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도', '벚꽃 위의 새' 등 미공개 작품도
(서울=포커스뉴스)화가 이중섭(1916~1956)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중섭 전시회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일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3일부터 10월 3일까지 덕수궁관에서 연다고 밝혔다.
1986년 포항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뒤 30여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이번에 대중에 첫선을 보이는 미공개 작품도 여럿 포함됐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1956년 마흔 살을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회에는'황소', '길 떠나는 가족' 등 대표적 유화 60여점과 드로잉, 은지화, 엽서화, 편지화 등 그의 자료가 총망라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해 삼성미술관, 서울미술관, 홍익대 박물관 등 총 60여개 이중섭 작품 소장 기관과 소장가로부터 200여 작품을 대여했다.
2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자는 "'이중섭'하면 너무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 놀라는 게 '잘 모른다는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 학예사는 이번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를 맡아 총 진행했다. 그는 "몇몇 유명한 이중섭 작품은 봤겠지만 대다수가 그의 전체 작품은 본 적이 없다"며 전시에서 중점을 둔 부분도 이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학예사는 "이중섭이 어떤 기법, 어떤 재료로 작품활동을 했었는지, 그의 생애와 작품이 어떻게 맞물려 진행되는지 같은 부분을 퍼즐처럼 끼워 맞췄다"며 "작품뿐만 아니라 방대한 자료조사로 이번 전시를 통해 '이중섭'을 알 수 있게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중섭이 그의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 중에는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라오'라는 문장이 있다. 김 학예사는 "이중섭의 작품을 보면 이 표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섭은 서양회화의 기초 위에 동양 미학을 실현했다. 그의 유화 작품은 계속 덧칠을 하면서 이를 통해 은근히 스며 나오는 색을 강조하는 등 전통에 대한 이해가 묻어있다.
'은지화'는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새기거나 긁으며 그 위에 물감을 바른 뒤 닦아내는 과정을 반복해 완성됐다. 평면이면서도 층위가 나타나는 이 기법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나 금속 공예 기법을 연상시킨다. 한국 전통을 존중한 이중섭이 의도적으로 전통 기법을 차용한 예다.
이중섭의 한국인 정체성도 확고했다. 이중섭은 1942년 도쿄에서 열린 '제6회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소'를 출품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 조선인의 상징인 '소'를 그려서 일본의 공식 전시회에 출품했던 것이다.
또 그의 작품은 정직했다. 이중섭의 작품은 그의 삶과 분리해 이해하기 어렵다. 이중섭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었는지가 작품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가족과 헤어져 있었는지, 건강 상태가 좋았는지, 희망이 보였는지 등에 따라 그의 작품은 계속 바뀐다. 희망, 좌절 등 삶의 굴곡이 담겨 있는 그림,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에는 암담한 현실을 뚫고 나오려는 의지가 나타나 있다.
김 학예사는 '이중섭 신화가 시대적 맥락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있다'는 지적에 "그의 작품을 아무리 '비판적'으로 바라보더라도 결국에는 매료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전시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이중섭 작품도 여럿이다.
김 학예사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위험부담이 많았다"며 "검토 과정에서 많은 작품들이 걸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공개하자'고 결정한 작품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만나게 되는 작품 '향도'도 그중 하나다.
'최초'는 아닐지라도 1970년대 공개된 후 30여년 만에 다시 전시된 작품도 있다. 김 학예사는 "지난 세대는 1970년대 이중섭 작품을 보고 그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며 "다음 세대에 이중섭을 제대로 보여주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중섭의 '로맨티스트'로서의 면모도 빼먹을 수 없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일본인 아내(이남덕)에게 프랑스 시를 암송해서 들려주는 등 아내를 극진히 여긴 것으로 유명하다. 가정을 이뤄 두 아들을 얻고,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이들과 떨어져 살게 된 이후에 그의 절절한 가족 사랑은 더 빛났다.
"내 사랑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상냥한 사람, 존경하는 내 사람 남덕씨. 이 그림쟁이, 그대를 너무 너무 사랑하여 가슴이 터질 것 같으오. 이 뜨거운 그리움을 어떻게 하나요(1953년 4월28일경 부인에게 보낸 편지)." 이외에도 이번에 전시된 이중섭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화에는 "보고싶다. 돈 벌어서 이제 곧 만나자. 가서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등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김 학예사는 "사람들은 '이중섭'하면 '소'나 강렬한 붓 자국 등 '힘'을 떠올리나, 사실 굉장히 서정적이었던 사람"이라며 "이런 그의 면모가 그대로 나타난 미공개 작품이 있다"고 말했다.
'벚꽃 위의 새'라는 작품이다. 김 학예사는 "아스라하고 불투명한 색 등 이중섭 작품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그림일 것"이라며 "떨어지는 꽃잎이 위에서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떨어지다가 바닥에 닿을 땐 천천히 내려앉는 것처럼 표현됐다"고 설명했다.
이중섭이 부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몸이 아프다 보니 도쿄에 가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어요. 도쿄에서 그대들이 오는 방법과 내가 가는 방법…. 서로 잘 조사해서 완벽하게 빠른 길을 찾아보도록 합시다"라고 적혀 있다.
가족과 떨어져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던 이중섭은 병원생활을 하다 결국 1956년 9월6일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에는 이중섭이 마지막 즈음에 남긴 '돌아오지 않는 강', '나무와 달과 하얀 새' 등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은 6월3일부터 10월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된다. 입장료 성인 7000원, 유아·초·중·고 4000원.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3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 개인전,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가 펼쳐진다. 2016.06.02. 김서연 기자 2016.06.02. 김서연 기자 이중섭의 소(1941). 종이에 연필. 개인소장. 1942년 도쿄에서 열린 '제6회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출품했던 작품.이중섭의 세사람(1945년경). 종이에 연필. 개인소장. 1943년 조선으로 귀국하여 함경남도 원산에 머무를 때 제작된 작품이다.'벚꽃 위의 새' 작품과 이를 설명하고 있는 김인혜 학예사. 2016.06.02. 김서연 기자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3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 개인전,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가 펼쳐진다. 2016.06.02.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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