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모르는 일”…홍콩 “수사 계속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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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
(서울=포커스뉴스) 중국이 50년간 자치를 보장한 특별행정구 홍콩에서 ‘서점 5인 실종사건’으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활동가들은 연일 “○○는 집으로 돌아오기 바란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실종자들이 소속된 서점 주변에서 시위하고 있다.
◇폭발력 강한 의문의 실종사건
홍콩이 최근 이처럼 다시 시끄러워진 것은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12월 말 사이 홍콩섬 통루완(銅鑼灣)에 소재한 ‘통루완서점(銅鑼灣書店)’ 관계자 5명이 실종되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특별행정구는 홍콩의 중심지구인 홍콩 섬과 중국대륙에 속한 카우룽(九龍) 반도, 그리고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뤄져 있다.
통루완서점은 3명이 공동 소유한 ‘거류(巨流)미디어’라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 공동 사주 가운데 2명과 직원 2명, 그리고 또 한 명 공동사주의남편이자 이 회사 편집장까지 모두 5명이 실종된 것이다.
문제는 거류미디어에서 펴내는 책이 주로 중국 본토 최고 지도자들의 ‘내막’을 들춰 비판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의 부패와 성생활의 내막 등을 다룬 고발성 책들이 주류를 이룬다. 『2017년 시진핑의 몰락』 『톈진(天津)의 핵폭발』처럼 중국 지도부의 심기를 긁어놓기에 충분히 도발적인 책도 있다.
물론 이런 책들은 중국에서 금서이지만, 통루완서점은 홍콩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공항 잡지판매대 등을 통해 야금야금 이런 책을 팔아 왔다. 중국인 관광객들이야 내용이 진짜인지 여부보다는 자국 지도자들의 치부를 들추는 책을 호기심에서 재미 삼아 구입한다.
현재 ‘서점 5인 실종 사건’과 관련하여 홍콩에서 거론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들 5명이 베이징이 파견한 밀사에 의해 납치되어 본토에 억류된 채 “도대체중국의 누구에게서 듣고 그런 이야기를 책에 썼느냐?”라며 소식통을 대라고 추궁 당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다.
실종된 사람 가운데 가장 먼저 소식이 끊긴 사람은 10월 15일 태국 휴양지 파타야에서 휴가 중 사라진 작가 겸 공동사주 구이민하이(桂民海)다. 이어 공동사주이자 거류미디어 대표인 류보(吕波), 사업부장 청지핑(张志平), 서점 점장 람윙케이(林荣基) 세 사람이 10월 20~26일 홍콩에 면한 광둥성 선전(深圳)에서 출장 중 각각 따로 실종됐다.
가장 최근에 사라진 사람은 편집장 리보(李波)다. 그의 부인이 홍콩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리보는 12월 30일 퉁루완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홍콩섬 차이완에 있는 창고를 살피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리보는 뒤에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은 당시 홍콩 현지어(광둥어)가 아닌 중국 본토어(북경어)로 말했다. 전화가 걸려온 곳은 선전이었다.
중국정부는 ‘5인 실종사건’이 중국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들의 실종에 관해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홍콩 당국 “당혹”
홍콩 당국은 이 사건이 오는 9월 홍콩 입법원(의회) 선거를 앞두고 홍콩 민주화 추진세력에 의해 친(親)중국파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좋은 소재로 쓰일까봐 내심 걱정하고 있다.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만약 본토 요원들에 의한 허가 받지 않은 권리침해 행위가 있었다면 이는 홍콩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을 위반하는 것으로서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번 사건에 외부인이 개입되었다는 어떤 조짐도 없다고 덧붙였다.
행정장관의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날인 5일 대만 중앙통신(中央通訊)은 실종된 리보가 보내왔다는 팩스 메시지를 보도했다. 이 메시지에서 리보는 모든 것이 정상이며 그가 자기 발로 본토에 건너갔다고 말했다. 리보의 부인은 남편의 필적이 맞는다면서 경찰에 냈던 남편 실종신고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렁춘잉 행정장관은 경찰이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親)중국파인 홍콩 입법원 의원 응렁싱(吳亮星)은 5일 리보가 동료 4명과 함께 매춘부를 찾아 몰래 국경을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친구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근거로 ‘실종된 서점 5인’이 매춘부들과 즐기다가 본토 경찰에 검거되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1997년 7월 1일 영국에게서 홍콩을 돌려받으면서 그 시점으로부터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적용해 홍콩에 고도의 자치를 허용한다고 약속했다. 그때 이후 반(反)중국 분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본토 당국자들이 홍콩에 밀정을 심어놓은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더러 돌았지만 이는 소문으로 끝났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5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본토 보안요원이 납치해 간 것 아니냐”는 흉흉한 민심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5일 ‘악의적으로 분란을 조성하는 것은 홍콩에 해롭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일부 사람이 리보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정치문제로 몰아 홍콩과 본토 사이를 이간질하려 애쓰고 있으며 일국양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개탄했다.
◇ ‘우산혁명의 연장선’
‘서점 5인 실종사건’을 둘러싼 이번 시위는 특정 의혹사건을 물고 늘어지는 소규모 시위다. 하지만 이는 2014년 가을 대학생이 중심이 되어 79일 연속 진행한 민주화 투쟁, 일명 ‘우산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당시 당국에 저항하며 우산을 흔드는 시위대를 담은 사진과 동영상은 세계 언론의 1면을 장식했다. 2014년의 홍콩시위는 9월 하순 시작됐으며 시위대는 “2017년 실시 예정인 행정장관 선거를 ‘진짜 보통선거’로 하자”고 요구했다. 155년 넘게 영국의 통치를 받았고 이후 중국의 특별행정구(SAR)가 되어 10여년을 보낸 홍콩에는 지난 수십 년 간 구(區)의회, 그리고 입법 기구인 홍콩입법회 의원 절반 남짓에 국한된 최소 수준의 민주주의만 허용되었다.
이처럼 제한적인 민주주의 실시에 불만을 품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그런 정치적 열정을 보인 적이 없었던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까지 참여해 간선도로들을 여러 주 동안 점거하는 일이 벌어져 세계의 이목을 한동안 홍콩에 쏠리게 만들었다.
1997년 반환 이래 홍콩의 시장 직위는 “행정장관(CE, Chief Executive)”이라는 이름 아래 유지되어 왔다. CE는 사회의 다양한 부문들을 대표하며 대부분 친(親)중국계로 구성된 ‘선거위원회’(출범 당시 명칭은 ‘선정위원회’)에 의해 선출된다. 이 기구는 CE선거가 시작되었을 때는 400명이었으나 가장 최근인 2012년에 1200명으로 불어났다.
‘우산혁명’ 당시 시위대 요구의 핵심은 “차기 CE 선거에 선거위원회의 추천을 거친 소수후보가 아니라 홍콩시민이면 누구든 출마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친중국계가 CE에 선출될 가능성을 봉쇄하자는 요구였다.
‘우산 혁명’은 당시 뚜렷한 성과 없이 제풀에 진화되었다. 만약 시위대가 그때 내걸었던 요구가 앞으로 수용된다면 차기 CE에 반(反)중국 활동가가 선출될 수도 있다. 현재 이 문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상태인데, 2017년이 다가오면서 다시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통루완서점 홈페이지 초기화면. 중국 지도자들을 다룬 책들을 광고하고 있다.(사진출처=홈페이지 캡쳐) 2016.01.07 송철복 국제전문위원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이 '우산혁명' 1주년을 맞아 2015년 9월 28일 홍콩 도심에서 시위하고 있다. '우산혁명'은 2017년의 홍콩 행정장관 선출을 완전한 직선제로 하자고 요구한 민주화 운동이다.(Photo by Anthony Kwan/Getty Images) 2016.01.07 송철복 국제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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