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고개 떨군 패터슨, 징역 20년 선고

편집부 / 2016-01-29 18:47:37
재판부 “온몸에 피가 많이 묻을 수밖에 없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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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커스뉴스) 패터슨이 고개를 떨궜다.

재판 내내 굳은 표정을 유지하던 아더 존 패터슨(37)은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로 선택했다”고 말하자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그는 불복에 의미로 고개를 수차례 젓기도 했다.

이날 재판정은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듯 취재진과 일반시민 등 100여명이 배석해 북새통을 이뤘다.

패터슨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법정은 술렁였다.

특히 패터슨 측의 면소(免訴) 주장이 배척될 때에는 취재진의 열띤 타자소리가 법정의 정적을 깼다.

이날 법원은 ‘공소시효, 공소권남용, 일사부재리’ 등을 이유로 면소(免訴)를 주장한 아더 존 패터슨(37)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면소’는 위와 같은 사정이 있을 때 공소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앞서 패터슨 측은 “이 사건은 1997년에 일어났고 패터슨의 국내 신병 인도일은 2015년 9월 이라”며 “15년의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이 피고인의 신병확보와 추가 진술 없이 공소를 제기해 공소권을 남용했다”면서 “피고는 이미 증거인멸 혐의로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소송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의 공소제기는 2011년 11월에 이뤄져 그 시효가 정지됐다”면서 “공소제기에 대한 재량권은 검찰에게 있고 검찰은 범행도구 분석 등 보강수사를 했기 때문에 공소권 남용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판결이 확정된 증거인멸 등 혐의는 살인과 시간적으로 중복된다고 볼 수 없다”면서 “칼을 소지하고 은닉한 것은 피해자를 찌른 것과는 그 태양(態樣)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사건 당시 피고인에게 적용된 ‘증거인멸’ 혐의는 ‘살인’과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않아 이 사건의 공소사실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1시간 반 가량 진행된 선고공판에서 결국 패터슨은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는 29일 패터슨에게 “생면부지 피해자를 별다른 이유없이 잭나이프로 공격해 살해했다”면서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로 했다”면서도 “다만 당시 18세 미만의 소년이었던 피고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형량은 20년이다”고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패터슨에게 “피해자를 9차례나 찔러 과다출혈로 사망케 하는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고 그 결과가 매우 나쁘다”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의 기본 전제가 되는 생명을 잃게 만들어 희노애락의 기회를 모두 전면적으로 박탈시켰다”고 지적했다.

또 “유족이 겪은 정신적 충격과 공포는 현재까지 오롯이 남아있는데도 범행시점부터 지금까지 모든 책임을 에드워드 리(37)에게 전가하고 범행을 부인한다”면서 “피해변상은 물론 진심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꾸짖었다.

이날 재판부가 패터슨의 유죄를 인정한 주요한 이유는 그에게 많은 피가 묻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인은 피해자를 수초동안 9차례 칼을 찔렀다”면서 “가해자의 상‧하의, 칼을 쥔 오른손목과 손매에는 많은 피가 묻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머리부터 상‧하의, 양손 등에 많은 피가 묻었지만 에드워드 리(37)는 상의에 적은양의 피만 묻었다”고 지적했다.

또 “세면대에 서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찌르는 것을 보았다는 리의 진술은 일관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일치한다”면서 “반대로 피고인의 진술은 일관적이지 못하고 객관적 증거내용에도 일치하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리를 공범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리가 단순히 범행을 구경한 것이 아니라 범행현장을 감시하거나 피해자의 반항을 제압하기 위해 따라 들어갔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리는 범행에 앞서 패터슨을 부추겼고 패터슨이 피해자를 칼로 찌를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라며 “사람의 목을 수회 찌르는 경우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패터슨의 범행을 말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점, 이후 친구들에게 범행사실을 과시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도 “리가 피고인 공모해 살해한 사실 인정하더라도 이중처벌금지원칙에 위배돼 처벌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됐던 리는 1998년 4월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고 같은 해 9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선고 직후 피해자의 어머니 이복수(74)씨는 “일단 마음이 후련하다. 중필이도 마음이 놓일 것”이라며 “관심 가져주신 분들과 영화 만들어주신 분들,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19년이나 범인을 못 잡아 중필이에게 미안하고 죄인이 된 것 같았다”면서 “산 사람이 풀어야 된다는 독한 마음을 먹고 여기까지 왔다”고 울먹였다.

또 “뒤늦게나마 범인이 드러나 후련하고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공범으로 인정된 리의 아버지 이모씨는 “이번 재판에서 저희는 발언권도, 변호사의 조력도 없는 채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며 “공모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패터슨의 변호인 오병주 변호사는 “고육지책(苦肉之策) 판결이다. 사실관계가 틀렸다”면서 항소의지를 비쳤다.

오 변호사는 “거짓말 탐지기와 같은 과학적 증거들을 재판부가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피가 묻은 양으로만 범인을 판단한 재판부의 결정은 쉽사리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항소심에서 이 부분을 다시 적극 변론하겠다”고 말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지난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세)씨가 칼에 찔려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다.

검찰은 당초 사건을 리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짓고 리와 패터슨에게 각각 살인과 증거인멸죄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1998년 9월 리는 증거불충분으로 서울고법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리의 무죄 선고 이듬해 조씨의 부모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지만 패터슨은 이미 미국으로 떠난 뒤였다.

이로부터 12년 뒤인 2011년 12월 검찰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다시 기소했다.

법무부는 2011년 5월 미국에서 패터슨을 검거한 뒤 범죄인인도 재판에 넘겼고 미국 LA연방법원은 2012년 10월 패터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패터슨은 지난해 10월 23일 국내로 송환돼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이태원 살인사건'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지난해 9월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돼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아더 존 패터슨. 오장환 기자 '이태원 살인 사건'의 피해자 조중필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5.12.27 오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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