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양심 잃은 법조인들…'윤리·품위'는 어디로?

편집부 / 2015-12-30 14:26:48
뇌물수수부터 성추행까지…윤리강령 되돌아보는 계기 돼야
△ [삽화] 직장내 성폭력 대표컷

(서울=포커스뉴스) ‘법관은 명예를 존중하고 품위를 유지한다’

‘검사는 공·사생활에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유지하고, 명예롭고 품위있게 행동한다’

‘변호사는 품위를 해하거나 공공복리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윤리강령과 윤리장전은 구호에 불과한 것일까.

올 한해 법조계는 품위를 지키지 못한 법조인들로 자존심을 구겼다.



◆ 뇌물수수, 전직 판사 징역형…항소심서 ‘감형’

이른바 ‘명동 사채왕’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모 판사가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다.

지난달 6일 최 전 판사는 서울고법에서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6864만원의 판결을 받았다.

1심의 징역 4년과 추징금 2억6864만원보다 다소 줄어든 형량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감사의 의미’로 받았다고 인정한 1억원의 알선수재 혐의를 “2년이 지난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 전 판사가 공직에 몸담으며 뇌물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죄질이 무겁다며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재판부는 “수수한 돈의 금액이 매우 크고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것을 제외하더라도 여러 차례 뇌물을 수수해 죄질이 무겁다”면서 “피고인이 검사, 판사 등으로 재직하면서 그 업무의 막중함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행위로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됐다”며 “사법권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만 그 정당성이 확보되며 한번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최 전 판사를 질책했다.

최 전 판사는 매번 공판기일마다 차마 얼굴을 꼿꼿이 들지 못했다.

“검소하고 성실했다. 신실한 종교생활을 이어왔다”는 아내의 선처 호소에 자책하며 붉어진 눈을 종종 훔치기도 했다.


◆ '여성 치마 속 몰카' 헌재 헌법연구관…결국 재판에

지난 9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조모(40)씨가 지하철에서 몰래카메라로 여성의 신체를 찍다 경찰에 적발됐다.

조씨에 대한 조사 결과는 법관으로서 품위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의 범행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씨는 지난해 5월 짧은 치마를 입고 케이크 진열대 앞에 서 있던 여성의 다리를 찍는 등 올해 9월까지 지하철역 상점 등에서 모두 20회에 걸쳐 여성의 다리나 치마 속을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인적사항 조회과정에서 조씨가 헌법연구관임을 확인하고 헌재에 통보하자 헌재는 조씨를 헌법재판연구원으로 인사조치했다.

헌재 관계자는 사건 직후 “엄중하게 조치할 계획”이라며 “혐의의 경중에 따라 파면과 해임까지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씨는 결국 지난 14일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에 따라 재판에 넘겨졌다.

조씨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헌법연구관이 됐고 현재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성추행 판사, 벌금 700만원…“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수준 벗어나”

지난 10월에는 대학 동아리 후배를 강제추행한 유모(30) 전 판사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다.

유 전 판사는 법원 감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했고 대법원이 사표를 수리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진수 판사는 10월 30일 유 전 판사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박 판사는 “유 전 판사는 범행 당시 군(軍) 법무관 및 판사 신분이었음에도 자중하지 않았다. 공무원 신분임에도 피해자들을 상대로 강제추행 범행을 저질러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꾸짖었다.

유 전 판사는 군 법무관으로 일하던 2013년 9월 서울 강남구의 한 술집에서 후배 A씨 허리를 감싸고 손을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또 대구지법에 근무하던 지난해 7월에는 대구 중구의 한 식당에서 동아리 후배 B씨의 허벅지를 만지는 등 4차례나 강제추행한 혐의도 받았다.

유 전 판사는 “죄송하고 한 번만 선처해 달라. 새롭게 살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 현직 판사, 술자리서 성추행 발언…대법원 경위조사

대법원 판사가 “여성 판사들을 성추행해 내쫓겠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대법원 소속 A판사는 지난달 10일 경기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마친 뒤 열린 술자리에서 건배사를 하며 “내가 부장이 되면 여성 배석판사를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추행해 내쫓겠다”고 말했다.

당시 자리에 함께 있던 한 여성 판사가 이 발언을 여성 판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아무리 술자리에서 한 얘기라고 해도 동료 여성 판사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A판사의 발언을 술자리 흥을 돋우기 위한 농담으로 받아들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사건 직후 대법원 윤리감사실은 진상파악에 나섰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 조사절차가 진행 중이고 발언의 내용, 구체적 경위 등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대로 그에 합당한 조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여기자 성추행’ 이진한 검사 ‘무혐의’…제식구 감싸기?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이진한(52·사법연수원 21기) 서울고검 검사가 무혐의 처분됐다. 사건 발생 2년 만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는 이 검사의 고소내용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했다고 지난달 26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20여명 기자들이 참석한 공개적인 자리였다”며 “전체적인 분위기, 고소인과 이 검사의 관계, 구체적인 행위 내용과 경위, 사건 이후 정황 등을 종합해볼 때 강제로 추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2차장을 지내던 2013년 12월 말 당시 출입기자단과 송년회 자리에서 한 여기자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은 “진상조사를 철저히 진행해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검사는 ‘징계’가 아닌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 검사는 법적으로 성추행 혐의를 벗었지만 윤리적인 책임은 짊어지고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한 언론사는 “검찰이 명백한 성범죄를 제식구라고 봐준 꼴. 고소한지 2년만에 무혐의 처리한 것도 사건이 잊히길 기다린 듯. 비겁하기 이를 데 없다”며 혹평했다.

◆ ‘길거리 음란행위’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법률사무소 개업

제주지검장 신분으로 성기를 노출한 채 거리를 활보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김수창(53·사법연수원 19기) 전 제주지검장이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10월 22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김 전 지검장은 대한변호사협회 등록심사위원회가 변호사 등록을 허가한 같은 달 22일 서울변회에 개업 신고를 냈다.

김 전 지검장은 지난 2월에도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지만 당시 서울변회가 자숙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의사의 치료확인서 등 서류 보완을 요구하자 스스로 신청을 철회한 바 있다.

지난 8월 ‘완치’됐다는 의사소견서와 함께 다시 서울변회에 신청서를 낸 김 전 지검장은 지난달 변호사 등록을 허가받았다.

김 전 지검장은 지난해 8월 12일 오후 11시 32분~52분쯤 제주시 중앙로의 왕복 6차선 도로변 등에서 성기를 노출한 채 거리를 활보하다 이를 목격한 한 여고생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경찰에서 혐의를 부인한 채 동생 이름을 대가며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당시 폐쇄회로(CC)TV를 통해 5차례 음란행위가 있던 사실을 확인하고 공연음란 혐의를 적용해 해당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은 지 3개월만인 지난해 11월 25일 병원치료를 전제로 김 전 지검장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한 변호사는 “김 전 지검장이 의사소견서를 첨부했다지만 그의 왜곡된 성(性)의식이 단 몇 개월 만에 완치됐을 리 만무하다”며 “사건 발생 1년만에 변호사 등록을 허가해준다는 건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고 지적했다.

다른 변호사도 “변협이 국민의 법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다. 최소한 1년의 유예를 둬서 김 전 지검장이 전관예우를 받을 수 없도록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김 전 지검장에 대한 기소유예 결정부터 변호사 개업 허가까지 국민의 정서를 거스르는 결정이 나온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변협 관계자는 “김 전 지검장에 대한 변호사 등록 건은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이미 한 차례 반려시킨 바 있다. 이번에는 당시 서울변회가 요구한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등록을 허가했다”며 “김 전 지검장이 완치됐다는 의사소견서를 근거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하다고 볼 수 없다. 변호사법 제8조 제1항 제4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말했다.정의의 여신상 디케(Dike).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한수연 기자이희정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김인철 기자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사진출처=제주지검 홈페이지>서울 서초구 법원로1길 변호사회관. 허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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