이후로는 결혼식에 갈 때만큼은 히잡을 쓰지 않습니다. (웃음)"
◆ 한국과 이슬람을 잇는 중재자가 되고 싶어
현재 송씨는 이슬람 서울성원에서 무슬림 소식지를 만들고, 성원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이슬람과 성원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학교와 기업에서 아랍어 강의를 하기도 한다.
무슬림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녀지만, 한국인 무슬림으로 하고 싶은 일들도 많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해 한국을 찾은 무슬림 관광객 수는 6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무슬림을 위한 여행 정보가 부족한 편이라고 송씨는 말했다. 특히 할랄(이슬람에서 '허용된 것'을 일컫는 말) 음식에 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보니 많은 무슬림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잘못된 정보에 의존한 채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송씨는 지인들과 함께 직접 발로 뛰어 할랄 식당 지도를 만들 계획이다. 이를 통해 무슬림 관광객들이 더 많이 한국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씨는 또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한국과 이슬람의 문화를 동시에 소개해주고 싶다. 그녀가 좋아하는 한복과 히잡을 통해 9만6000여명에 달하는 그녀의 SNS 팔로워(소식을 받아보는 이)들에게 한국과 이슬람의 멋을 알리는 것이다.
"요즘 한복 입고 해외여행 가는 게 유행이잖아요. 제가 한복을 정말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니 히잡을 쓰고 한복을 입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는 한복에 히잡을 쓰고 경복궁 같은 고궁에서 인증샷을 찍어보고 싶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가 한국인 무슬림으로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국내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제가 무교였을 때를 생각하면 저도 이슬람에 대해 잘 몰랐고 편견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슬람을 공부하고 많은 무슬림을 만나면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일부 행동을 다수에 적용시키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고 보면 너무 선한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 극소수 과격단체들의 극악무도한 행동 때문에 모두가 편견의 희생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편견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중개자가 되고 싶어요. 그게 한국인 무슬림으로서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한국이슬람원에서 근무하는 송올라(29‧여‧ola)씨는 9년째 무슬림으로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이다. 정상훈 기자 그녀에게 히잡은 무슬림으로의 정체성이자 하나의 패션이다. 송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다양한 히잡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송올라씨 인스타그램>한국인 무슬림으로서 한국와 이슬람을 잇는 중재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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