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안전 관련 정책 마련, 스마트 기술 융합한 대안 '눈길'<br />
"사회이슈 따라잡기용 정책 아닌 근본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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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션_호신용_스프레이-tile.jpg |
(서울=포커스뉴스) # 직장인 윤모(28·여)씨는 지난 일주일 사이 3개의 호신용품을 손에 넣었다.
며칠 전 남자친구가 호신용 후추 스프레이를 건네는가 하면 어머니는 늦은 저녁에 귀가하는 딸에게 휴대용 전기충격기를 손에 쥐어줬다. 윤씨가 개인적으로 구매한 호신용 호루라기까지 있다.
윤씨는 "최근 강력범죄가 일어나는 걸 보고 호신용품에 더 눈길이 간다. 주변에서도 챙겨주지만 나도 호신용품을 살때 주변 친구들 것까지 구매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된 사건 이후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강력범죄에 시민들이 불안감에 떨고 있다.
부산의 한 마트 앞에서는 50대 남성이 여성 2명을 이유없이 폭행했고 지난 29일에는 서울 노원구 수락산 등산로에서 60대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강력범죄는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높여 신변 안전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 확산된 공감은 우리 일상생활과 정부 정책에도 변화를 불러오는 모양새다.
◆ 호신용품 매출 '껑충'…"스스로 지켜야 한다" 공감 확산
2일 온라인 유통업체 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17일부터 이번 달 1일까지 전기충격기·호신봉·스프레이 등 호신용품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04% 증가했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541%로 증가율이 가장 컸다.
옥션 관계자는 "최근 강력범죄 발생이 잦아짐에 따라 자신과 주변 지인 선물을 위해 호신용품을 찾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여성만큼이나 남성고객의 구매율도 크게 증가한 편"이라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도 호신용품 매출 증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서울 중구 남대문에서 호신용품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2)씨는 "지난 2주간 매출이 평소보다 2배가량 뛰었다"며 "휴대하기 편한 호신용 스프레이와 호루라기를 가장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날 매장에서 만난 유모(24·여)씨는 호신용 '쿠보탄'을 구매했다. 열쇠고리 크기의 쿠보탄은 끝이 뾰쪽해 위급상황에 상대의 급소를 빠르게 공격할 수 있다.
유씨는 "지난 밤에 자취방 근처에서 수상한 사람을 본 기억이 잊혀지지 않아 구매하러 왔다"며 "예방차원에서 갖고 다니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호신용품에 대한 구매욕구가 크게 늘어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범죄로부터 스스로 보호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그간의 강력범죄들을 지켜본 시민들이 '나도 그곳에 있었더라면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감정이입을 하면서 안전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된 것"이라며 "호신용품 구매는 개인이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안전대책"이라고 분석했다.
◆ 스마트 기술 적용한 대책 눈길…안전 사각지대 해소 기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잇따라 안전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지난 달 17일 발생한 '강남 여성살해 사건'이후 공중화장실 치안강화를 위한 대책이 눈에 띈다.
서울 서대문구는 지난 달 30일 관내 18개 공중화장실에 스마트폰 근거리 무선통신 장치인 비콘(beacon)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비콘은 블루투스를 활용해 반경 50m 범위 안에 있는 위치 정보를 인식, 전송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에서 '경찰 안심신고'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112 안심신고 설정 후 보호자 연락처를 입력하면 비콘이 설치된 공중화장실 반경 25m 내에서 스마트폰을 흔들었을 때 인근 경찰서와 입력해 둔 보호자의 휴대전화로 위치 정보가 전송된다.
또 공중화장실에서 비명을 지르면 사이렌이 울리는 기술도 개발됐다.
한무영 서울대 교수(건설환경공학부) 연구팀과 ㈜덕키즈, ㈜여명테크는 화장실에 첨단 센서와 사이렌 등을 설치하는 '스마트 세이프 화장실'을 개발해 지난 달 24일부터 시범운영 중이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화장실에서는 위급상황에 비명을 지르면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사이렌 경보가 작동한다. 이런 상황은 112에도 신고가 자동접수 돼 외부의 도움을 신속히 받을 수 있다.
연구개발에 참여한 김형준 덕키즈 대표는 "건물, 학교, 지자체 차원에서 이 기술을 적용하면 화장실을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화장실 안에서 벌어지는 폭행 등 범죄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각종 대책마련 움직임 긍정적…"근본대책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공중화장실과 함께 도심 속의 안전 사각지대의 치안강화를 위한 대책도 대두되고 있다.
지난 1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제4회 법질서 관계장관회의에서 열어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논의·확정했다.
정부는 약 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내년까지 골목길 등 범죄 취약지역 5493개 지역에 폐쇄회로(CC)TV를 확충한다. 우범지역에서 CCTV 부재로 발생하는 안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지자체도 우범지역 치안 관리에 나섰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 골목 곳곳은 날이 저물면 형광빛의 태양광 조명이 비춰진다. 강북구가 지난 27일 범죄 취약층의 안전한 귀갓길을 위해 태양광 충전식 발광장치인 '쏠라표지병'을 설치한 것이다.
쏠라표지병은 가시거리가 800m 이상이고 설치 간격도 촘촘하게 조정할 수 있어 늦은 밤 거리를 밝히는 데 유용하다. 또 별도의 전기 시설없이 낮 동안 저장한 태양광으로 빛을 내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북구청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일반주택가만 밀집해 있어 가로등으로 골목을 비추는 게 한계가 있던 곳이라 밤길이 위험하다는 민원이 많았던 곳"이라며 "이번 사업이 실시된 이후로 주민들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답했다.
한편 서울시는 오는 10월부터 스마트 안심망 '안심이 어플리케이션'을 선보인다.
스마트폰과 자치구 CCTV통합관제센터를 연결해 위험감지부터 구조지원까지 제공하는 것으로 다운로드한 앱을 실행시키면 자치구 관제센터 상황판에 이용자의 위치가 표출된다.
범죄피해 위험이 확인되면 비상상황으로 전환돼 관제센터에 상주하고 있는 경찰과 현장으로 출동해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책마련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곽대경 교수는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은 범죄예방을 위해 물론 중요하다"면서도 "예방 대책은 무엇보다 과학적, 객관적 데이터를 근거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안전문제가 크게 이슈가 되자 이를 의식해 쏟아내듯 안전대책이 나오면 개중에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도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정부와 지자체에서 여성을 비롯해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안심 대책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연이어 발생한 '묻지마 범죄'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공동체의 붕괴, 일상에서 개개인이 겪는 좌절과 분노의 적재때문"이라며 "공동체 회복과 개인의 박탈감 해소 방안 등을 장기적으로 구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호신용 스프레이와 경보기. <사진출처=옥션>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묻지마 살인' 현장의 화장실이 폐쇄되어 있다. 2016.05.19 성동훈 기자 서울 강북구 미아동 주택가에 설치된 '쏠라표지병'. <사진출처=서울 강북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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