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포커스뉴스) '현혹되지 마라.' 영화 '곡성'의 포스터에 쓰인 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현혹될 것들로 가득하다. 믿고 싶지만, 이도 저도 믿기 어렵다. 이런 부분을 '곡성'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기괴한 사건으로 꽉 응집시켜 보여준다.
'곡성'은 조용한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며 시작한다. 그런데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의 상태가 이상하다. 눈은 흰자만 보이고, 온몸에 기이한 물집으로 가득하다. 경찰은 야생버섯 중독으로 사건을 결론짓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를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사람을 홀린 탓이라 말한다.
마을 경찰 종구(곽도원 분)는 경찰의 결론보다 마을 사람들의 말을 믿는다. 특히 사건을 목격했다는 무명(천우희 분)의 말을 듣고 이를 확신한다. 사건을 마주하는 종구의 마음이 점점 다급해진다. 자신의 딸 효진(김환희 분)이 피해자와 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딸을 위해 무속인 일광(황정민 분)까지 마을로 불러들인다.
나홍진 감독은 "피해를 당한 분들, 그분의 입장에서 사건을 한 번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왜 그 사람이 피해자가 되어야 했을까를 고민하며 '곡성'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나 감독의 전작 '추격자'(2008년), '황해'(2010년)와는 다른 흐름이다. 전작에서 가해자가 영화의 중심에 있었다면, '곡성'에서는 피해자가 중심에 선다.
하지만, 가해자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추리극과는 또 다른 흐름을 갖는다. 악령인지, 귀신인지, 환각인지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이는 어떤 이에게는 공포로, 다른 이에게는 의문으로 미스터리한 사건과 인물을 쫓으며 긴 상영시간을 몰입하게 한다.
영화 속에는 가톨릭, 토속신앙 등이 등장한다. '곡성'의 문을 여는 것도 성경 구절이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을 향해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라고 밝히는 부분이다. 그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종구를 포함한 관객까지도 진실을 찾아야 한다. 다급해진 마음은 의심에 의심을 부르고, 판단은 어려워만 진다.
이렇게만 말하면 영화는 한없이 무겁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는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가 있다. 극 초반 무기력하고 겁 많은 종구의 캐릭터나, 어른과 아이가 바뀐 것 같은 종구와 딸의 대화, 그리고 순박한 시골 마을 사람이 경찰 조사에 임하는 자세 등은 긴장을 풀어주며 서서히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한발 한발 이끄는 힘이 된다.
곽도원은 '곡성'의 156분의 상영시간 중 90% 동안 등장한다. 그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다. 곽도원의 인생 연기를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 연기가 잘해서 사용된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 전체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것처럼 연기의 폭이 넓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홍진 감독 역시 곽도원의 연기에 만족감을 표했다. 나 감독은 "총이라면 영점이 어마어마하게 잘 잡힌 총이다. 조준하면 무조건 맞는다"고 극찬했다.
천우희와 황정민의 연기 또한 인상 깊다. 두 사람 모두 전작에서 한 작품을 이끄는 주연으로 활약했다. 반면, '곡성'에서 이들은 적은 분량은 적다. 그리고 임팩트만큼은 강하다. 또 다른 주역을 꼽자면 곽도원의 딸로 나오는 김환희다. 피해자가 돼 정체 모르는 것에 점점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15세 관람가 등급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든다.
'곡성'이라는 마을 공간은 이 모두를 품는다. 굽이굽이 연결된 산등성이나, 앞뒤를 알 수 없는 산속, 그리고 그 속에 위치한 외지인의 집 등은 스크린 속에서 비밀을 품고 있는 존재감을 준다. 스태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이들은 121회차 촬영 중 80%에 달하는 97회차 분량을 로케이션으로 진행했다. 산길도 나지 않은 길을 해발 400m까지 무거운 장비를 지고 이동해야 했고, 매직아워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한 장면을 며칠씩 걸려 촬영하기도 했다. '설국열차', '마더' 등의 작품을 맡은 홍경표 촬영 감독은 '곡성'에서 미스터리한 공기까지 영상에 담아낸 듯하다.
'곡성'은 여러모로 관객을 현혹할 요소로 가득한 작품이다. 아마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나홍진 감독은 작품의 의미에 대한 답을 아낀다. 대신 그는 "뉴스를 보다 보면, 정말 신이 계실까? 생각이 든다. 만약 계신다면, 그 신은 선하실까? 궁금증도 든다. '곡성'도 관객들이 보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곡성'은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작품성이라는 것이 대중성과 일맥상통하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나홍진의 세 번째 작품을 대할 관객의 반응에 기대가 쏠리기도 한다.
혹시 겁이 많은 관객이라면 마음을 다잡고 볼 것을 권한다. '곡성'의 메가폰을 잡은 것은 나홍진 감독이다. 어느 장면 하나 타협해서 부족하게 보여줄 리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염소의 내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상영시간 156분.곽도원, 황정민, 천우희가 열연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이십세기 폭스코리아>곽도원은 '곡성'에서 마을경찰 종구 역을 맡아 사건에 가까이 다가간다. 사진은 '곡성' 스틸컷.<사진제공=이십세기 폭스코리아>'곡성'의 배경이 되는 마을 전경 스틸컷. <사진제공=이십세기 폭스코리아>'곡성'의 곽도원, 천우희, 황정민(좌측부터)의 캐릭터 포스터. <사진제공=이십세기 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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