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터키, 난민위기 헤치려 ‘편의(便宜)동맹’

편집부 / 2016-03-08 12:47:32
터키, “우리가 EU 위한 난민 수용소냐?” 반발<br />
그러면서도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지원에 매달려 <br />
‘중동국’ 아닌 ‘유럽국’ 되고 싶은 터키의 속내
△ 난민촌

(서울=포커스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유럽행을 원하는 난민 수백 만 명을 수용하고 있는 터키에 유럽연합(EU)이 난민 관리 비용으로 지원하겠다던 돈 30억 유로를 왜 안 주느냐며 EU를 대놓고 비판했다. 에르도안은 이날 공개 연설에서 자신은 브뤼셀 EU 정상회담에 배석한(터키는 EU국이 아니다)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터키 총리가 브뤼셀에서 돈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럽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위치한 터키는 유럽행 난민의 집결지다. 터키가 난민을 방출하기 시작하면 유럽은 난민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따라서 난민 유입을 막아야 할 EU 입장에서 터키는 잘 달래야 할 협상 파트너다. 그렇지만 위험한 파트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내에서 갈수록 권위주의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터키 남부와 국경 너머 시리아·이라크에서 쿠르드족 무장 세력을 추적하고 있다. 이라크는 총을 든 쿠르드족이라면 일단 자국이 불법집단으로 규정한 쿠르드노동당 소속으로 간주한다. 미국은 이슬람국가(IS) 격퇴에 쿠르드 민병대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일 EU 대통령 격인 도널드 터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에르도안 대통령과 상호 협력 회의를 마무리한지 불과 몇 시간 뒤, 터키 경찰은 터키 최대 반정부 일간지 ‘자만’을 습격했다. 이어 터키 정부는 이 신문을 법정관리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자만’의 논조는 하루 만에 반정부에서 친정부로 급선회했다. 에르도안이 독립적인 언론에 철퇴를 가하는 것을 보면서도 EU 지도자들은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왜냐하면 유럽은 터키를 난민 위기 국면의 구세주로 보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의 비위를 거슬렀다가는 터키로부터 그리스로 난민이 물밀 듯이 들이닥칠 수 있다.


하지만 에르도안도 유럽이 필요하다. 믿어 왔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 대해 터키가 느끼는 안보 불안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터키는 유럽에 도움의 손길을 내밂으로써 서방에서 친구를 얻기를 희망한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난민 문제를 매개로 한 터키와 유럽 간의 ‘무언(無言)의 동맹’을 최근 터키 현지에서 심층 분석했다.

터키 수도 앙카라 소재 하세테페 대학에서 ‘이주(移住)와 정치 연구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무랏 에르도안(터키 대통령과는 무관) 교수는 “터키는 더는 친구가 없으며 EU는 더는 희망이 없다”면서 “그것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협력을 얻을 수 있다”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 EU, 터키와 대화의 문을 계속 열어둬

EU가 난민위기에 대처하도록 돕는 야심적인 터키의 제안은 7일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터키와 EU 외교관들은 이 문제를 이달 하순 재론키로 했다고 외신은 보도하고 있다.

EU는 그리스에 도착하는 난민 가운데 일부를 터키로 되돌려 보내기를 희망한다. 그러자면 터키가 이에 동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날 회담에서 터키 측은 “기존에 EU가 터키에 약속한 지원금 30억 유로에 더해 추가로 30억 유로를 더 제공하고 터키 국민에 대한 더 신속한 EU 비자 발급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EU 지도자들은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난민 처리를 둘러싸고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던 EU-터키 간 거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사이에 앞서 이뤄진 양해에 기초한다. 이 양해의 골자는 △심지어 한겨울에도 하루 2000명에 달하는 난민의 터키→그리스 야간 도항(渡航)을 막기 위해 터키가 육상·해상 검문을 강화하고 △그리스에 밀입국하는 수많은 난민의 터키 귀환을 터키가 수락한다는 것이다.


EU는 터키 내 시리아 난민 270만 명이 터키에 눌러앉도록 돕기 위해 교육 및 취업 관련 사업비 명목으로 터키에 30억 유로를 제공키로 한 상태다. 난민을 터키에 붙잡아 두는 대가로 터키가 내건 조건은 EU를 여행하는 터키인에 대한 비자 면제를 올 여름까지 실행하라는 것이다. 이밖에 무언(無言)의 대상(代償)도 있다. 그것은 터키의 인권 문제와 언론자유에 대해 EU가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다. EU가 목청을 높이면 터키 사회가 동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기세로 몰려드는 난민 때문에 유럽은 실존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다. 절박하기는 터키도 마찬가지다. 터키에는 등록된 시리아 난민만 270만 명 있으며, 이와 별도로 아무런 증명서 없이 나라 곳곳을 떠도는 난민이 수십 만 명 있다. 이들 가운데 하루 수천 명이 터키 해안을 통해 출국해 발칸 국가들을 거쳐 독일로 향한다. 하지만 현재 발칸 국가들의 국경은 봉쇄된 상태다.

엄청난 수의 난민을 수용하는 터키의 환대에 대해 전 세계가 칭송하지만, 터키와 미국은 난민 발생의 주인(主因)인 시리아 내전을 끝낼 전략에 대해 더 이상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 관계는 상당히 긴장돼 있다.

시리아 내 IS와 싸우는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키로 한 미국의 결정에 터키는 격렬하게 반대한다. 미국이 러시아와 직접 협상해 불안한 시리아 휴전을 이끌어낸 것에도 터키는 화가 나 있다. 러시아가 휴전을 위반하고 시리아에서 폭격을 실시하는 데 미국이 침묵하는 것도 터키의 우려를 가중시킨다.

시리아 상황이 불안하다 보니 EU는 심지어 터키에 난민단속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국경 개방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내심은 다르다. 최근 발칸루트에 위치한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터스크는 아예 대놓고 “모든 잠재적인 경제적 이주자들이여, 유럽으로 오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EU 의장국인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4일 난민 유입의 사실상 전면 중단을 촉구했다. 이런 유럽의 정서에 맞장구치듯 다부토울루 터키 총리는 인간 밀수를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라고 불렀다.

◇ 터키, 독일과 다시 친해지려 난민문제에 협력

EU 지도자들은 터키가 난민 이동을 철저히 그리고 신속하게 차단해 주기를 바라지만 터키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에르도안 교수는 “위기는 이제 시작 단계”라면서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올 것이다. 그들은 매우 나쁜 환경으로부터 온다. 그들은 그들과 자녀들의 목숨을 건다. 그들은 유럽으로 가려 할 것이며 우리는 유럽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터키가 취하려는 조처는 EU의 정치 위기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완화하기 위한 임시방편의 성격이 강하다. 난민 위기로 유럽대륙은 분열됐다. 남동부 유럽 국가들이 과거 개방했던 국경을 폐쇄하고, 망명 신청에 제한을 두며, 그리스에 엄청난 압력을 가한 이후 분열은 심화됐다.


터키는 그리스와의 관계 증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일과 다시 더 가까워지기 위해 그리스를 돕는 행동을 해 왔다. 메르켈 총리는 가뜩이나 재정적으로 휘청거리는 그리스가 난민 부담 때문에 아예 주저앉지 않도록 그리스를 구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앙카라 소재 싱크탱크인 ‘망명과 이주 연구 센터’의 소장 메틴 코라바티르는 “이것은 터키가 그리스를 구원하고, 터키-독일 관계를 강화하며, 난민 문제에 있어 강력한 행위자, 진정한 발언권자가 되는 황금의 기회”라고 말했다.

터키는 독일의 지원 사격을 기대하면서 EU에 요구를 들이밀고 있다. 터키 국민 8000만 명에 대한 비자 면제 말고도 터키는 EU 가입 협상의 재개를 모색한다. 터키는 중동국가가 아니라 유럽국가가 되기로 하고 지난 수십 년 간 EU 가입을 꾀해 왔지만, 그리스·사이프러스·독일·프랑스의 반대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터키, 엉겁결에 난민위기 당해 뾰족한 대응책 없어

터키에 이렇다 할 난민 전략이 없는 한 가지 이유는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으로부터의 대규모 탈출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지난해 구명보트를 이용한 유럽으로의 대량 이주가 주요 위기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터키로서는 얼떨결에 난민 위기의 당사국이 된 셈이다.

터키는 난민의 고통을 덜어줄 중요한 조처들을 이미 취했다. 국내 시리아인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최근 전투가 격화된 시리아 북부 알레포 등지에서 터키입국을 바라고 피난 온 난민 수만 명에게 국경을 열어주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에르도안 교수의 예측에 따르면 현 단계에서 터키가 국경을 개방하면 시리아인 150만 명이 터키 영내로 들어온다.


올해 초 터키는 시리아인, 이라크인, 리비아인을 비자 요구 대상으로 정했다.터키는 또한 남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14개 국가 출신 경제적 난민을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는 협약을 마무리 중이다. 이들 국가 출신이 현재 그리스행 고무보트에 오르는 사람의 절반을 차지한다.

EU의 터스크 의장에 따르면, 불법 이주자들을 그리스로부터 돌려보내는 신속하고 대규모인 메커니즘은 가장 바람직한 방법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 밀수꾼들의 사업 모델을 효과적으로 분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키는 “이러한 이주자들의 고물 하치장”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터키 고위 관리가 폴리티코에 말했다.

◇ 비자 요건 강화하면 터키 관광산업에 타격

이런 접근법이 실패하면 터키는 비자 요건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은 터키 국가 수입의 큰 몫을 차지하는 관광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터키로서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정책이다.

터키 경찰은 출국 고무보트 단속을 강화했다. EU 최신 자료에 따르면 터키 당국은 2월에만 약 600명의 인간 밀수꾼을 체포했다.

하지만 2월에 5만6335명이 터키를 출발해 에게해를 건넜으며, 이는 하루 1942명꼴이다. 이것은 지난 11월 한창 때의 21만4792명(하루 5146명)보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 터키 관리들은 이 수치를 하루 1000명으로 낮추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또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이 터키 내 시리아 난민을 비행기에 태워 데려가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에게해를 건너지 않아도 된다.

난민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물론 시리아 내전의 완전한 종식이지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 문제는 쉽게 매듭지어질 것 같지 않다.이스탄불의 명물 술탄아흐멧 모스크.(Photo by Julian Finney/Getty Images)2016.03.08 ⓒ게티이미지/멀티비츠 도널드 터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오른쪽)과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터키 총리가 7일(현지시간) 브뤼셀의 EU 본부에서 기념사진 촬영 도중 농담을 나누며 웃고 있다.(Photo by Dean Mouhtaropoulos/Getty Images)2016.03.08 ⓒ게티이미지/멀티비츠 터키 수룩에 있는 시리아인 난민촌. 터키에서 가장 큰 난민촌으로 시리아 난민 3만5000명이 거주한다.(Photo by Carl Court/Getty Images)(Photo by Ozgu Ozdemir - Velo/Getty Images)2016.03.08 ⓒ게티이미지/멀티비츠 터키와 시리아 간 국경인 킬리스의 봉쇄된 검문소 앞에서 기자들이 보도에 열중하고 있다.(Photo by Chris McGrath/Getty Images)2016.02.07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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