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파탈 애칭 기분 좋아…늘 진한 멜로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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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하는 정진영 |
(서울=포커스뉴스) 배우 정진영이 회색빛 머리를 하고 들어섰다. 검은 머리카락과 흰 머리카락이 절반씩 자리해 그렇게 보였다. "원래 염색하지 않아요. 좋아하지도 않고요. 자연스러운 제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런 그는 최근 염색으로 흰 머리카락을 더 늘렸다. 얼굴은 주름 가득한 분장으로 브라운관 앞에 섰다. 최근 종영한 MBC '화려한 유혹'에서다.
정진영은 전직 총리 '강석현'으로 분했다. 실제 나이보다 십년 넘게 많은 68세 캐릭터다. 딸 뻘인 신은수(최강희 분)와 부부로 호흡했다.
처음 정진영은 배역을 거절했다. 뻔한 캐릭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캐릭터를 좀더 들여다 본 뒤 출연을 결정했다. 강석현의 숨겨졌던 이면에 끌렸다.
정진영은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4부까지 대본을 보고 출연을 거절했죠. 그런데 감독님이 술자리에서 작가님까지 부른 거예요. 그 자리에서 대본에 묘사 안 된 부분을 설명 들었죠. 알면 알수록 단순한 악역이 아닌, 악인이지만 내면에 선함을 가진 모습에 이끌렸죠. 이면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는 걸 좋아하기에 출연을 결정했죠"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정진영이 연기한 강석현은 복잡한 인물이다. 강석현은 과거 연인과 닮은 은수에 대한 관심이 사랑으로 발전해 결혼에 이른다. 죽음을 앞두고 깊이 뉘우치는 이유도 사랑 때문이다. 자칫 거부감을 불러낼 수 있는 소재임에도 은발 노인의 애절한 애정 연기는 많은 시청자를 설레게 했다는 평이다.'할배파탈(할아버지+옴므파탈)'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자신의 애칭을 말하는 정진영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배우들은 늘 멜로를 꿈꿔요. 순백의 감정이거든요. 그동안 기회가 없었죠. 대부분 남자와 작품을 찍었잖아요. 더구나 극 중이지만 서른살 차이 나는 어린 여성과 사랑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보통 그 나이 차이에 연정을 느끼고 결혼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 테니까요. 시청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충실하게 느껴 표현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연기했어요. 그러다 보니 멜로도 자연스럽게 굵어졌던 것 같아요."
정진영은 함께 호흡을 맞춘 최강희에게 공을 돌렸다. 편하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상대 배우에게서 캐릭터를 바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진영은 "최강희를 보면 눈이 사랑으로 가득 차보였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만큼 연기 호흡이 좋았어요. 그런 느낌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인데 시청자분들이 진하게 읽어주신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정진영은 "50대를 앞두고 갱년기를 겪었다"고도 깜짝 고백했다. 또다른 사춘기를 겪듯 50대 길목 앞에 선 정진영은 고민이 컸다. '화려한 유혹'은 그 고비를 넘기고 맞은 첫 작품이었다. "데뷔 28년 만에 신인의 자세처럼 연기의 새로움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저는 논리적인 분석을 좋아했던 사람이고 그렇게 훈련받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기는 감정이구나' 하는 걸 생각했죠. 남들은 다 알았는데 저만 이제 알게 된 것일 수 있어요. 대사없이 눈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게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대사하는 순간 시청자는 대사에 귀를 기울이거든요. 기본적인 건 감정이에요. 감정을 해석할 수 있는 해석력이 중요하죠. 무리한 설정도 해내야 하는 인물이라면 배우로서 해내고 싶어요."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한 커뮤니티에 자신의 갤러리(어떤 한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가 생겼다. 정진영은 예전에 이해 못한 '덕후(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꾼 말. 마니아 이상의 열정으로 하나에 집중하는 사람을 의미)'들의 문화를 알게 됐다. 배우 역시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빠져드는 '덕후'의 마음과 멀지 않다는 설명이다.
"우리 아들은 모범 청소년이에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더니 '아빠 나 '입덕(뭔가에 빠지다는 신조어)'했어요' 하더라고요. 용돈도 많이 안 줬는데 뭘 사 모으기 시작하고요. 예전에는 이런 문화를 이해 못했어요. 팬카페에서 주는 선물도 거절했죠. 아들이 덕후라고 주장하고 난 뒤 덕후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죠. 한 신문에서 덕후를 '대가에 무관한 것에 헌신하는 열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다른 분에게 생활에 신나는 보약이 된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많이 바뀌게 됐죠."
아들을 통해 또하나를 배우게 된 셈이다.
"저 역시 배우라는 일을 가장으로서 경제생활을 위해 했으면 재밌게 할 수 없었죠. 가보지 못하고 닿지 않는 부분을 조금씩 넓혀가야 배우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서울=포커스뉴스) MBC 드라마 '화려한 유혹'에 출연한 배우 정진영이 1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라운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인철 기자 배우 최강희(왼쪽)와 정진영은 MBC '화려한 유혹'에서 30세 나이차 부부를 연기했다. <사진제공=MBC><서울=포커스뉴스> 배우 정진영이 1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열린 MBC 드라마 '화려한 유혹' 라운드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인철 기자 <서울=포커스뉴스> 배우 정진영이 1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열린 MBC 드라마 '화려한 유혹' 라운드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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