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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 빈소에서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오열하고 있다. 2015.11.22 사진공동취재단 photo@focus.kr |
[부자동네타임즈 박윤수 기자] 'YS 오른팔'로 잘려진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이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말을 잘 못하는 투병생활 중에도 비보를 접하고 22일 오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의 빈소를 찾아 오열했다.
검은 상복 차림의 최 전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도착, 지인들의 부축으로 가까스로 걸어 빈소로 들어왔다. 그는 YS의 영정사진을 보고 바닥에 주저앉아 "어이구…어이구…" 흐느꼈다.
최 전 장관과 함께 빈소를 찾은 부인 원영일 여사는 "충격을 받아서 걸음을 못 걷는다"고 전했다.
원 여사는 최 전 장관이 애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갑자기 격정적인 말들을 쏟아내자 최 전 장관의 입을 막고 진정시키며 "이러다 오늘 쓰러지겠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다소 진정이 된 최 전 장관은 손명순 여사를 위로하기 위해 빈소 내실로 들어갔다.
최 전 장관은 고(故) 김동영 전 정무장관과 함께 좌(左)동영, 우(右)형우으로 불린 YS의 최측근 상도동계 1세대다.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난 최형우 전 장관은 박정희 정권 때의 한일협상반대시위인 1964년 6‧3항쟁을 계기로 YS에 발탁, 8대‧9대‧1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후 김동영 전 장관과 국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정치규제를 당했다. 1984년 해금된 뒤 1988년 13대, 14대,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최 전 장관은 YS 집권기인 1993년 내무부장관 등 요직을 거치며 YS 최측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96년 총선에서 6선 고지를 밟은 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해 1997년 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당시 이회창 고문과 경쟁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중풍으로 그해 쓰러졌고 끝내 정계 은퇴했다.
1936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김동영 전 정무장관은 1966년 국회전문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해서, 1973년 YS에 의해 제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래 평생을 YS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1981년 YS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주산악회가 결성될 때 최형우 전 장관과 함께 부회장으로 활약했다. 이후 이를 모태로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을 주도했고, 1985년에는 '2·12' 선거돌풍을 일으켰던 거대야당 신한민주당을 결성했다.
김 전 장관은 특히 90년에 3당 합당을 주도해 91년 2월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 탄생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민자당 원내총무를 거쳐 1991년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정무1장관이 됐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 때문에 "뚝심의 정치인"이라고 불리며 YS의 대통령 당선을 누구보다 열망했으나 대선 1년을 앞두고 1991년 암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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