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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 대 알파고, 세기의 대결 네번째 대국 |
(서울=포커스뉴스) 이세돌 vs 알파고의 승패에 인류의 운명이 걸린 듯 시끌벅적 왁자지껄 난장이다. 나는 시작부터 게임을 지켜보는 관중으로서 함께 유쾌하게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보드게임, 즉 게임의 일종이다. 게임의 어원이 어디에서 비롯했는가. 내 기억으론 카스피해에 살다가 이란고원의 아리안으로 그리스 지방으로, 또 일부는 인도로 굽이쳐 나간 인도 유러피언 족의 'ghem', 즉 '흥겹게 뛰다'에서 연유한다.
인류가 가장 광분하는 게임 중 하나인 스포츠의 룰과 축제를 대표하는 올림픽과 마라톤 등이 이들 인도 유러피언의 한 갈래인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했다는 게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각설하고 인간은 서로 죽이거나 죽어야 하는 생존경쟁의 살벌한 투쟁을 게임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가졌다. 어떤가? 스포츠를 비롯한 모든 게임이 격투, 전투, 또 전쟁에서 기원하지 않던가.
알파고를 탄생시킨 컴퓨터는 어떤가. 컴퓨터의 시조격인 계산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해독기가 모태였다. 미국은 2차 대전 승리를 위해 맨하튼 프로젝트, 즉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3000여명의 주부들을 고용해 구름버섯과 방사능 낙진 반경과 영향 반경 등을 계산하고 있었다.
인터넷은 어떤가. 기밀을 생명으로 하는 군사 통신망과 미사일 발사망을 위해 개발한 아르파넷이라는 전쟁 시스템에서 비롯하지 않았던가.
다시 이세돌 vs 알파고의 승부로 돌아와 보자. 사람들은 이들의 승패에 죽이고 죽는 게임 이전의 원형적인 생존투쟁을 상정하여 몰입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여기에 헤브라이즘의 종말론적인 징벌의 상징이 '스카이넷'과 같은 인공지능의 대립적 존재로부터 비롯되리라는 상상이 가세하여 긴박성을 더한다.
하지만 우습지 않은가.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게임을 넘어 인간을 노예화하거나 죽일 확률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여기엔 문화적 기제 하나가 숨어서 작동하는 듯하다.
아시다시피 인류가 문자와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문학 영역의 본질 중 하나는 현실에서의 죽음과도 같은 금기에 몰입하여 가상체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버려진 왕자가 성장하여 고국으로 돌아와 왕이 아비인 줄도 모르고 죽이고 어미인 왕비를 아내로 삼았다가 비운을 깨닫고는 두 눈을 파내며 황야를 떠돌았다는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 우리는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간의 갈등과 억압, 또 이를 뛰어넘으면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가상체험 한다.
아비세대와 아들세대는 투쟁과 갈등뿐인가. 아니다. 일리아드는 유랑을 떠나라는 신탁을 받고 온갖 괴물과 온 천지의 고난의 여정 속에서 벗 멘토르가 길러준 훌륭한 아들 텔레마커스의 조력으로 조국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아내 페넬로페와 나라를 구한다. 관중이나 독자는 운명에 맞서 죽음과 금기를 이겨낸 승리에 함께 환호하며 열광한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협력과 상생의 승리다.
바둑은 게임이다. 알파고는 인류에게 구글의 새로운 이미지메이킹에 성공하며 엄청난 자본의 가치를 증식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지거나 이기거나 의도된 전략이었다. 다만 이길 경우 더 많은 자본의 가치가 따른다. 이세돌은 당초 게임 멍석을 깐 구글의 충실한 주연급 연기자였지만 부가적으로 바둑의 새로운 붐을 일으키는 승리를 얻어냈으리라. 둘 다 이긴 것이다.
그럼 몰입해서 생사의 기로, 더하여 인류의 운명까지 걸며 한판 승부를 벌인 우리의 충실하면서도 너무나도 진지한 관중들은? 잠시 게임 몰입과 동일시의 환상에서 돌아와 안도하며 벌고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일상에 충실할 것이다. 아니 애초부터 이세돌과 알파고의 승부는 먹고 사는 각박한 현실을 잠시 식혀주는 청량제이고 유쾌한 대리만족의 도피 공간 정도였으리라 생각한다.
이쯤 아곤(Agon)이란 말을 깃대에 걸어 올려야겠다. 문학비평용어에선 후학이 스승이나 선배인 거장을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선의의 경쟁을 뜻한다.
이제 이세돌, 알파고 신드롬은 게임으로 즐기며 서로 가치와 이익을 얻는 '호모 아곤(Homo Agon)'의 서막을 의미하지 않나 의미를 부여해 본다. 나아가 지상의 모든 갈등과 투쟁이 이렇듯 가상화된 공간의 대리체험을 통해 정화되고 해소되는 선의와 상생의 미래를 그려본다.
나 또한 지금 이 순간, 인류 조상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 중 하나인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이세돌, 알파고 운운하며 즐겁지 않은가. 그것도 세종대왕 덕분에 세계 언어 중 가장 표현이 자유롭고 뛰어나다는 한글로 말이다.(서울=포커스뉴스)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네번째 대국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구글> 2016.03.13 포커스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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