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정 드라이브'로 신·구 정권 충돌 조짐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부패 청산을 선언한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의 전례 없는 사정 드라이브가 신·구 정권의 충돌로 번질 조짐이다.
알아바디 총리와 '전운'이 감도는 상대는 누리 알말리키 전 총리다.
알말리키 전 총리는 2006∼2014년까지 4년 임기의 이라크 총리직을 맡은 인물이다. 지난해 3선 연임을 시도했으나 재임 시 종파 간 갈등을 심화했다는 비난에 막혀 좌절돼 상징적 자리인 부통령으로 물러앉았다.
실권을 잃었지만, 이라크 최대 권력자인 총리를 8년이나 지낸 데다가, 이라크 의회의 시아파 다수정파 법치국가연합의 주축인 다와당을 장악한 터라 정치적 영향력은 식지 않았다.
알아바디 총리도 다와당 부총재 출신이긴 하지만, 알말리키 전 총리와 협력적인 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알말리키 전 총리는 오히려 알아바디 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며 권좌 복귀를 노리고 있다.
알아바디 총리가 9일(현지시간) 전격으로 발표한 개혁 프로그램은 외형적으론 부패 청산을 원하는 국민적 여론에 부응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알말리키 세력과 일전을 선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비용·인력 감축을 명분으로 부통령직을 과감히 없앤 것이 대표적이다.
부통령직이 난데없이 없어지면서 알말리키 전 총리의 헌법적·제도적 공식 직함도 함께 사라지게 됐다.
그가 여전히 법치국가연합의 대표이긴 하나, 이라크 정부가 빼든 사정의 칼날은 수니파보다 알말리키 전 총리의 측근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알아바디 총리로서는 국가적 위기인 IS 사태를 해결하려면 자신의 정치적 통제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경쟁 종파인 수니파의 협력이 필요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알말리키 세력을 '부패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은 상당히 효과적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알아바디 총리가 꺼낸 카드는 지난해 6월 '모술 참패'다.
IS는 알말리키가 총리로 재임하던 지난해 6월 이틀 만에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점령했다. 이는 IS가 거둔 최대 전과이자 이라크 정부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알말리키 전 총리가 두 달뒤 3선 연임을 포기해야만 했던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했다. 미국 정부도 막대한 지원을 했던 이라크군이 변변히 대항하지도 못하고 모술에서 줄행랑치는 것을 목격하고 알말리키 정부에 대한 믿음을 버렸다.
알아바디 총리는 모술 참패를 고리로 알말리키 세력을 '무능한 구정권'으로 몰아붙일 기세다.
모술 참패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이라크 의회 특별조사단은 16일 낸 보고서에서 "알말리키 정부가 부패에 연루된 사령관들을 임명해 모술에 대한 IS의 위협을 오판했고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지도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알말리키 전 총리의 측근인 당시 모술 시장, 전 국방장관 직무대행, 전 군참모총장, 니네베 주(州) 담당 사령관 등 장성급을 책임자로 지목했다.
알말리키 전 총리는 그간 모술에서 패배한 것은 쿠르드자치정부 군사조직 페쉬메르가가 협조하지 않았다거나 다른 경쟁 정파의 모략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비난해 왔다.
이라크 현지 언론 샤파크는 16일 특별조사단의 보고서엔 알말리키 전 총리를 포함한 전 정부와 군의 고위 인사 25명을 기소해야 한다는 권고가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알말리키 전 총리가 대표인 법치국가연합 일부에선 벌써 이 보고서에 대해 "정치적으로 노림수가 있고 사실과 다른 불공평한 내용"이라고 반발하면서 긴장이 고조하고 있다.
살림 알주부리 이라크 의회 의장은 이날 로이터통신에 "모술 패배의 책임자는 누구든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알말리키 전 총리의 측근에 대한 공세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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