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호세프가 도입한 ‘경제적 정의 사업’이 재정 발목 잡아
(서울=포커스뉴스) 역동적인 경제를 운영한다고 해서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BRIC(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라는 신조어까지 만들게 했던 브라질의 경제가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자당 출신 대통령들을 거치면서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브라질의 비극은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카 바이러스 창궐로 올 여름 개최 예정인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잔뜩 안개가 끼어 있다. 여기에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점차 확산되면서 최근 대통령 탄핵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 하원에서는 탄핵안 의결과 관련해 택일만 남겨둔 상태다.
브라질의 유명 기업인이자 자선 사업가인 고(故) 안토니오 에르미리오 지 모라에스는 2014년 타계하면서 “브라질은 폼페이의 마지막 시간들을 살고 있다”는 탄식을 남겼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브라질은 세계 투자가들이 앞 다퉈 달려오던 곳이었다. 그랬던 브라질이 지금은 세계 최대의 경제적 중환자가 돼 있다. 중국 경제의 감속이 세계경제에 우려를 던진다면 브라질 경제의 악화는 지구촌에 위협을 가한다. 왜냐하면 브라질은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져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기 때문이다(1인당 소득은 한국의 약 3분의 1). 만약 브라질 경제가 지금보다 더 나빠져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아야 할 상황에 빠진다면 그로 인한 충격은 세계 신흥국들에 전염될 수 있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도 태국 바트화(貨)의 갑작스러운 폭락으로 촉발돼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브라질 경제는 현재 자유낙하 중이다. 이 나라 경제는 지난해 3.8% 마이너스 성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브라질이 올해에도 마이너스 4% 성장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브라질은 현재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국 부채에 대해 7%의 금리를 물고 있다. 이는 유로위기가 한창이던 때 이탈리아나 스페인이 부담했던 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일자리는 매월 15만개씩 사라지고 있으며 인플레는 11%에 이른다. 브라질 채권은 국제시장에서 정크본드 취급을 받는다.
브라질이 이처럼 급속하게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2003~2010 재임)이 품었던 기대를 룰라의 후계자인 호세프 대통령(2011~)이 그대로 물려받아 실현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가 호황이었던 2000년대에 룰라 당시 대통령은 재정을 투입해 수많은 사회적 지원 사업을 벌여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BRIC이라는 용어도 그때 생겼다. 이후 이 용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추가돼 BRICS로 확대됐다.
하지만 그러다 갑자기 유가 폭락이라는 복병이 산유국 브라질에 찾아왔다. 이와 거의 때를 같이 해 브라질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이 브라질 천연자원 수입을 줄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브라질의 거대 독점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를 상대로 2년전 시작된 조사에서 룰라와 그의 피후견인 호세프가 다른 정부 관리들과 함께 페트로브라스에서 불법 자금을 받았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브라질 중앙은행장을 지낸 아르미니오 프라가는 브라질의 급속한 추락을 가리켜 “나라가 앞서 나가고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브라질 신문 ‘오 에스타도 지 상파울루’에 말했다. 그는 “브라질은 차입과 재정 확대에 매달림으로써 결국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룰라에게서 정부를 물려받은 호세프가 룰라가 했던 사회정의 사업들을 계속 확대해 나간 것을 가리키고 있다. 프라가는 “브라질은 잠에서 깨어 보니 마비된 국가라는 악몽을 만난 격이다. 그것은 경제적 비극”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의 경제적 비극이 하도 위험한 수준이다 보니 브라질보다 경제가 더 나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는 세계 투자자들의 주목을 좀체 끌지 못한다.
룰라와 호세프 치하에서 브라질이 한 일은 2000년대의 호황이 영원히 이어지리라고 여긴 것이었다. 그래서 브라질은 지출과 차입을 계속했다. 쉽게 말해 브라질은 ‘복지후생의 덫’을 만들어 그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룰라와 호세프의 노동자당은 사회적 지원과 기업복지 사업을 켜켜이 계속 쌓아 나갔으며 그런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엄청난 차입을 했다. 복지후생의 결정적으로 불리한 면은 그런 사업을 한번 시행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경우 그런 복지후생 사업이 현재 국가예산의 75%를 잡아먹는다. 복지지출과 소득 재분배를 위한 이전지급에 묶인 돈을 삭감하는 것은 사회적 소요를 각오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이전지급은 대부분 노동자당의 텃밭인 북부의 가난한 주(州)들에 뿌려진다. 여기에다 예산의 나머지 25% 가운데 상당 부분이 브라질의 불어난 부채에 대한 이자로 나간다.
브라질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 룰라는 2000년대 정부가 자금을 대는 일련의 사회적 지원 사업들을 맨 앞에서 이끌었다. 그렇게 해서 빈부 격차가 줄었다. 당시는 경제가 호황이어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복지 사업들은 브라질 정부 예산에 일대 타격을 가했다.
거대기업 페트로브라스 관련 추문은 브라질의 연방·주 단위 모든 정부기관과 얽혀 있다. 수십 년 간 페트로브라스는 정실(情實)인사와 부패의 온상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세프와 그녀의 멘토 룰라와 관련된 의혹은 브라질 2억500만 인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쉽게 믿게 됐다.
‘전국에서 가장 미움 받는 사람’이라고까지 불리는 호세프는 지금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브라질을 단합시키고 있다. 지난 12월에만 해도 호세프의 지지도는 75%였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사이 브라질 저소득층의 65%가 호세프를 싫어하게 됐다. 그들은 대통령이 긴축정책으로 돌아서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지난 10수 년 간 누려온 나아진 생활수준이 뒷걸음질 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브라질의 부유한 엘리트 가운데 75%는 호세프가 대통령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다. 이렇듯 호세프는 서방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겨냥한 탄핵 움직임을 ‘쿠데타’라고 주장하지만 최근 브라질 집권 연정의 붕괴가 잘 보여주었듯 국회의원들은 호세프 탄핵을 계속 밀어붙일 기세다.
호세프와 대조적으로 룰라는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그리고 브라질의 빈곤한 북부 주(州)들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은 영웅이다. 그 또한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에 얽혀 명성에 금이 갔다. 하지만 노조위원장 출신 대통령이었던 룰라가 도입했고 경제학자인 호세프가 이어 받아 12년 간 연속 시행한 경제적 정의 사업들로 인해 이득을 본 브라질 국민들은 여전히 룰라에게 감사해 하고 있다.
재정난 속에서도 브라질에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 나라의 외환보유액이 3710억 달러이어서 당장 부채 뒤치다꺼리를 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브라질 부채의 대부분은, 외국인 채권자들에게 코가 꿰인 그리스와 달리, 국내에서 조달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 탄핵 움직임이 본격화한 브라질에서 혼란이 가중될 개연성은 충분하다. 세계 경기 둔화와 대중영합적인 경제 운용이 어우러진 결과인 브라질 경제의 추락, 특히 재정운용의 왜곡이 향후 이 나라에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주목된다.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Photo by Vitaliy Belousov/Host Photo Agency/Ria Novosti via Getty Images)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Photo by Igo Estrela/Getty Images)브라질의 반정부 시위대가 지난달 21일 브라질리아의 대통령 관저 건물 표면에 '탄핵'이라는 단어를 비추고 있다.(Photo by Mario Tama/Getty Images)2016.04.04 ⓒ게티이미지/이매진스 리우데자네이루 시내의 페트로브라스 주유소.(Photo by Mario Tama/Getty Images)2016.04.04 ⓒ게티이미지/이매진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