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외무고시 차석합격…인도 근무시 평생의 멘토 노신영 총리와 인연<br />
2004년 노무현의 외교부 장관…2006년 '세계의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 돼
(서울=포커스뉴스)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대한민국의 '핫 키워드'로 또다시 부상한 반기문 총장, 그가 '세계의 대통령'으로 일컬어지는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외교관 꿈꾸며 영어 몰두한 충북 음성 소년 '반기문'
반 총장은 어린 시절 외교관을 꿈꿨다. 1944년 6월13일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난 반 총장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방문했던 변영태 외교부 장관을 보고 외교관에 대한 꿈을 꾼 것이다.
반 총장은 세계무대로 나아가기 위해 영어에 몰두했고 충주고등학교 시절인 1962년, 적십자사가 주최한 영어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외국학생의 미국방문 프로그램인 비스타(VISTA·Visit ofInternational Student to America) 프로그램에 한국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미국을 방문한 반 총장은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한 반 총장은 1970년 2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제3회 외무고시에 차석으로 합격, 같은해 3월 외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반 총장은 신입 외교관 연수를 마칠 때는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 모친 집 사드리기 위해 인도에서 공직 시작
외교부 사무관으로 일하던 반 총장이 해외 근무의 첫 발을 내딛은 곳은 인도 뉴델리다. 반 총장은 인도 뉴델리 총영사관에 지원한 이유는 어머님께 집을 사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위험비 수당을 받기 위해서였다. 반 총장은 이후 주인도대사관 부영사(1972년), 주인도대사관 2등 서기관(1974년), 주인도 대사관 1등 서기관(1976년) 등을 거쳤다.
반 총장의 멘토로 잘 알려진 노신영 전 국무총리와의 인연도 인도에서 비롯됐다. 당시 주인도 대사가 노 전 총리였기 때문이다. 노 전 총리는 반 총장의 능력을 높이 사면서 1985년 총리 의전비서관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반 총장은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 주미대사관 총영사(1987년), 외무부 미주국장(1990년), 외무부장관 특별보좌관(1992년), 주미공사(1992년) 등을 역임했다.
1994년 발생한 제1차 북한 핵위기 당시 주미대사관 정무공사였던 반 총장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대북정책을 조율했으며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체결과정에도 참여했다.
반 총장은 1995년 2월 외무부 외교정책실장, 외무부 차관보로 재직했고 1996년 11월에는 외교안보수석으로 발탁됐으며 1998년 외무부 대사를 맡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
◆ '관운의 사나이' 반기문…2001년 위기 맞기도
물론, 힘든 시기도 경험했다. 2000년 제2대 외교통상부 차관이 됐지만 2001년 한러 정상회담 합의문에 탄도탄 요격미사일 제한 조약이 들어가 외교부 차관에서 물러났다.
반 총장은 사실상 좌천인 유엔 총회의장 비서실장으로 밀려나며 공직 생활 위기를 맞았지만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국제경험을 쌓았고 유엔의 내부 사정을 잘 알게되면서 이후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하는 자양분도 키워나갔다.
2003년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됐고 이후 2004년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관운의 사나이'로 불렸던 반 총장. 때마침 2006년 유엔 사무총장직이 아시아에 돌아갈 차례였고 반 총장은 당시 인도 출신 샤시 타루르와 경쟁, 수차례의 예비투표를 거쳐 최종후보가 됐다. 반 총장은 총회 표결을 통해 2006년 10월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한민국의 '핫 키워드'로 또다시 부상했다. 그가 '세계의 대통령'으로 일컬어지는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Photo by Dan Kitwood - WPA Pool /Getty Images)2016.04.20 ⓒ게티이미지/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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