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사실상 국가 상대 손해배상 힘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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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 입주 기업 전면 철수 |
(서울=포커스뉴스) 11일 북한의 일방적 통보로 개성공단 입주기업 인력 모두가 추방된 가운데 기업 측이 입을 막대한 손해에 대한 법적 배상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이날 “남측 인원을 오후 5시(우리 시간 오후 5시 30분)까지 전원 추방한다”고 밝혔다.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개성공업지구에 있는 남측 기업과 관계기관의 설비, 물자, 제품을 비롯한 모든 자산들을 전면 동결한다”며 “추방되는 인원들은 사품 외에 다른 물건들을 일체 가지고 나갈 수 없으며 동결된 설비, 물자, 제품들은 개성시 인민위원회가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직원 등 우리 측 인원 280명 전원을 철수시켰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북측 통보로 124개 입주기업들이 빈손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개성공단 입주기업 하루 가동 중단에 따른 손해는 154만3000달러(약 18억5000만원)에 이른다.
2013년 4월 북한이 근로자를 일방적으로 철수시켰을 당시 입주기업들이 통일부에 신고한 피해액은 현지투자액 5437억원, 원청납품채무 2427억원, 재고자산 1937억원 등 1조566억원 수준이었다.
손해는 이 뿐만이 아니다.
입주기업은 계약불이행에 따른 원청업체의 손해배상 청구나 거래처 상실, 신뢰도 하락 등을 고려할 경우 피해액이 수조원에 달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기업협회 측은 국가 상대 소송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정기섭 기업협회장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입주업체 비상총회에 참석해 “얼마나 길어질 싸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향후 우리의 피해를 구제 받기 위해 비대위를 구성 운영한다”며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우리가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원이 아니라 정부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가의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재산을 보호했어야 하는데 갑자기 중단을 결정했고, 이에 대한 합당한 책임과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돈을 빌려준다거나 세금을 미뤄준다는 등 지원은 답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입주기업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국가 상대 소송에서 기업 측이 승소한 경우는 단 한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A업체는 지난 2003년부터 북한 측 업체와 평양에 방직공장을 설립해 옷감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하기로 했다.
A업체는 2008년 공장을 준공했지만 그해 금강산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사망하는 등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방북 승인을 받지 못했고 사업은 무산 위기에 처했다.
해당 업체는 정부의 방북 불승인으로 막대한 사업상 손실을 봤지만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4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정부의 방북 불승인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재량행위로 북한과 군사적 대치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 것인만큼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업체 측이 남북경협에 존재하는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했고 사업상 손실보상을 위한 경협 보험상품에 가입하지 않은 점 등도 패소 판결의 근거가 됐다.
이후에도 개성공단 관련 국가 상대 소송에서 최종 패소 판결을 받은 경우는 또 있다.
개성공업지구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준비하던 B업체는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공단 신규진출과 투자확대를 허가하지 않은 정부의 5·24조치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 상대 소송을 제기했다.
B업체는 개성공단 부동산 개발사업을 위해 2007년 6월 한국토지공사로부터 토지 1373㎡를 5억4800여만원에 분양받고 근린생활시설 신축에 관한 건축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사건이 일어나면서 업체 측은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됐고 이에 소송을 제기했다.
업체 측은 “정부는 개성공단 투자와 관련해 형성된 신뢰에 반하는 조치를 했기 때문에 국가배상법상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설령 제재 조치가 적법하더라도 사업중단으로 입은 피해는 헌법이 정한 특별희생에 해당하므로 국가가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1,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천안함 사태에 따른 정부의 5·24대북제재조치는 공익 목적에 따른 행위로서 공무원의 직무상 법적 의무를 위배한 위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A업체가 입은 손실을 특별희생으로 보더라도 이에 대한 보상과 관련한 근거 법률이 없는 이상 손실보상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역대 국가배상 소송이 업체측 완패로 끝난 것은 우리 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손해배상 요건’ 때문이다.
국가배상법 등에 따르면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에 따른 손해가 입증돼야 한다.
다시 말해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내린 철수조치에 고의나 과실이 있다고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 관계자들은 사실상 이같은 인정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국가배상 소송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한 변호사는 “정부가 내린 조치는 고의나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고도의 정치적 상황에 따른 적절한 조치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은 정치적인 상황, 입주기업 안전성 등을 두루 고려한 조치”라며 “이같은 행위를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이 있는 불법행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실보상의 경우는 어떨까.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 역시 어려울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변호사는 “손실보상의 경우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데 남북관계에 따른 경협기업 피해에 대한 손실보상은 우리 법에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개성지원법 제12조 등에서 ‘지원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거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언급은 있지만 이 역시 ‘할 수 있다’ 정도의 표현으로 규정돼 있는 만큼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손실에 대해서는 경협보험에 가입돼 있을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현재 124개 입주기업 중 76개사가 경협보험에 가입돼 있다.
이들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최대 70억원 수준이다.
2013년 공단 폐쇄 당시에는 59개 입주업체가 1761억원을 경협보험금으로 받았다.
수출입은행 측은 이번 조치로 지급될 수 있는 보험금은 총 3000억원 수준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경협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기업이나 가입돼 있더라도 손해 전액을 보상 받지 못하는 기업들의 우려는 크다.
법조계에서도 역시 법적인 보상은 어렵더라도 국가의 노력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아무런 잘못 없이 자신들의 재산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만 믿고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인데 이들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북한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우리 정부의 '강수'에 대해 개성공단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한 11일 오후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련차량이 공단을 벗어나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를 지나고 있다. 2016.02.11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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