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연이은 오열…재판정 울린 눈물
(서울=포커스뉴스) “우리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진짜 몰랐어.”
지난해 8월 서울 은평구 구파발 검문소에서 일어난 의무경찰 사망사고의 유가족이 기자를 처음 보자마자 꺼낸 말이다.
의무 경찰 박모(21) 수경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은 박모(54) 경위의 항소심 첫 공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유가족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있을 힘조차 없어 보이던 박 수경의 어머니는 법원 앞 공중전화 박스에 겨우 몸을 기댄채 벅차오르는 울음을 애써 삼켰다.
그는 “당연히 살인죄로 처벌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명백한 살인인데 중과실치사라니요”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구파발 총기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유가족은 20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 경위에 대한 살인죄 적용 △사건 당시 관련 책임자 전원에 대한 처벌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현장에는 박 수경의 대학 동문인 동국대학교 총학생회 학생들이 함께했다.
동국대학교 총학생회장 안드레씨는 “떼를 쓰고 안되는 일을 억지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을 바로 잡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 문제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동국대 전체 학생을 비롯해 대한민국 국민의 문제이며 제대로된 처벌만이 군인권 신장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담담하게 학생들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유가족의 눈에 눈물이 흐른 것은 박 수경의 동생이 마이크를 잡으면서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박 수경의 동생은 한동안 감정이 복받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는 주변의 격려에 어렵게 입을 뗀 그는“누가봐도 명백한 살인이는데 박 경위는 오빠를 유학 보낸 걸로 생각하라고 말했다”면서 “너무 억울하다. 한번만 관심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박 수경의 부모 역시 딸의 모습을 보며 먼저 간 아들이 떠올랐는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이날 현장에는 중간고사를 이유로 많은 학생이 참여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 간절함만은 수백 수천의 마음과 비할바가 없었다.
지나가던 시민들 역시 통행이 방해된다거나 마이크 소리가 시끄럽다는 내색 하나 없이 이들의 사연에 함께 안타까워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공대위 학생들과 유가족은 법정으로 이동했다.
재판이 10분 앞으로 다가오자 만감이 교차했는지 박 수경의 어머니는 법원 복도 의자에 쓰러져 한참 눈물을 흘렸다.
재판이 시작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심에서 징역 6년 형을 받고 법정구속된 박 경위가 재판정에 들어서자 박 수경 어머니는 참아왔던 울분을 터트렸다.
박 경위를 향한 어떤 원망의 말도 없었다. 그저 아들을 잃은, 아들을 떠나보내게 만든 장본인을 바라보며 오열할 뿐이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의 항소 이유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유가족의 오열은 계속됐다.
유가족의 슬픔을 느낀 탓인지 재판부는 재판정에 울리는 유가족의 울음 소리를 그냥 두고볼 뿐이었다.
통상 법정 소란시 장내를 정리하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유가족이 제출하고 있는 서류들은 모두 검토하고 있다”는 말로 이들을 위로했다.
변호인 역시 항소 이유를 설명하기 전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피해자 부모를 포함한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는 말을 먼저 전했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박 경위가 퇴정하자 유가족은 그제서야 마음껏 소리내 울었다.
재판부는 곧장 다음 재판을 진행하지 않고 5분간 휴정을 명했다. 유가족에게 마음을 달랠 시간을 주려는 듯 보였다.
재판정을 나선 뒤에도 한참 눈물을 흘리던 박 수경의 어머니는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아들 또래 기자에게 마음이 쓰였는지 “식사는 했냐. 밥 안먹었으면 밥 먹으러가자”는 따뜻한 말을 건넸다.
감사한 마음만 받은 채 한참동안 유가족을 지켜봤다. 아들 또래의 사람에게 유독 눈길을 주던 박 수경 어머니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박 경위는 지난해 8월 25일 자신이 근무하던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 1생활관에서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으로 장난을 치다가 박 수경에게 실탄을 발사해 사망하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 경위는 사건 당일 박 수경 등 검문소 소속 의경 4명이 은평경찰서에서 성폭력 관련 교육을 받은 뒤 늦게 복귀한 것에 불만을 품던 중 생활관에서 간식을 먹고 있던 박 수경 등을 향해 권총을 겨눴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장난으로 총기를 잡은 것이지 협박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권총을 겨눌 경우 상대방은 겁을 먹는다”며 “피해자들이 겁먹을 것을 알면서 총을 겨눈 것은 협박죄에 해당해 피고인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살인에 대한 고의성에 대해서는 “권총은 격발시 첫발은 공포탄이 발사되고 두번째발 부터는 실탄이 발사된다. 따라서 정상적 권총은 첫 격발시 실탄이 발사될 수 없다”며 “피고인의 격발에 의해 공포탄이 아닌 실탄이 발사됐으며 살인 고의를 인정하려면 피고인이 실탄이 발사되도록 (조작)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당시 피고인은 경찰로 재직하며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피고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것을 감수하면서 고의로 총을 쏴 숨지게 한 고의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박 경위에 대한 다음 공판은 5월 11일 3시 30분 열릴 예정이다.구파발 총기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유가족이 항소심에 앞서 박 경위에 대한 살인죄 적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경희 기자 gaeng2@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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