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 보내는 중국인도 '설 연휴' 외로움에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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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역 중국어 간판 |
(서울=포커스뉴스) “아무리 한국 설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가족이 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에요”
박영호(26)씨는 형과 단둘이 한국으로 넘어온 지 올해로 14년 된 새터민(북한이탈주민)이다.
나이의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보냈지만 북한에서 가족들과 보낸 시간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다.
특히 한민족의 대표적인 명절이라 불리는 설이 되면 가족 생각이 더욱 많이 난다고 한다.
박씨는 “아무래도 날이 날인만큼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요. 하지만 볼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니까 꾹꾹 참을 수밖에 없죠”라고 털어놨다.
◆ 새터민들 “북한 설 풍경 아직도 기억나…가족·친구 그립다”
한국의 설 풍습이 변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늘어서다.
국내 대형 여행사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설 연휴 동안 해외여행을 예약한 사람의 수는 평균 3만명을 넘어섰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올해 설 연휴 기간 해외여행을 예약한 사람의 수는 4만7800명, 모두투어는 2만7000명 등 수준이다.
직장생활 3년차인 박형석(29)씨는 “모처럼 있는 휴식시간을 휴가처럼 쓰고 싶다”며 “이번 설에는 홍콩에 다녀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설 연휴 동안 친척, 가족 등과 만남을 피하려는 취업준비생들도 있다.
중앙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영하(27·가명)씨는 “취직과 관련된 친척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부모님께도 죄송해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반면 이들과 달리 가족과 친척, 친구 등과 함께 설을 맞이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새터민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2년 중국과 태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박영호(26)씨는 아직도 북한에서의 설날 풍경이 생각난다.
박씨는 “한국의 60~70년대 설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며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떡국도 끓여먹는 잔치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도 세뱃돈 문화가 있지만 90년대 북한의 경제가 많이 어려워 받아본 적이 없다”며 “북한 정부에서 명절마다 사탕과 과자를 주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고 말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한국에서 보내는 설은 어떨까.
박씨는 “혼자는 안 보내고 형과 둘이 있거나 친구들과 함께 보냈다”며 “10대 때 생활한 안산의 그룹홈에서 알게 된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도 설이 많이 바뀌어서 옛날만큼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북한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부쩍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지철성(24)씨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올해 국민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는 그는 지난 2013년 네 가족이 함께 한국에 내려왔다.
지씨는 “북한에서는 구정보다 신정을 더 많이 챙겼다”며 “아침에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오전 7시부터 나가서 오후 3시까지 마을을 돌며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1년에 딱 한 번 설날 때만 친구들이 다 모여 학교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사진 찍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며 “가족과 함께 내려와서 그런지 설날에는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난다”며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 ‘춘절’ 보내는 중국인도 ‘설 연휴’ 외로움에 걱정
한국에서 설을 보내는 외국인들도 쓸쓸하기는 매한가지다.
특히 한국의 설날과 유사한 춘절(음력 정월 초하루)을 보내는 중국인들은 설날이 더욱 애틋하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유학 중인 왕설풍(24)씨는 비싼 비행기 값에 이번 설 연휴 한국에 남을 계획이다.
왕씨는 “설에는 인천에서 청도까지 왕복 비행기표 가격이 평소 2배인 50만원 정도”라며 “외동인 만큼 부모님께 전화는 꼭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왕씨는 한국에서도 최대한 춘절 분위기를 낼 생각이다.
왕씨는 “중국에서와 같이 물만두를 만들어 먹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려고 한다”며 “매년 춘절마다 가족들과 함께 보던 춘절 특집 방송프로그램도 챙겨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장린(43·여)씨도 이번 설 연휴에는 중국을 못 가게 됐다.
장씨는 “중국 하이난성에 70대 어머니가 홀로 계신다”며 “매 춘절 어머니와 같이 보내려고 했지만 경제적 부담이 커 그냥 일하기로 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에 친한 친구도 거의 없다는 장씨는 일을 마친 뒤에는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차라리 일을 하는 동안에는 외롭다는 생각이 안 들 것같다”며 “설 연휴에는 서울에 사람도 거의 없다는데 퇴근길과 퇴근 이후의 시간이 무척 외로울 것 같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설 때만 되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얼른 돈을 벌어 중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내년에는 한국의 설이 아닌 중국의 춘절을 어머니와 함께 챙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설 명절을 열흘여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세배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제공=농협유통>서울 지하철 대림역 인근 중국어 간판. 김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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