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빼고 다 바꿔"…선거 참패 때마다 정치권 '무한반복'

편집부 / 2016-05-16 06:00:50
이건희 회장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자"…'원조'<br />
광주 찾은 더민주 "김대중-노무현 정신 빼고 다 바꾸겠다"<br />
혁신위 구성 앞둔 새누리당 "혹시 아나. 마누라 빼고 다 바꿀지"<br />
선거 전후 두드러지는 '다 바꾸겠다'는 목소리
△ 제20대 국회의원 배지 공개

(서울=포커스뉴스) "김대중-노무현 정신만 빼고 다 바꾸라는 호남의 민심, 정권을 교체하라는 광주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다시 섰다." (12일‧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자 결의문)

"혹시 아나. 마누라 빼고 다 바꾸게 될지.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12일‧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최근 정치권에선 '000 빼고 다 바꾸겠다'는 말이 유행이다. 4‧13 총선 결과 드러난 민심을 바탕으로 여야 모두 변화를 주창하며 당 재건에 나서고 있는 것.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여야가 내년 말로 예정된 대선을 겨냥, 다시 한 번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작업을 앞다퉈 시작한 것으로도 풀이 가능하다.



◆ 이건희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자"…신경영 주창

'~ 빼고 다 바꾸겠다'는 표현은 유난히 정치권에서 자주 쓰인다. 특히 선거처럼 커다란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국민에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표현은 정계가 아닌 경제계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쓰고 있는 이 표현의 '원조'는 바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보자"고 신경영을 주창하며 변화를 독려했다.

당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는 '질'보단 '양'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건희 회장이 임원들을 소집해 양 위주의 경영을 버리고 질 위주로 경영하라고 주문한 것.

이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가 될 수밖에 없다. 잘해봐야 1.5류"라며 "앞으로 21세기에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불량 제품을 회사의 '암적인 존재'로 정의하고 선진국 기업들처럼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 질 위주의 경영을 해야 미래의 수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광주 찾은 더민주 "김대중-노무현 정신 빼고 다 바꾸겠다"


더불어민주당은 '야권의 심장' 광주에서 "김대중-노무현 정신만 빼고는 다 바꾸라는 호남의 민심, 정권을 교체하라는 광주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다서 섰다"고 결의를 다짐했다.

제20대 국회 더민주 당선인들은 지난 12일 광주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오늘 우리는 총선 민심을 더 크게 듣고, 더 멀리 보고, 더 깊게 성찰하기 위해 모였다"며 원내 제1당이 된 승리의 기쁨 대신 처절한 반성이 담긴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날 당선인들은 "지난 총선에서 우리는 매서운 회초리를 맞았다. 호남의 목소리를 제대로 경청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호남의 지지를 당연하게 여긴 안일함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었다"고 호남 패배의 원인을 분석했다.

이어 "호남은 우리 당의 뿌리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정부 10년을 꽃피울 때도,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8년을 견뎌낼 때도 우리 곁에는 호남이 있었다"며 "뿌리 같은 호남을 잃고 우리 당은 생존할 수 없다"고 지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반성한다. 다시 시작하겠다. 호남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듣겠다"며 "다시 호남의 손을 잡고 정권교체를 위해 수권능력을 키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 받아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호남 일부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신만 빼고는 다 바꾸라는 호남의 민심"이라는 더민주의 주장을 "김대중 정신만 빼고는 다 바꾸라는 게 호남의 민심"이라고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노무현의 '운명'을 이어받은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호남의 비호감이 담겨 있는 분석이다.

◆ 혁신위 구성 앞둔 새누리당 "마누라 빼고 다 바꿀지"


새누리당 역시 변화를 얘기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최근 혁신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일각에서 '들러리' 비판이 제기되자, "혹시 아나. 마누라 빼고 다 바꾸게 될지.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밝힌 것.

정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새누리당이 '쇄신형' 비대위 대신 '관리형' 비대위와 혁신위원회를 각각 출범시키기로 한 것과 관련, 혁신위의 권한이 거의 없고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비판이 일자 이같이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2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가진 티타임에서 '혁신위 무용론'에 대해 "가소로운 이야기"라고 일축한 뒤 "내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땜빵·땜질·미봉·봉합식 혁신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당선인들에게) 설문지를 돌려서 얘기했고, 두 차례에 걸친 전체 당선인총회와 초선 당선인총회를 통해 토론회를 했다"며 "나는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의견을 들어보고 총의를 듣는다"고 혁신위의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거른 결과 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아서 하는 것에 과반수 가 나온 것 아니냐"면서 "투트랙으로 가자는 의견이 한 70%가 나왔다"고 설문 결과를 전했다.

또 "혁신위는 적어도 새누리당을 재창조하겠다는 그런 의미를 담아야 한다"면서 "나아가 우리의 최종 목표인 내년 12월 정권 재창출의 출발선으로서의 혁신위가 돼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정 원내대표는 "전당대회 이전에 성안(成案)된 혁신안이 나올 것 아니냐. 그 성안된 혁신안에 새로운 지도부가 못 건드리는 장치를 만들겠다"고 말해 혁신위의 독립성을 보장할 장치를 마련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어 "새누리당 보수정당 그렇게 간단하게 죽지 않는다. 절대 간단하게 죽어서도 안 된다"며 "다시 리빌드업(re-build up) 해야 한다. 새누리당을 재창조해야 한다"고 개혁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 선거 전후 두드러지는 '다 바꾸겠다'는 목소리

'~ 빼고 다 바꾸겠다'는 그동안 정치인들이 여러 차례 사용해 온 '정치권 단골메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당내에서 "청와대는 대통령 빼고 전부 다 바꾸라"며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일방적인 승리'를 예견한 여론조사 결과가 빗나간 것으로 나타나자 이대론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친박‧친이‧중도 등 계파를 막론하고 "대통령의 눈‧귀를 막고 있는 사람들을 교체해야 한다" "당‧정‧청 인적쇄신이 시급하다" "초‧재선의원 등 젊은 사람들이 당으로 들어와야 한다" 등의 목소리를 냈다.

선거 결과로 확인된 민심의 이반을 되돌리고 당을 수습하려면 '다 바꿔야 한다'는데 대다수의 의원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야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각각 "박근혜 후보 빼고 다 물러나야 한다(새누리당)" "마누라 빼고 다 바꾸겠다(민주통합당)"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10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자 유승민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후보 빼고 다 바꾸자. 나부터 선대위 부위원장직을 내려놓겠다"고 단호히 주장했다.

당시 유승민 부위원장은 박근혜 후보가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직접 "마누라 빼고 다 바꾸겠다"는 말을 했다.

대선 20일 전 전남 순천에 방문한 문재인 후보는 집중유세에서 "정당 혁신을 계속해나가겠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제게 힘을 모아 달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18대 대선 당시 순천은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를 위해 '무공천 지역'으로 선정한 뒤 급속도로 여론이 악화되고 있었다. 이를 의식한 듯 문 후보는 "아직 국민들의 눈높이에 많이 모자란 것을 알고 있다. 더 바꿔서 완전히 환골탈태한 민주당으로 바꾸겠다"며 민심잡기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이후 무너져 내린 당 재건에 나선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2013년 1월 광주에서 '회초리 민심간담회'를 열고 "대선에서 뜨거운 성원을 받고도 정권교체에 성공하지 못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자리에서 문 비대위원장은 "저희 민주당은 60년 정통야당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며 "일체 기득권이나 정치생명에 연연하지 않고 사즉생의 비장한 각오로 헌신하겠다"고 또 다시 '변화'를 입에 올렸다.4.13총선을 이틀 앞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착용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다. 2016.04.11 김인철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우상호 원내대표, 윤장현 광주시장 등 의원 및 당선인들이 12일 오후 광주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2016.05.12 박기호 기자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20대 국회 초선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정진석 신임 원내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6.05.10 양지웅 기자 유승민 무소속 의원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미소 짓고 있다. 2016.05.03 김흥구 기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대표가 18일전남 신안 하의도에 있는 김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 기념비를 둘러보고 있다.<사진제공=문재인의원실> 2016.04.19 포커스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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