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명암> ④ 문화재 '부적합 시설' 이전 놓고 곳곳 진통
수도권 왕릉 심각…남한산성·하회마을은 순조롭게 해결
(전국종합=연합뉴스) 특별취재팀= "우리는 관광객을 끌어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며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지 않습니까? 유네스코는 생각이 전연 다르더군요. 관광객을 억제하고, 유적을 보전관리하는 데 관심을 두더군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가 임박한 지난 6월 등재추진위원장이던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사학과)의 증언이다.
우리의 세계유산은 관광과 경제에 무게를 둔 까닭에 개발압력에 노출되는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탓에 등재 추진 단계부터 논란도 많다.
설악산은 1990년대에 자연유산 등재를 준비했다가 격렬한 주민 반발로 추진 자체가 무산됐다.
지난달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갈등이 적었다. 개발 압력이 상대적으로 덜한 공주와 부여, 익산에 산재한 덕분이다. 다른 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곳곳에서 충돌을 빚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없다. 문화재 내부의 부적합 시설의 이전 여부가 최대 난제다.
지난해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경기도는 유산 등재에 앞서 주민들과 수많은 대화로 갈등을 풀었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사람을 몰아내지 않을 것이며, 지역사회의 동의와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환경을 정비한다는 방침에 주민이 공감한 덕분이다. 산성 내부에 있던 '러브호텔'을 사들여 완전히 철거하고, 무질서하게 들어선 식당가는 땅을 맞바꾸는 대토 방식으로 새로 조성했다.
다른 세계유산 지역에서도 비슷한 성과가 있었다. 안동 하회마을은 동네 상가를 전부 외부에 조성한 상가거리로 옮겼다. 2009년에는 정부가 4대강 사업 차원에서 설치하려던 하회보는 진통 끝에 백지화시켰다.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전통마을'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은 교회를 바깥으로 이전했고 전선은 땅속에 묻었다.
충돌과 마찰을 빚은 곳도 많다. 수도권 도시에 있거나 인접 지역의 세계유산은 심각한 갈등에 휩싸였다.
2009년 등재된 조선왕릉 중 한 곳인 서울 태릉이 대표 사례다. 능역(陵域)을 차지한 태릉선수촌 시설의 처리 문제를 놓고 문화재청과 체육계의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문화재청이 완전 철거를 주장했다가 선수촌 역사를 보여주는 일부 시설만 남기는 쪽으로 양보했지만, 체육계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곳을 계속 선수촌으로 활용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능역 안 부적합 시설은 모두 철거한다고 애초에 공언했다. 태릉선수촌을 완전히 없애기로 한 것이다. 대체 시설로 충북 진천선수촌 건립 계획이 마련됐다.
태릉선수촌이 세계유산인 태릉과 강릉 중간에 있고, 능역을 파괴하고 들어선 이상 철거해야 한다는 게 문화재청의 논리였다. 선수촌 땅은 문화재청 소유다. 국유재산 허가가 끝나는 2016년 8월31일 이후 대한체육회가 이전하면 선수촌은 철거될 예정이었다. 모든 선수촌 시설은 진천선수촌으로 옮긴다는 계획도 있었다. 선수촌 내 실내수영장을 2013년 8월30일 철거한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뒤늦게 체육계가 진천선수촌과 별도로 태릉선수촌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진통이 커졌다. 체육계는 독특한 명분을 내세웠다. 태릉선수촌 자체가 근대 체육 문화재로서 보전가치가 크다는 논리를 제시한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태릉선수촌의 문화재가치 조사연구용역'을 추진했다. 지난달 21일에는 선수촌을 문화재로 등록해 달라는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냈다.
문화재청은 난색을 보인다.
선수촌 일부 시설은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대로 조치하되 나머지는 진천선수촌이 2단계로 완공되는 2017년 10월 이후에 이전·철거한다는 방침을 유지한다.
문화재청 내부에 일부 이견도 있다. 태릉선수촌 자체가 한국 근대 스포츠 문화의 상징인 만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일부 시설을 보존해야 한다는 견해다. 그러나 선수촌 시설로 계속 사용한다는 데는 대부분 반대한다.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도 파열음을 내는 곳이다. 조선왕릉 능제 원형복원 추진 계획에 따라 능역을 파괴하고 들어선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를 철거해야 한다. 국정원이 본관으로 사용한 바 있는 한예종 구관교사는 2009년 10월에 이미 없어졌다. 옛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및 사격장 건물도 2012년부터 2년 동안 철거됐다.
한예종은 캠퍼스 부지 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이전에 난색을 보인다. 문화재청은 국유재산 관리위임이 끝나는 2017년 12월31일 후 한예종 건물을 철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이전 계획을 중·장기 추진 과제로 넘길 방침이다.
서울 종묘도 전면에 있는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과 관련해 고도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잠잠해진 상황이다.
(김태식 장덕종 최종호 지성호 최영수 강진욱 임상현 손현규)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