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중국 견제하려면 북한과의 화해가 더 나은 선택
(서울=포커스뉴스) 핵을 가진 북한을 이미 감수해야 하는 미국은 북한 정권과 잘 지내도록 노력하는 편이 낫다는 전문가의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미국 터프츠대학의 국제법·외교학 전문대학원인 플레처스쿨에서 국제정치사와 중국의 외교관계를 가르치는 술만 칸 교수는 최근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 기고문 ‘왜 중국은 북한을 억제하지 않았나’에서 이같이 제안하고, 미국이 북한과 화해한다면 동맹국들이 충격을 받겠지만 외교는 동맹국들에 구속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를 의식한 칸 교수의 이런 권고는, 지난달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기 며칠 전 미국 정부가 북한의 선(先) 핵무기 개발 포기라는 오랜 전제조건을 포기하고 한국전쟁을 공식 종료하는 평화협정의 교섭을 시작하는 데 동의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1일자 보도와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칸 교수는 국제사회의 북핵 대응을 ‘김정은의 핵실험→세계의 경고→유엔의 행동 돌입→유엔의 의논에 관한 의논 주재’라는 도식(圖式)으로 묘사하면서 실제적인 일은 아무 것도 발생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미국의 정책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왜 중국이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 추가조처를 취하지 않는지 어리둥절해 하는데, 거기에는 단순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중국에 북한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칸 교수는 강대국과 보호국 간 미묘한 관계를 소개한다. 강대국이 통상 보호국에 우위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이해해야 한다. 강대국은 보호국을 상대로 협박하고 뇌물을 주고 애걸하고 설득하려 들 수 있지만, 보호국의 생존이 강대국 자신의 국가안보에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확신하면 강대국이 보호국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런 사실을 보호국은 대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전 중화민국 지도자 장개석을 공산주의 확산의 방파제로서 지원했을 때 미국은 이런 상황을 겪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독(有毒)한 외교정책이나 인권상황에 대해 미국은 애정이 거의 없지만 사우디를 중동안정의 주춧돌로 여긴다.
중국도 보호국에 대해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분리주의자들이 현지 중국 근로자들을 공격하고 중국 신장(新疆)의 회교 분리주의자들에게 무기를 공급하지만,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접속점을 파키스탄이 중국에 제공하기 때문에 중국은 타이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미얀마는 중국과의 국경지대를 따라 발생하는 폭력적인 충돌과 마약 밀수에 책임이 있지만 중국은 상업적이고 지정학적인 고려를 앞세워 미얀마 군부와 잘 지낸다. 북한과의 사이에 있어서도 중국은 수십 년에 걸친 북한의 과잉행동을 무시하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칸 교수는 설명한다.
북한의 전략 지정학적인 중요성은 중국 지도자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면 쏟아져 들어올 북한 난민을 중국은 겁낸다. 그런 사태는 중국 변경 지역의 자원을 싹쓸이할 뿐만 아니라 중국 내 조선족 사이에서 불만을 확산시킬 수 있다.
역사적으로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북한은 여전히 중국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완충지대다. 따라서 북한이 그런 역할을 제공하는 한 중국은 김정은 정권을 지원한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는 중국의 불안감을 심화시켜 북한 완충지대를 더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중국은 자국이 해안을 따라 적대세력에 포위돼 있다고 느낀다. 워싱턴과 도쿄에서 제기되는 ‘중국 위협론’은 중국의 그런 우려를 누그러뜨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 완충지대는 완벽하지 않지만 미국과 일본에 의해 적대시될 수 있는 세계에서는 어떤 이점이든 중요하다.
여기서 칸 교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중국이 북한의 행동을 미쁘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라고 못 박는다. 만약 한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도록 김정은이 강요한다면 그는 미국과 여타 동맹국들의 분노와 군사력을 중국의 뒷마당에 끌어당김으로써 중국의 장기 이익에 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중국 입장에서는 김정은 정권을 지지하는 것 외에 더 나은 선택이 남아 있지 않다. 북한의 붕괴는 권력공백을 부를 것이며 그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중국은 두려워한다. 김정은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중국 지도자가 북한을 침략해 김정은 정권을 제거하는 것을 숙고해 볼 수도 있지만, 그런 움직임은 일본, 한국, 미국을 위협해 그들이 위험한 대응책을 취하도록 할 수 있다. 핵으로 무장하고 변덕스러운 김정은 정권은 나쁜 선택방안이지만 중국에 그것은 나쁜 것 중에서는 가장 나은 선택방안이다. 그러므로 김정은은 그가 원하는 것을 하고 중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현상(現狀) 변경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미국에는 세 가지 현실적인 선택이 있다고 칸 교수는 제안한다. 셋 중 둘은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며 나머지 하나는 그렇지 않다.
첫 번째 선택은 냉전시대의 아시아 전략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당시 마오쩌둥이 지금의 김정은 역할을 맡았으며 소련이 현재의 중국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이 고려했던 한 가지 선택은 소련·미국 합동으로 중국의 핵시설을 타격하는 것이었다. 소련은 당시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개념은 부활될 수 있다. 이 계획의 신판(新版)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중국·미국의 합동 타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작동하려면 중국이 자국 안보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의 인공섬 건설 △대만 재통합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 같은 이슈들에 대해 미국이 더 이해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은 이들 전선(前線)에서 양보하기를 꺼릴 것이다. 미국 관리들은 이런 이슈들이 북한정책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중국 정책당국자들에게 그것들은 중국의 전반적인 안전에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으며 중요하다.
이러한 선택의 변형인 두 번째 선택은 중국이 북한에 쳐들어가 북한의 핵시설을 접수토록 허가하는 것이다. 중국은 그런 다음 정권교체와 임시 중국정부의 창설을 통해 북한의 재건을 꾀하며 이어 성공적인 권력 이양이 뒤따르게 된다. 이 선택은 엄청난 국가 건설 작업을 요구하며 당황스러운 국제적 선례를 남긴다. 하지만 미·중이 북한을 놓고 협력한다면 이것은 양국 모두에 그중 나은 선택이 될지 모른다. 이러한 움직임은 분명 일본의 분노를 끌어낼 것이며 그보다는 약하더라도 한국도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중국이 있는 것이 김정은 정권보다 차라리 낫다고 두 나라 모두 설득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비핵화된 북한은 그러한 양보를 할 만한 가치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 우선은 떠오르는 중국이 깝죽대는 북한보다 여전히 훨씬 더 큰 도전이며, 중국에 북한의 운명을 좌우토록 위임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썩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은 이제 화해라는 선택으로 넘어간다.
중소관계가 1968-1969년의 국경분쟁에 이르도록 악화되었을 때 소련은 자국이 중국 핵시설을 타격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협력하는 대신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중국과의 화해를 추구했다. 중국지도자 마오쩌둥은 위험하고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핵무기로 무장해 있었다. 하지만 닉슨-키신저 팀은 핵을 가진 중국을 감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거대한 권력균형 게임에서 단지 하나의 추가 카드였다. 그와 같은 방식은 현대 북한에 적용하기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설명한 칸 교수는 마오 시절 중국과 김정은의 북한이 다르지만 아시아 회귀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정책의 목표가 중국에 맞선 균형 잡기라면 북한과의 화해는 숙고할 가치가 있는 선택이라고 결론을 향해 접근한다.
칸에 따르면 북한이 대미 관계를 개선하면서 핵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미국에 추가된 강점을 제공할 수 있다. 중국이 소련에 그랬던 것보다 북한은 미국에 전략적으로 덜 중요하지만, 북한은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북한이 더 이상 미국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으면 중국 또한 지역에서 자신의 세력 주장을 재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괜찮은 관계라는 것을 아는 것은 예컨대 센카쿠 열도에 선박을 파견하기 전 중국을 머뭇거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강한 위치에서 양보를 함으로써 중국의 공포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걱정에서가 아니라 선택에 의해 그렇게 한다면, 중앙아시아, 북극, 그리고 심지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이익을 수용하는 것은 미국이 소화하기 한결 수월할 것이다. 북한과의 화해에 의해 미국 동맹국들이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외교정책은 동맹국들에 구속될 수 없다.
이런 워싱턴의 제안에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분명치 않다고 칸 교수는 말한다. 그것이 미국과 그 동맹국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그가 뜻대로 계속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면 김정은은 쾌히 받아들 수도 있다고 칸 교수는 본다. 관계 정상화의 각종 이득에 김정은이 솔깃해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쳐 개선된 관계는 심지어 북한 민간인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화해가 현상 유지보다 실질적으로 어떻게 더 나쁜지를 알기란 어렵다. 핵을 가진 북한을 이미 감수해야 하는 미국은 북한 정권과 잘 지내도록 노력하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고 칸은 권고한다.
칸 교수는 끝으로 중국 변수를 다시 상기시킨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중국에는 이익과 제약이 있다. 미국은 중국과 견주거나, 북한 비핵화를 위해 중국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둘 다를 취할 수는 없으므로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칸 교수는 말한다.북한 지도자 김정은. (Xinhua/KCNA)2015.11.09 신화/포커스뉴스 시진핑 중국 주석.(Xinhua/Ju Peng)(mcg)2016.02.22 신화/포커스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Photo by Mark Wilson/Getty Images)2015.12.19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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