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변호인, 실탄 격발 과정 두고 팽팽한 접전
(서울=포커스뉴스) 지난해 8월 서울 은평구 구파발 검문소에서 의경을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은 박모(54)경위의 항소심 2차 공판 증인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안전과 김모 총기흔적연구실장이 출석했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정선재) 심리로 11일 진행된 박 경위에 대한 항소심 증인신문에서 김모 실장은 “(박 경위가) 피해자의 동선을 따라 총구를 겨눴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총이 격발된 위치나 탄도로 봤을 때 피해자가 움직이자 이를 따라 총구가 같이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 현장이 협소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총구를 의식하며 몸을 피했고 이를 본 박 경위가 총을 피해자쪽으로 총구를 옮겨 격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날 검찰은 박 경위가 피해자 박모 수경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 데 고의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려 했다.
이 때문에 이날 증인신문의 핵심 쟁점은 ‘왜 실탄이 발사됐는가’였다.
범행에 사용된 총기는 탄두의 구경이 0.38인치(약 9.7mm)인 38구경 6연발 리볼버 권총이다.
경찰장비관리규칙에 따르면 경찰은 휴대하는 권총의 6개 약실 가운데(사진 참조) 1번 약실에는 공포탄을, 2~5번 약실에는 실탄을 장전한다.
게다가 실제로는 공이(탄환의 뇌관을 쳐 폭발하게 하는 총기 부품)가 위치하는 6번 약실의 경우 비워두도록 돼 있다.
휴대 중 방아쇠 당김 없이 공이가 탄피를 때려 발생하는 오발 신고를 막겠다는 뜻이다.
원칙대로 빈 약실인 6번 약실에 공이가 위치해 있었다면 두 번의 발사 행위가 있어야 실탄이 격발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찰은 오발 사고를 막기 위해 방아쇠 뒤에 단단한 고무재질의 ‘안전 고무’를 설치한다. 고무가 설치돼 있을 경우 발사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 실장 역시 같은 취지의 증언을 했다.
김 실장은 “현장에서 총기를 제시받았을 때나 실린더를 개방하고 확인했을 때, 장전 위치로 보면 공포탄과 실탄 4발이 장전돼 있었고 두 번째 실탄(2번 약실)이 발사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 실장은 “발사 후 총기가 그대로 보존된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면서 “탄창 자체가 개방형이기 때문에 어느 약실에 장전돼 있던 실탄이 발사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박 경위의 행동이 살인의 고의가 있었던 것이 아닌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해당 권총의 경우 실제 방아쇠를 3분의 2정도만 당기게 되면 실린더가 회전해 약실 위치가 변동하게 된다.
때문에 총을 겨눠 장난을 치던 중 약간의 힘이 방아쇠에 가해졌고 6번 약실이 아닌 1번 약실(공포탄 장착 약실)에 공이가 위치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다시 방아쇠를 당기게 되면 2번 약실에 위치한 실탄이 발사된다.
결국 실린더 회전을 인식하지 못한 박 경위가 방아쇠를 당기면서 벌어진 참사라는 게 변호인의 주장이다.
그러나 김 실장은 “한계를 조금만 넘으면 격발되기 때문에 장전된 상태에서 이런 부분에 숙련될 정도의 실험이나 연습을 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역시 “실제로 두발이 돌아갈 정도로 힘 조절을 하기 위해 수차례 시도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해당 권총으로 변호인이 주장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지만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날 변호인은 사건 당시 박 경위가 중지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방아쇠를 당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수에 의한 오발일 뿐 의도를 가진 격발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김 실장은 “중지에 깁스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다”면서 “나도 중지 힘을 거의 못쓰고 휘어있는 상탠데, 이런 상황을 처음 시연하긴 하지만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에 변호인은 다시한번 실탄이 장전돼 있을 때와 비어있을 때 방아쇠를 당기는 힘 차이를 설명하려 했지만 김 실장은 “탄환 장착 여부에 상관없이 같은 힘으로 당기면 된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변호인이 계속해 ‘실수에 의한 격발’을 입증하려하자 피해자 어머니는 또한번 눈물을 쏟았다.
검찰 역시 “피고인은 당초 총기를 인수인계 받았을 때 실린더를 열어봤다고 진술하다가 3회부터 진술을 변경하고 있다”면서 “이는 사건을 인수자의 잘못으로 돌리기 위한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방아쇠를 당기는 힘 차이 때문에 격발됐다는 얘기는 수사 초기부터 기소시까지 한번도 말한 적이 없는 부분”이라며 재판에 이르러 이같은 진술이 나오게 된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사건 당시 사용돼 검찰에 압수된 총기가 등장,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오열하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재판부는 “증인신문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유가족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계속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검찰은 해당 총기를 이용해 사건 당시를 재연했고 재판부 역시 총기를 직접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겨보는 등 당시 검찰과 변호인의 주장을 판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앞서 검찰은 1차 공판에서 “박 경위에 대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검찰은 “1심에서 살인죄를 무죄로 판단했다”면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에 대한 판단 부분에서 사실오인과 법리오해가 있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전체적으로 형량이 너무 적었다며 양형부당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변호인은 항소이유를 설명하기 앞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피해자 부모를 포함한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한 뒤 “형이 무겁다는 취지는 아니지만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에 있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고 해당 혐의가 무죄로 결정된다면 양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 경위는 지난해 8월 25일 자신이 근무하던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 1생활관에서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으로 장난을 치다가 박 수경에게 실탄을 발사해 사망하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 경위는 사건 당일 박 수경 등 검문소 소속 의경 4명이 은평경찰서에서 성폭력 관련 교육을 받은 뒤 늦게 복귀한 것에 불만을 품던 중 생활관에서 간식을 먹고 있던 박 수경 등을 향해 권총을 겨눴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장난으로 총기를 잡은 것이지 협박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권총을 겨눌 경우 상대방은 겁을 먹는다”며 “피해자들이 겁먹을 것을 알면서 총을 겨눈 것은 협박죄에 해당해 피고인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살인에 대한 고의성에 대해서는 “권총은 격발시 첫발은 공포탄이 발사되고 두번째발 부터는 실탄이 발사된다. 따라서 정상적 권총은 첫 격발시 실탄이 발사될 수 없다”며 “피고인의 격발에 의해 공포탄이 아닌 실탄이 발사됐으며 살인 고의를 인정하려면 피고인이 실탄이 발사되도록 (조작)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당시 피고인은 경찰로 재직하며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피고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것을 감수하면서 고의로 총을 쏴 숨지게 한 고의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구파발 총기사고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유가족이 항소심 1차 공판에 앞서 박 경위에 대한 살인죄 적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경희 기자 gaeng2@focus.co.kr본 사진은 실제 사용된 총기가 아닌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자료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