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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준 변호사, |
(서울=포커스뉴스) ‘먹방, 게임, 음란, 막장….’
‘아프리카TV’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곳인 만큼 늘 선정성 논란이나 막장 논란 같은 부정적인 시선을 받기도 한다.
주로 젊은 여성이 선정적인 옷을 입고 나와 방송을 하고 그 대가로 ‘별풍선’을 받는 방송이 아프리카TV의 대표적 콘텐츠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년 전, 아프리카TV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BJ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바로 법무법인 제하의 전세준 변호사다.
전 변호사는 지난해 2월 16일 첫 방송을 시작해 벌써 1년 넘게 아프리카TV를 통해 인기를 끌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시청자를 만나고 있는 전 변호사의 17일 현재 애청자 수는 5292명에 달하고 누적 시청자 수도 7만7909명이다.
권위와 보수의 결정체로 평가받는 법조인 집단에서 소통과 나눔을 실천하는 이단아의 등장이었다.
◆ '미디어의 민주화' 이념에 흔들린 변호사, BJ가 되다
‘국민들이 좀 더 쉽게 법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그를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포커스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아프리카TV를 왜 하게 된걸까.
사실 전 변호사는 아프리카TV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간혹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성인여성의 몸캠 등 선정성 논란을 겪는 곳이란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실제로 사이트에 가 본 적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BJ로 나서게 된 건 아프리카TV가 지향하고 있는 ‘미디어의 민주화’ 때문이었다.
“언론이나 미디어가 소수 권력집단의 통제하에 있고 인터넷 언론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 기자가 아니면 언론으로서의 파급력은 없잖아요. 게다가 TV콘텐츠는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방송을 결정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프리카TV는 다르더라고요. 의외로 좋은 뜻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죠.”
그렇게 그는 아프리카TV 개인방송을 제안받고 고민 한번 하지 않은 채 치열한 BJ의 길로 뛰어들었다.
고민은 덜컥 제안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시작됐다.
주변에서도 걱정이 컸다. 무료 법률서비스가 생기면 안 그래도 어려운 변호사 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전 변호사는 변호사법 위반 여부도 살펴봤고 서울지방변호사회, 대한변호사협회 등 회칙까지 검토했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다. ‘별풍선’을 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법률지식을 전달하자는 것이 그것이었다.
아프리카TV에서 별풍선이란 일종의 ‘출연료’다. 별풍선을 얻기 위해 일부 BJ들은 자극적인 콘텐츠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에는 한 여성 BJ가 “남자친구가 없다”고 말하며 2000만원이 넘는 별풍선을 받았다가 이후 거짓말이란 사실이 발각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 변호사는 “별풍선을 받으면 그걸 아프리카TV와 일정 비율로 나누게 되는데 만약 이렇게 됐을 때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더라”면서 “그래서 내가 별풍선을 통해 수익을 얻지 않는 건 물론이고 아프리카TV에도 그쪽이 챙기는 수수료를 받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별풍선을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아프리카TV가 챙기는 수수료 없이 별풍선으로 벌어들인 수익과 동일한 금액만큼 사비를 더해 기부하는 형태였다.
별풍선으로 100만원을 벌었다면 실제로 그가 기부하는 금액은 자신의 돈 100만원을 더한 200만원이었다.
아프리카TV 측이 이같은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그의 첫 방송이 시작됐다.
◆ 첫 방송 후 '멘탈붕괴'…인기 BJ 만나 노하우 듣기도
처음부터 개인방송을 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유명 BJ들과 함께하는 아프리카TV 공식 방송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적응기를 가진 그는 첫 방송을 열고 속칭 ‘멘탈붕괴’를 겪어야 했다.
“사람과 대화를 하는 직업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모니터에 얼굴이 나오고 채팅창을 보면서 방송을 해야하니까 정말 뻘쭘했어요. 채팅창에는 ‘니가 변호사면 내가 판사다’ 이런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좋은 취지로 시작한건데 이상한 잡담만 오고 가니까 멘탈이 흔들리더라고요.”
간단한 소개와 앞으로 진행될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그는 ‘잘 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두 번째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소통이 중심인 아프리카TV에서 그는 장황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그는 개인방송을 하는 유명 BJ를 만나 노하우를 묻기도 하고 다른 방송을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구축해갔다.
반응은 예상외였다. 수백명의 정기방송 콘텐츠가 있는 아프리카TV에서 최초의 변호사 BJ였던 전 변호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고정적인 팬층을 확보해갔다.
네티즌들의 실시간 채팅에서 최대 단점은 욕설, 비방 등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 변호사의 방은 다르다. 아프리카TV 관계자들마저 놀랄 정도다.
“변호사라 고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생각보다 욕을 하거나 하는 분들은 없으세요. 가끔 채팅창에 욕을 쓰고 하는 분도 계신데 그런 분들은 같은 방에 있는 분들이 얘기를 해서 내보내거나 하세요. 일종의 자정작용을 하고 있는 거죠.”
욕설 채팅을 차단하는 것 외에도 그의 방송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의 지식을 공유한다는 것. 예를 들어 부동산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늘 그의 방송을 애청하는 공인중개사가 직접 나서 채팅창에 답변을 해주곤 한다.
법률지식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일이 또다른 지식을 나눌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 "아프리카TV 통해 사건 수임 안해"…철저한 원칙 고수
사실 의도를 곡해하는 시선이 있을 수 있다. 법률사무실을 홍보해 이를 수임으로 이어가고자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아프리카TV를 통해 단 한 건의 사건도 수임하지 않았다. 그가 아프리카TV를 통해 온 의뢰인을 받지 않는다는 건 방송 시작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규칙이다.
“사무실이 서초동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가 소개하지 않는 이상 그냥 지나다 들리는 분들은 안계세요. 그래서 아프리카TV를 통해 온 건지 아닌지가 명확하게 구분이 되죠. 굳이 홍보를 생각했다면 아프리카TV가 아닌 지상파 방송을 택했을 겁니다.”
수임도 홍보도 아닌 지식의 공유를 방송 시작의 이유라고 설명했던 전 변호사의 신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 그도 딱 한 번 시청자를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꼭 한번 보고 싶다며 직접 찾아온 젊은 남성이었다.
“매주 제 방송을 듣는 애청자였는데 군대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군대 가기 전에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고 찾아와서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눴죠.”
그에게도 처음으로 팬이라는 게 생긴 순간이었다.
◆ "아프리카TV 통해 언제든 법률상담 받는 날 오면 그만둘 것"
인터뷰를 진행하며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전 변호사가 아프리카TV 방송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였다.
변호사는 시간이 곧 돈인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매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 변호사는 “가끔 채팅방에 글을 남기시는 분들 중에 정말 간절한 사연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은 실제로 변호사를 만나기도 어렵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힘든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라며 “그런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고 내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게 감사하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아프리카TV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만 지식을 주는 게 아니라 나도 그들이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면서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식의 폭도 넓어진다”고 말했다.
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또다른 지식을 얻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아프리카TV를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물론 그가 생각하는 끝이 있긴 하다.
“많은 변호사들이 아프리카TV 방송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사람들이 질문을 할 공간도 많아지고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많은 분들이 BJ를 시작하게 되면 그땐 저도 방송을 끝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 변호사는 지식을 나누는 일에도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그는 “제대로 할 거 아니면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그렇다”면서 “할려면 확실하게 하라고 하지만 우리가 성자도 아니고 그럴 순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어느 날은 지하철을 지나다 누가 구걸을 하고 있으면 돈을 건네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좋은 일이고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 마음이 움직이면 그만큼만 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라며 “방송 시간을 늘려달라는 요청도 있다. 어떤 때는 늘려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칼같이 끝낸다. 거기까지가 지금 내 수준의 적당함”이라고 설명했다.
전 변호사는 “만약 방송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능력도 되고 시간도 된다는 얘기니 얼마나 행복하겠나.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지랖 넓게 그렇게 할 수 없다”면서 “그냥 점점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나눔을 몸소 실천하며 살고 있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터뷰 말미 전 변호사는 “사실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이 수백개는 있지만 실제로 변호사를 만나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무장과 상담을 하는 정도”라며 “좀처럼 국민들이 접근하기 힘든 직업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런 걸 좀 허물고 사람들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면서 “사실 대부분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로 인해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다른 변호사 BJ가 많이 나와서 아프리카TV를 통해 언제든지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어 “국민들이 변호사에게 접근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만약 변호사 BJ수가 충분히 많아지면 방송을 그만둘 것”이라며 “그런 시간이 오는게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지난 8일 오후 아프리카TV 최초 변호사 BJ인 전세준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포커스뉴스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4.11 이승배 기자 지난 8일 오후 아프리카TV 최초 변호사 BJ 전세준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포커스뉴스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4.11 이승배 기자 지난 8일 오후 아프리카TV 최초 변호사 BJ 전세준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포커스뉴스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4.11 이승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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