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오래가면 전쟁 날 수 있어”…미 자원 전문가

편집부 / 2016-01-15 09:53:43
세계 정치지형에 엄청난 영향을 초래<br />
베네수엘라 등에서 저유가로 정권교체

(서울=포커스뉴스) 상당히 오래, 심하면 2040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망하는 현재의 저유가 기조는 지구촌 석유산업에 지각변동을가져오고, 석유판매 수입에 경제를 크게 의존하는 나라들에 고통을 안기며, 세계 정치지형에 적지 않은 충격을 초래할 것이고, 심지어 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석유 자체의 매력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만큼 지금의 저유가는 태양열이나 풍력처럼 무진장한 재생가능 에너지에 의해 구동되는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미국 자원 전문가의 전망이 눈길을 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州) 앰허스트 소재 햄프셔대학의 교수이자 『남겨진 것을 향한 경주(競走) - 세계의 마지막 자원들을 놓고 벌이는 지구 차원의 쟁탈전』이라는 책의 저자인 마이클 T. 클레어는 최근 ‘석유 가격지진(Pricequake) - 낮은 에너지 가격 시대의 정치 혼란’이라는 주목할 만한 글을 ‘톰디스패치’에 실었다. 톰디스패치는 미국의 비영리 언론사인 네이션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다. 클레어 교수의 이 기고문은 세계 여러 매체에서 앞 다퉈 소개할 정도로 그 깊이와 신선함을 인정받고 있다.

클레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무엇보다 산유국 입장에서 엄청난 위기인 이번 저유가 사태는 ‘재래식 석유’와 ‘비(非)재래식 석유’ 간의 경쟁에서 유래한다.

2014년 세계 석유가의 기준인 브렌트유는 배럴당 115달러에 팔렸다. 당시 에너지 분석가들은 유가가 상당 기간 100달러 이상을 유지하리라 전망했다. 그러자 거대 에너지 기업들이 ‘비재래식 원유’를 채굴하는 데 수천억 달러를 투자했다. 비재래식 원유의 원천은 △북극 원유 △캐나다의 타르샌드(원유를 머금은 모래 덩어리) △심해유전 △셰일(원유를 머금은 바위)을 말한다. 당시 석유 사업가들은 이런 추가 원유를 채굴하면 수익이 짭짤하리라 생각했다. 비재래식 원유 채굴비용이 배럴 당 50달러에 도달하리라는 사실은 당시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원유시세는 배럴당 30달러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것은 원유를 생산할수록 손해라는 의미다. IEA는 현유가가 50~60달러를 회복하려면 2020년대까지, 85달러를 회복하려면 2040년까지 기다려야 하리라고 본다. 이런 시나리오는 석유산업에 거금을 쏟아 부은 기업이나 정부에 악몽이다.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베네수엘라는 이미 저유가의 저주에 휩싸여 있다. 저유가 상황이 길어질수록 그만큼 더 파멸적인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석유시세도 다른 원자재 시세와 마찬가지로 수요-공급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2008년 7월 배럴당 143달러였던 유가(브렌트유 기준)는 세계금융위기를 거친 그해 12월 34달러로 폭락했다. 그러다 2009년 10월 77달러로 올랐다가 2011년 2월 100달러를 돌파해 2014년 6월까지 고공 행진했다.

당시 석유시세가 회복된 것은 무엇보다 중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도로·교량·고속도로 같은 인프라 투자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중국 중산층의 자가용차 소유 붐도 석유 수요를 부추겼다. 2008~2013년 기간 중 중국의 석유소비는 35% 늘었다. 급속히 발전 중이던 인도와 브라질에서도 석유소비가 늘었다. 이런 가운데 재래식 원유 생산은 줄기 시작했고, 비재래식 원유 생산은 늘었다.

2014년 초 미국과 캐나다의 비재래식 원유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쏟아지면서 유가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반대쪽으로 틀었다. 1990년 750만 배럴이었다가 2010년 1월 550만 배럴로 떨어졌던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갑자기 늘기 시작해 2015년 7월 960만 배럴에 이르렀다. 이는 물론 셰일오일 덕분이었다. 캐나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2008년 320만 배럴이던 하루 생산량이 2014년 430만 배럴로 뛰었다. 여기에다 브라질과 서아프리카가 대서양에서 석유를 퍼 올렸고, 전쟁으로 갈가리 찢긴 이라크가 전쟁의 참화를 딛고 하루 100만 배럴을 증산했다.

이처럼 원유생산은 크게 늘어난 반면 중국의 경기 자극책이 약발이 다한 데다, 미국·유럽·일본의 경기침체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 중국의 석유 수요는 앞으로도 미약하게나마 늘기는 하겠지만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다 미국에서 자동차 연비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됐다. 금융위기를 겪은 오바마 정부는 자동차 회사들에 연비 개선을 강력 주문했고 이것이 먹혀들었다. 백악관은 오는 2025년까지 미국산 승용차의 연비를 갤런(3.8ℓ) 당 54.5마일(87.2㎞), 즉 리터 당 23㎞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부터 2025년까지 미국 내 석유 소비를 모두 120억 배럴 줄이겠다는 것이다.


석유시세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맏형 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과거와 달리 감산(減産)을 통해 석유 값을 부추기는 전통적 대처방안을 채택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자신도 고통스러우면서 감산을 거부하는 데에는 △사우디의 원유 채굴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상대적으로 많은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고 △이 참에 시리아 정권을 돕는 같은 산유국인 이란·러시아를 낮은 유가로 손보겠다는 생각이며 △무엇보다 미국의 셰일오일이 자리를 잡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는 전략이 그 배경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우디의 이런 셰일오일 고사(枯死)작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자들은 기술·경영 개선을 통해 미국이 1년 전보다 약간 더 많은 하루 92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미국의 원유생산이 전혀 줄지 않는 가운데 핵협정 타결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서 곧 풀리게 된 이란이 원유 증산 대열에 이라크와 함께 합류함에 따라 지구촌의 원유 과잉 현상은 더 심화될 판이다. 특히 이라크는 현행 하루 300만 배럴인 생산량을 최대 900만 배럴로까지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클레어 교수에 따르면 현재의 저유가 국면을 타개할 방안은 세 가지밖에 없다. (1) 주요 에너지 공급국을 하나 이상 제거하게 될 중동전쟁 (2) 감산에 대한 사우디의 동의 (3) 갑작스러운 세계 석유 수요 급증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도 쉽게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다.

클레어 교수가 보기에 산유국 입장에서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의 낮은 수요가 아니라 석유 자체가 매력을 잃기 시작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중국과 인도의 신흥 부자들은 앞으로도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를 계속해서 구입하겠지만, 선진국 소비자들 가운데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차, 또는 대체 교통수단을 선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젊은 도시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아예 자동차 없이 자전거와 대중 교통수단에 의존하고 말겠다는 환경보호론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태양·바람·수력을 이용한 재생가능 에너지의 개발과 활용은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방침에 힘입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비록 ‘탈(脫)석유’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류가 문명생활을 석유에 의존하는 정도가 점차 낮아지게끔 에너지 체계에 구조적 변화가 일고 있는 가운데 석유 수입에 국가재정을 크게 의존하는 나라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석유판매로 세입(歲入)의 75%를 충당한다. 러시아는 이 비율이 50%이며 베네수엘라는 40%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석유수입 감소로 인한 정부지출 감소와 만연한 부패가 어우러져 굿럭 조나산 대통령 정부가 불신임 당하고 반군 보코하람이 발호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조나산이 있던 자리에 옛 군부 통치자 무하마두 부하리를 앉혔다. 부하리는 부패척결과 보코하람 격퇴를 공약하고 나이지리아 재정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남미의 주요 산유국 베네수엘라도 저유가 때문에 비슷한 정치격변을 경험했다. 고(故)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생전에 이 나라의 풍부한 석유수입을 이용해 빈곤층에 후한 복지를 제공하고 우방국인 쿠바·니카라과·볼리비아에 후원금까지 주면서 인기를 누렸다. 2013년 그가 죽은 뒤 선출된 니콜라스 마두로도 차베스처럼 대중영합적인 정치를 펼치려 했지만 이번에는 저유가에 발목을 잡혔다. 그러자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대중의 불만에 편승한 중도우파 정당이 의회 내 다수를 차지했다. 석유 약발이 떨어지자 대중이 집권당에 등을 돌린 것이다.

역시 석유판매 수입에 재정을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의 상황은 심각함을 넘어 참담할 지경이다. 지난 연말 파이낸셜타임스 신문은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브치옴의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러시아 전체 가구 가운데 39%가 음식과 옷 살 돈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쉽게 말해 ‘삼시세끼’를 해결하기조차 힘겹다는 이야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말 불쑥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것도 점증하는 러시아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에서였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런가 하면 시리아 사태 해결을 돕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푸틴이 서방을 향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병합을 계기로 당신들이 우리에게 가한 제재를 좀 완화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세계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리비아 역시 다른 주요 산유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그래도 위기를 견디는 체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유가가 높던 시기에 사우디는 7500억 달러로 추산되는 고액의 달러를 비축해 놓았다. 현재 이 돈 가운데 1000억 달러 가량을 까먹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저유가가 고착화되면 사우디가 어떤 비상대책을 또 들고 나올지 관심거리다. 사우디는 얼마 전 내수용 휘발유 값을 대폭 인상해 국제사회로부터 “얼마나 급했으면 석유대국에서 휘발유 값까지 올리냐?”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사우디가 자국민이 쓰는 휘발유 가격을 인상한다는 것은 바다 한복판에서 소금물 가격을 올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Photo by Joe Raedle/Getty Images)2016.01.15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 by Christopher Furlong/Getty Images)2016.01.15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 by Sean Gallup/Getty Images)2016.01.15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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