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요직 거친 뒤 대통령 후보에 올라
(서울=포커스뉴스)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외무·문교부장 등 요직을 역임했던 신익희 선생의 60주기 추모식이 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날 오전 11시 진행되는 추모식에는 정의화 국회의장,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박유철 광복회장, 신경식 대한민국헌정회장, 유지수 국민대학교 총장을 비롯한 각계인사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1894년 7월11일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한 해공 신익희는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를 거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신익희는 와세다대학 재학 중 고향에 동명강습소(東明講習所)를 열고, 졸업 후에는 서울 중동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 교수가 됐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해외 연락 업무를 맡았던 그는 같은 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조직을 위한 비밀회의를 갖고 임시의정원 회의를 열었다.
국가보훈처는 "임시정부 조직 당시 신익희는 국호, 관제, 정부 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선포함으로써 역사적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다"면서 "또 임시정부 법무차장, 내무·외무차장, 국무원 비서장, 법무총장, 외무총장, 내무·외무·문교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 초대학장을 지내고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으로, 1948년 제헌국회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1949년에는 민주국민당을 결성해 위원장에 취임했고, 1950년에는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의장에 올랐다.
이후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으로 확대·발전시켜 대표 최고위원이 됐으며, 1956년에는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했지만 같은 해 5월5일 유세 중 서거했다. 정부는 신익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2013년 진행된 신익희 선생 57주기 추모식. <사진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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