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역사 지닌 독도와 천주교의 인연

편집부 / 2015-08-17 17:15:05

시련의 역사 지닌 독도와 천주교의 인연



(독도=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독도와 천주교는 역사적으로 시련과 모진 박해를 당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17일 한국천주교회 대구대교구 울릉도 도동성당이 독도 현지에서 천주교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함에 따라 독도와 천주교의 인연이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 아픔의 역사 지닌 독도

독도는 일본이 끊임없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지금 이 시각에도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영토다.

독도는 그 역사를 들여다봐도 수많은 시련과 아픔을 지니고 있다.

조선조 숙정 시절에는 일본인들의 영토침범과 불법조업으로 자원 수탈이 극심했다.

조선 조정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아 조선 수군 안용복이 직접 일본 에도막부를 찾아가 불법 침범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1904년 러·일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동해의 쓰시마 해전에서는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발틱함대와 일본연합함대가 격돌했다.

우리의 영토인 독도에서 열강이 싸우는 현장을 무력하고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우리의 소중한 민족 자원을 무자비하게 강탈하는 비운의 현장이었다. 독도에 풍부했던 '강치'(바다사자과에 속하는 해양생물)는 일본의 무차별적인 남획으로 수가 급격히 줄면서 멸종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기에는 미군의 독도 오인폭격으로 울릉도 주민을 비롯한 많은 양민의 희생이 있었다.



◇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에 나타난 독도

이런 비운의 역사적 상황에서 독도는 천주교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1846년 편찬한 '조선전도'에는 대부분 산과 강의 이름이 없음에도 울릉도와 독도의 이름만큼은 기재돼 있다.

김대건 신부는 울릉도를 'Oulangto'로 표기했으며 독도를 'Ousan'이라고 뚜렷하게 적어놨다.

독도는 조선후기인 1881년(고종 18년)부터 '독도'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삼봉도', '우산도', '가지도' 등으로 불렸다.

조선전도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 있던 프랑스 신부들에게 조선 입국 경로를 알리려고 만든 지도였다. 김 신부는 지도를 중국인 어부에게 전달한 뒤 체포돼 1846년 순교했다.

그러나 지도는 프랑스로 옮겨져 1851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가 1855년 프랑스 리옹 지리학회보에 축소 수록되면서 6개 국어로 번역돼 서양에 알려졌다.

김대건 신부가 제작·편찬한 지도 덕분에 독도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이 이미 19세기 중엽에 서양에 널리 알려진 셈이다.

현재 조선전도의 사본이 국회도서관과 독도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승진 독도박물관장은 "김대건 신부가 만든 조선전도는 독도의 위치와 명칭을 서양에 알린 최초의 지도"라고 설명했다.





◇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독도 방문

'바보 같은 사랑'을 세상에 뿌리고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이었던 1996년 4월 23일 사제단 9명과 함께 공군 헬기 편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경비대를 위문하고 동백나무 한 그루를 기념식수한 그는 "독도가 갈등과 분쟁의 걸림돌이 되기보다는 평화와 협력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독도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망언이 논란을 일으켰던 당시 김 추기경의 방문은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는 인식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정복석 울릉도 도동성당 총회장은 "당시 김 추기경의 독도 방문은 고위 성직자의 첫 방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번 독도 미사는 김 추기경이 설파한 평화의 메시지와 맥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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