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중동 대치국면은 사우디의 계산된 도발

편집부 / 2016-01-06 09:52:30
전문가, “맹방 미국 향한 일종의 시위”<br />
미국, 이란도 달래야 하므로 중립 지켜

(서울=포커스뉴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단교까지 초래한 양국의 첨예한 대치는 중동의 앙숙인 두 나라가 벌이는 최신 힘겨루기이기도 하면서 스스로 전략적 중요도가 떨어졌다고 느끼는 사우디가 전통 맹방 미국을 향해 연출하는 일종의 시위라는 성격도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초조한 사우디

이슬람 수니파 맹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도적인 반체제 인사였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 시아파 행동주의의 상징으로 존경받아온 저명한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님르 알님르가 2014년 사우디 왕정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사우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시아파 맹주국 이란은 만약 님르가 처형된다면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런 님르를 사우디는 지난 2일 ‘47명 집단처형’ 대열에 포함시켜 테러범들과 함께 보란 듯이 처형했고, 이에 격분한 이란 군중은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했다. 이에 사우디는 이란과 단교했고 바레인과 수단이 사우디의 뒤를 따랐으며 아랍에미리트는 외교관계를 격하시켰다.

중동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전직 CIA(중앙정보국) 요원 브루스 리델은 사우디를 가리켜 “그 왕국은 낮은 원유수입, 예멘에서의 전면전, 여러 방향으로부터의 테러 위협, 그리고 숙적 이란과의 격렬해지는 역내(域內) 경쟁이라는, 잠재적으로 더할 수 없이 나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4일 미국 언론에 썼다.

워싱턴근동(近東)정책연구소(WINEP)의 분석가 패트릭 클로슨은 공동의 적인 이슬람국가(IS) 격퇴에 중동국가들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지금 같은 중요한 시점에 알님르처럼 폭발력이 높은 성직자를 처형한 것은 사우디가 미국에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면서 그 메시지는 “만약 미국이 이란에 맞서지 않겠다면 사우디가 독자적으로 그렇게 하겠다”라는 의미라고 미국 언론에 말했다.

클로슨의 분석이 정확하다면 사우디는 알님르 처형을 통해 이란과 미국을 향해 일종의 도발과 시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란 내부에서도 “사우디가 쳐 놓은 덫에 우리가 걸려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와 유엔은 최근 사태와 관련해 사우디·이란 양국에 자제를 요청할 뿐 어느 한 쪽을 편든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WINEP의 선임연구원 마이클 싱에 따르면 걸프 국가들이 이란과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미국과,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의 전통적 미국 맹방들 사이의 벌어져가는 전략적 간극을 나타낸다. 싱은 “그 나라들은 이란을 주된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하며, 미국이 그러한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믿는다”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살만 사우디 왕과 국방장관인 그의 아들 모하메드는 이전 지도자들보다 더 공개적으로 이란과 대치해 왔다.

모하메드는 최근 공개 연설에서 사우디 지도층을 향해 사우디가 현재 기름 값 폭락과 이란과의 대치라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강조하면서 정신무장을 더 단단히 하라고 주문했다. 사우디 지배층은 이란이 지난 7월 미국 등 강대국들과 타결한 핵 협상의 결과 조만간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나면 막대한 액수의 원유판매 대금이 동결상태에서 풀리게 되어 가공할 ‘재정적 능력’을 갖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동의 군사강국 이란은 인구 3000만 명인 사우디에 비해 8000만 국민을 지닌 인구대국이다.

1930년대부터 석유를 매개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사우디가 미국 뜻에 반할 것이 분명한 알님르 처형이라는 강수를 두게 된 원인과 관련해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부원장인 마틴 S. 인디크다. 그는 “미국과 사우디가 합심하지 못한 것은 오래 되었다”면서 “그것은 무바라크에서 시작되었다”고 미국 언론에 말했다.

2011년 사우디 지도자들은 ‘아랍의 봄’ 사태 때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을 미국이 지원하지 않았다며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을 비난했다. 그들이 그랬던 이유는 만약 당시의 소요사태가 사우디로 번지더라도 오바마가 마찬가지로 수수방관할 수 있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견제 당하는 이란

사우디의 사형 집행인이 셰이크 님르 알님르를 처형했을 때 이란의 시아파 신정(神政)은 그것을 역내 경쟁국의 의도적인 도발로 받아들이고 치밀한 대응전략에 입각해 강경파에 의한 거리 시위를 방임 또는 방조했다.

처형 사실이 알려진지 몇 시간 안에 민족주의 성향의 이란 웹사이트들은 군중의 분노를 부채질했고 시위대는 테헤란의 사우디 대사관으로 몰려가 화염병을 던지고 담장을 기어올랐으며 건물을 훼손했다. 대사관 앞을 지키던 이란 경찰은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이란 지도자들은 “핵 협상 타결로 이제 겨우 국제사회로 복귀하려는 마당에 사우디가 쳐놓은 덫에 걸린 것은 아닌가”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자칫 이란이 이번 단교(斷交) 사태를 도발한 것처럼 외부세계에 비칠 수밖에 없어 난감해 한다는 것이다.

시아파 신학(神學)의 세계적 중심지들 가운데 하나인 이란의 성도(聖都) 쿰 출신의 성직자 파젤 메이보디는 “그들(사우디)은 우리가 (알님르 처형을) 못 본 체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알님르 처형으로 이란이 사우디에 의해 허를 찔린 격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사우디·바레인·수단이 집단적으로 이란과 단교한 것은 중동의 수니파-시아파 갈등이 더욱 첨예해졌으며, 사우디와 이란이 중동, 구체적으로 시리아와 예멘에서 진행해 온 대리전이 좀체 해결되기 어려울 것임을 예고한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미국 및 여타 서방국가들에게 “우리냐, 이란이냐?”라며 선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런데 지금은 사우디든 이란이든 시리아 내전 종식과 IS격퇴에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지난 12월에만 해도 사우디와 이란의 외무장관들은 뉴욕에 모여 시리아 평화과정의 개시와 관련해 대화하던 사이였다. 유엔이 중재하고 감독하는 시리아 평화회담은 이달 25일 제네바에서 개시될 예정이다. 회담의 두 주역인 사우디와 이란이 단교까지 가는 험악한 관계에 돌입함에 따라 시리아 평화회담은 출발부터 삐걱거리게 됐다.

여러 해에 걸친 힘겨운 협상 끝에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가해졌던 제재가 풀리게 되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핵합의가 이행되면 “위대한 우리 국민은 평화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에 개방됨을 경험할 것”이라고 지난달 대국민 연설에서 말했다. 그는 일부 “반동적인” 국가들이 핵 합의를 방해하려 했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했다”고 말했는데 그가 말한 반동적인 국가란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가리킨다.

일부 이란인들은 이번에 조성된 새로운 외교적 위기 국면에서 사우디가 다시 우위를 차지할 것인지 지켜보고 있다. 쿰의 성직자 메이보디는 “사우디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간극을 벌리기 위해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알님르를 죽였다”면서 “그들은 우리의 과잉대응을 예견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이란을 다시 한 번 고립시키기 위해 그것을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사우디 관계의 변화

사우디 왕가(王家)가 국내 반체제 인사들과 언론자유를 탄압하고 사우디 엘리트들이 이슬람 극단세력에 돈을 대주는 것을 허용했을 때 미국은 이런 사실을 일부러 못 본 척했거나 인권보고서에 세심하게 문구가 조정된 경고만을 수록했을 뿐이다. 이런 미국의 묵인에 대한 보답으로 사우디는 미국이 가장 크게 의존하는 원유 제공처, 정기적인 첩보 공급자, 그리고 가치 있는 이란의 대항마가 되었다. 공유하는 가치가 거의 없는 미국과 사우디 두 나라의 관계를 오래 이어준 접착제는 석유였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 자체의 석유생산이 급증하고 사우디의 지도력에 균열이 생기면서 193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양국의 상호의존성은 이전만 못해졌다. 그렇더라도 중동의 안정을 추구하는 미국에게 사우디라는 존재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7월 미국이 주도해 타결한 이란과의 핵 합의는 사우디로 하여금 양국관계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우디 관리들은 워싱턴에서 “사우디가 미국이라는 동맹에 의존할 수 있겠는지” 여부를 아예 공개적으로 질문하고 나섰다.

2008년 작성되어 2년 뒤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된 미 국무부 전문(電文)에 따르면 당시 사우디 국왕 압둘라는 군사공격을 가해 뱀 대가리(이란)를 잘라버리라고 미국에 강하게 권고했다. 그는 지난 7월의 이란 핵 합의 이전에 타계했지만, 중동 혼란의 배후세력으로 이란을 지목하는 현 지도자들도 이란이 합의사항을 지키리라고 믿는다면 미국 행정부가 순진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아는 오바마 행정부는 사우디를 안심시키려 노력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과거보다 월등히 규모가 큰 미국 무기를 그들에게 판매할 것임을 아랍 동맹국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사우디 지도자들을 캠프데이비드의 회의에 초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미국은 사우디가 IS와의 더 큰 싸움을 소홀히 하면서 예멘에서 시아파 후치족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이런 미국 측 분위기를 알면서도 새로 들어선 사우디 지도부는 살만 왕을 중심으로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심사숙고하기보다는 일단 일을 저지르는’ 쪽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케리 미 국무장관은 알님르를 처형하려는 사우디에 대해 사전에 경고했지만 그 경고는 무시당하고 말았다.국방장관을 겸하고 잇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왕자(맨 앞 전통의상)가 암만에서 요르단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Muhammad Hamed - Pool /Getty Images)2016.01.06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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