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주재 외교관 출신 쿠바 망명자 "한국, 기회 놓치지 말아야"

편집부 / 2015-08-18 06:15:00
"쿠바는 어머어마한 미개척의 시장…한국이 쿠바보다 먼저 움직여야"
"북한, 매우 당혹스러울것…한·쿠바 수교 이뤄지면 더 큰 충격일 것"


평양주재 외교관 출신 쿠바 망명자 "한국, 기회 놓치지 말아야"

"쿠바는 어머어마한 미개척의 시장…한국이 쿠바보다 먼저 움직여야"

"북한, 매우 당혹스러울것…한·쿠바 수교 이뤄지면 더 큰 충격일 것"



(마이애미<美플로리다주>=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약 90마일(145㎞) 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국 플로리다 주.

이곳에는 무려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쿠바 망명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 정권에 저항하며 정치적으로 망명한 사람들로부터 1990년대 이후 뗏목을 타고 플로리다 해협을 건너온 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상을 이루고 있다. 고국을 등진 이들이 미·쿠바 국교정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망명 동기만큼이나 복잡해 보인다.

미국 최남단 주에 있는 이 작은 '쿠바 사회'에는 한반도와 숙명적으로 맺어져 있는 독특한 인물이 있다.

1980년대 평양 주재 쿠바 외교관 출신으로 2013년 미국으로 망명한 호세 아리오사(59)씨다. 아바나대에서 동북아 역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아시아대양주연구소와 영화산업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한국을 일곱 차례나 방문한 적이 있는 쿠바의 '한반도통'(通)이다.

그의 현재 공식 직함은 '프로레코'(PRORECO) 대표. 미국과 중남미에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일종의 '한류 기획사'다. 올해의 경우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스페인어로 번역한 소설가 신경숙씨의 '외딴 방'을 아르헨티나에서 출간한다. 쿠바와 미국, 북한과 한국을 모두 경험한 독보적 존재인 셈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마이애미시의 한 양식당에서 만난 아리오사씨는 "쿠바는 개척이 되지 않은 어마어마한 시장"이라며 "한국은 더늦기 전에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으로 다가올 개방에 대비해 쿠바 시장에 대한 진출을 서두르는 것은 물론 가장 결정적인 수교 문제를 놓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가 됐다는 주문이다.

아리오사씨는 특히 수교 문제에 대해 "그동안 양국은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데 대해 서로 상대방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해왔다"고 지적했다. 쿠바는 한국이 적대국인 미국과 가깝다는 이유로, 반대로 한국은 쿠바가 북한과 가깝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서로가 (수교 문제에 대해) 터놓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특히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바와의 수교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한국과는 달리 쿠바로서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절박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으로서는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유일한 나라인데다가,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로 보고 있다"며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쿠바와의 수교가 외교적으로 중요한 성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양국이 수교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로 개방의 진행에 따라 쿠바 곳곳에서 벌어질 대형 개발프로젝트를 들었다. 그는 "앞으로 쿠바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간접자본과 관련한 대규모 개발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쿠바와의 관계개선이) 더 늦으면 한국이 진출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지적하고 "미국이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꾀한 이면을 잘 읽어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쿠바 최대의 항구인 마리엘 항구 현대화 프로젝트를 브라질과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1970년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하고 북한 최고위층의 통역까지 맡은 적이 있는 아리오사씨는 한국과 쿠바가 수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쿠바와 북한과의 관계는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쿠바는 북한의 '간섭 없고, 독립적인, 평화통일' 정책을 지지하고 북한은 쿠바의 반미정책을 지지하는 등 역사적으로 서로의 입장을 지지해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나 한국과 쿠바는 지금 문화·경제교류가 증진되고 있으며, 북한이 (수교를)못하게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과 쿠바 간의 관계가 가장 강했던 1980년대에 4년간 평양에 주재했던 아리오사씨는 "지금 북한은 미·쿠바 국교정상화를 보면서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과 쿠바가 수교한다면 훨씬 더 큰 충격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리오사씨는 "문제는 북한이 아직도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며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성사된 '제네바 합의'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철회된 것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해 미국 프로농구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을 초청한 데 대해 "북한 인민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자기 과시용으로 로드맨과 같은 사람을 공식으로 초청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쿠바와 북한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지 말라"며 "같은 사회주의 체제이고 독재체제를 형성하고 있지만, 쿠바는 살아 있는 인물에 대한 우상화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에서는 행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며 "특히 북한의 인권 상황은 쿠바의 인권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아리오사씨는 이미 쿠바사회의 개방은 되돌릴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현 사회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시장이 열리고 경제구조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리오사씨는 "큰 틀의 경제개혁 방향은 옳지만, 자영업 활성화처럼 지나치게 '마이크로'한 부분에 집중돼 있다"며 "대형 자본유치와 기업들 간의 경쟁구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리오사씨가 속한 쿠바 망명사회는 미·쿠바 국교정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양분돼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정치적으로 망명한 사람들은 이번 국교정상화가 카스트로 정권에 '보상'을 해주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경제적 이유로 고국을 떠난 이들은 대체로 이번 정상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게 중심은 이미 국교정상화를 지지하고 쿠바사회의 개방과 경제발전을 유도하는 쪽으로가고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아리오사씨를 굳이 분류하자면 경제적 망명이라고 볼 수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개인사적 망명의 성격이 강하다. 2000년대 두 아들이 망명한 데 이어 역시 부인인 피게레도 마이라(57)씨가 2012년 망명하자 그 뒤를 좇아 고국을 뜬 것이다.

한국어에 능통한 그는 마이애미 국제대학원에서 격주로 한국과 동북아 역사를 주제로 강의할 정도로 '한국 사랑'이 깊다. "나의 조국과 한국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깊어지도록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는 "한국이 (쿠바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WEEKLY HOT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