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실체, 충성 요구하는 '공개처형' 등 상당 부분 비슷<br />
제한된 정보이니만큼 편견 개입 여부 또한 조심해야
(서울=포커스뉴스) 올해도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공고했다. 지난 5월 국가정보원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불경죄로 숙청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8월엔 김 제1위원장이 최영건 북한 내각 부총리를 지난 5월 숙청했다는 소식이 북한 소식통·관계자들 사이에서 전해졌다.
스티븐 해리스 옥스퍼드대 라틴어문학 교수는 북한의 이 같은 '공포 통치'는 기원전 27년 '제국의 길'을 걷기 시작한 로마 제정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해리스 교수는 28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과 제정 로마의 공통점을 정리했다.
◆ 접근이 제한된 정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약 2000년 전에 존재했던 제국에 대한 접근도 쉽지 않다. 로마의 역사학자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69~?140)가 쓴 황제들에 관한 전기 '황제전' 내지는 타키투스(?55~?117)의 역사서가 그나마 유용한 접근을 가능케 해준다.
이들은 모두 귀족 출신으로 각기 황제의 비서나 소아시아 총독 등 요직을 역임했다. 서로가 친구지간으로서 군주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공유하기도 했다.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전'은 로마 제정기의 황제 12명에 대한 전기지만 황제의 위엄을 자랑하기보단 그들의 나약한 면을 강조하는 편이다.
타키투스의 저작 '연대기' '역사' 등은 개인에게 모든 권력을 위탁하는 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하는 책이다. 전제군주제는 가문 내 권력 싸움, 내전, 불안정한 리더십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는 오늘날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과 많은 부분에서 공명한다.
◆ 신뢰받는 고문과 처형당하는 고문
로마 황제들은 특정한 개인을 고문으로 두고 이들의 조언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문제는 의심 많고 변덕스러운 로마 황제들의 신뢰는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문들이 황제의 신뢰를 잃어버리거나 황제의 국정 운영에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귀찮게 구는 순간 이들은 처형당하기 일쑤였다. 이때 이들을 공개 처형하는 것은 황제에게 완전한 충성과 굴종을 강요하는 일종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의 뒤를 이은 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그 좋은 예다. 티베리우스는 세이아누스라는 로마의 정치가이자 근위총대장에게 권력 대부분을 위임하고 은둔해 있을 정도로 그를 꽤나 신뢰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역모를 꾀했다는 황제의 의심을 사 세이아누스는 탄핵당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길거리에서 로마 군중에 의해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처형을 받았다.
◆ '포악한 군주' 칼리굴라와 네로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은 칼리굴라는 매우 가학적인 황제로 평가받는다. 칼리굴라의 재임 기간에 이르면 숙형은 공중의 이벤트거리로 전락한다. 칼리굴라는 다의적으로 해석되는 대사를 썼다는 이유로 극작가를 원형경기장 한가운데서 화형시켰고 공공 경기장에 야생동물을 풀어넣고 귀족들을 그 안에 던져넣기도 했다. 만약 희생자가 소리를 지르면 혀를 자른 뒤 다시 경기장에 몰아넣는 등 야만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네로 또한 폭군으로 악명이 높다. 네로는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은 고문 4명을 숙청하기도 했다. 네로는 자신의 스승이자 철학자였던 세네카에게 자살을 강요했으며 친모를 암살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네로의 '광기어린 군주'의 이미지는 64년 로마에서 발생한 대형화재에서 그가 불타는 도시를 바라보며 시를 읊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역사가들마다 해석이 분분하다.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네로가 스스로 로마에 불을 지른 것이 아니라 상점이 밀집한 지역에 발생한 작은 화제가 대화재로 번졌다는 것이다.
해리스 교수는 '네로 방화설'은 네로에게 심하게 박해받은 기독교도들의 모함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화재 때문에 네로가 애지중지하던 귀중품들도 소진됐다는 사실은 '네로 방화설'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일각에 의하면 네로는 화제 진압에 적극적이었다고도 전해진다.
◆ 편견이 개입한 정보들
위와 같이 전해져 내려오는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로마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술한 것이 대부분이다. 현대 역사가들은 이들의 저술작업에 대개 회의적이다. 해리스 교수는 "이들이 서술하는 역사는 세부사항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기보다 세습 독재세력이 가진 잠재적 위험에 대해 평범한 로마 시민들이 어떻게 느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고 정리한다.
수에토니우스와 타키투스는 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황제에 대한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은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고 비판에 귀를 막았던 도미티아누스가 재위하던 시절에 살았기 때문에 이들의 역사서는 주관적인 평가가 일정 정도 개입하기 마련이다.
해리스 교수는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들에 의해 로마 제정이 재현되는 것처럼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북한을 서술하려는 욕망은 현재 우리가 위치한 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에토니우스와 타키투스가 황제의 권력에 반감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전제군주제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고정관념은 한쪽이 엄격한 정보 통제를 유지하는 곳에서 두드러지기 쉽다. 한쪽이 의도적으로 비워두는 정보의 공백을 메우는 건 자유주의적 열망으로 가득한 다른 한쪽의 세력이다.
해리스 교수는 로마 제정 시대의 역사 기록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북한에 대한 보고에도 편견이 내재돼 있으며 이것들이 전부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또한 정치적 적대자를 악마화하려는 자연적인 본성도 예의주시할 것을 주문한다.(평양/북한=포커스뉴스/신화)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달 7일 평양의 조선인민군 제7차 사관교육회의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2015.11.09 신화/포커스뉴스 수에토니우스우스의 '황제전'의 일부. 2015.12.28 ⓒ게티이미지/멀티비츠 로마의 제5대 황제 네로(37~68). 2015.12.28 ⓒ게티이미지/멀티비츠 (평양/북한=신화/포커스뉴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10일 최근 개보수한 평양의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고 있다. 2015.12.11 신화/포커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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