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우리 사회에 경종 울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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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결 지켜보는 세월호 유가족들 |
(서울=포커스뉴스) 반성은 없었다.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일말의 희망은 품었던 것일까.
아동학대로 사망한 7살 아들의 시신을 훼손해 냉장고 등에 방치한 부모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두 부부에게 법원은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 말미에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필요성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단어조차 생소한'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법원 "살해와 동등"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이언학)는 27일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은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모(35)씨에게 징역 30년을, 한모(35‧여)씨에게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학대를 통해 아들의 건강상태를 극도로 악화시켰고 부모로서 적절한 치료 등을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서 "작위에 의한 사망의 결과발생과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닌다"고 지적했다. 실제 아들을 살해하지 않았지만 살해한 것과 동등한 형법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성립 요건을 설명하면서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확정된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대법원은 퇴선 지시를 하지 않은 채 배를 떠난 이씨에게 "선장의 역할을 의식적이고 전면적으로 포기했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했다.
이번 사건의 재판부도 "작위의무란 법령, 법률행위는 물론이고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의무가 기대되는 경우에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법률에 근거한 행동 밖에도 사회적으로 마땅히 기대되는 행동에서도 작위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작위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일정한 행위를 뜻한다.
부모로서 마땅한 의무를 저버린 두 사람의 행동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병역기피로 수배자가 된 최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술과 게임을 하며 보냈고 아내가 핀잔을 주자 자신의 화를 아들에게 돌렸다.
잦은 폭행이 이어졌고 2012년 10월에는 폭행을 이기지 못한 아들이 혼절까지 했다. 아들은 잠시 후 깨어났지만 스스로 용변을 조절하지 못할 만큼 상태가 나빠졌다.
영양보충을 하지 않으면 사망할 위험에 다다랐지만 이들은 학대사실이 들통날까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최씨는 한씨에게 "병원에 데려가면 너도 같이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들은 극심한 기아와 탈진으로 의식불명에 빠져있다 한달 뒤 숨을 거뒀다.
재판부는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조사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밝혀질 수 없었을 것이고, 피해자는 계속하여 차가운 냉동실 안에 또는 더 어두운 곳에 방치되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엄벌이 불가피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 것으로 보이고 다시는 이러한 참혹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필요성이 있다"면서 한씨에게 징역 30년을, 최씨에게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했다.
◆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핵심은 '고의성'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하나의 사유로 보호의무가 있는 자가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적용된다.
여기서 미필적 고의란 자기의 행위로 인해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가능성을 인식하고 예견했음에도 이를 고의로 용납한 것을 말한다.
대법원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적용한 판례 중 국가법령정보센터에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사건은 지난 1982년(82도2024) 판결이다.
피의자 A씨는 당시 중학생인 피해자 B군을 아파트로 유인해 포박·감금했다. B군의 부모로부터 금품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감금이 이틀째 이어지자 B군은 탈진상태에 빠졌다. A씨가 음료를 먹이려고 했지만 입에서 흘러 나올 뿐 마시지 못했다. A씨는 B군을 방치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뒀고 같은 날 오후 2시 B군은 사망해 있었다.
재판부는 "B군이 사망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자수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경에 이른 피해자를 그대로 방치했다"면서 "피해자가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용인할 수 밖에 없다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했다.
대법원은 지난 1992년 2월 11일 조카(사망당시 10세)를 미끄러운 제방으로 유인해 물에 빠뜨린 다음 구조하지 않은 숙부에게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했다. 조카가 스스로 물에 빠졌고 숙부는 물에 빠진 조카를 구조하지 않은 것이지만 이를 방관한 행동은 직접 물에 빠뜨린 것과 동등한 행위로 인정 된 것이다.
2009년 12월에는 치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혼수상태에 빠진 남편의 인공호흡기를 뗀 아내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됐다.
최근에는 세월호 선장이었던 이준석씨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됐다.
지난해 11월 선고된 이 사건은 대형 안전사고에서 안전·구조책임자가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을 경우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인정된 최초 사례다.
재판부는 "퇴선 지시를 지체할 경우 승객이 익사할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먼저 퇴선했다"면서 "이는 승객의 안전에 대한 선장의 역할을 의식적이고 전면적으로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정의의_여신상_디케(dike)<사진출처=픽사베이>지난해 11월 대법원 대법정에서 세월호 선장 이준석의 상고심 선고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2015.11.12 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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