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종묘 정전. (시몽포토에이전시=연합뉴스 자료사진) |
<주말 문화재 탐방> 종묘, 일제강점기에도 보존된 명품 건축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70번째 광복절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궁궐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를 파괴했다.
하지만 조선 왕실의 사당이었던 종묘(宗廟)는 크게 훼손하지 않았다. 일제가 종묘 북쪽에 현대식 도로를 내면서 면적이 줄어들고 북신문(北神門)이 사라졌지만, 전체적으로는 온전히 보존됐다.
종묘는 토지와 곡식의 신인 사직(社稷)과 함께 국가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일 만큼 중요했다. 게다가 조선은 충과 효를 중시하는 유교 국가여서 종묘를 매우 중시했다. 50여년간 왕위를 지켰던 영조는 종묘를 119차례나 찾았다.
조선은 '좌묘우사'(左廟右社) 원칙에 따라 경복궁을 중심에 두고 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을 지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나 광해군이 즉위한 해인 1608년에 재건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사적 제125호인 종묘에서 핵심이 되는 건축물은 정전(正殿, 국보 제227호)이다.
조선 왕조의 신위를 모신 정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건물로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하게 지었지만, 보는 순간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답고 분위기가 엄숙하다. 폭이 109m인 월대 위에 폭이 101m인 기다란 전각이 서 있다.
정전은 신위가 보관된 신실(神室) 19칸이 있고, 좌우에 협실 2칸이 있다. 그리고 복도와 같은 5칸짜리 월랑이 양 끝에 수직을 이루며 붙어 있다. 멀리서 보면 좌우가 대칭인 ㄷ자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신실은 광해군이 정전을 중건했을 때는 11칸이었으나 영조와 헌종 치세에 4칸씩 증축했다. 신실 안에는 신주가 봉안된 신주장과 책장, 도장을 넣은 보장(寶藏) 등이 있다.
정전에는 태조부터 순종까지 왕 19위와 왕후 30위의 신주가 있다. 죽은 자는 서쪽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서상(西上) 제도에 따라 가장 서쪽에 있는 신실에 태조의 신주를 두었다.
조선의 왕은 27명이었는데, 정전에 왕의 신주 19개가 있다면 나머지 신주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전 옆에는 영녕전(永寧殿)이란 별묘(別廟)가 있다. '조상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뜻의 영녕전은 정전과 닮았지만 규모가 다소 작다.
영녕전에는 왕 15위와 왕후 17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신주가 있다. 이곳에 신주가 봉안된 왕은 태조의 사대조와 재위 기간이 짧았던 왕, 사후에 추존된 왕들이다. 하지만 반정으로 왕권을 잃은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없다.
종묘에는 정전과 영녕전 외에도 왕이 제례를 올리기 전 머물던 망묘루(望廟樓)와 예물을 관리하던 향대청(香大廳), 국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재궁(齋宮) 등이 있다.
이번 광복절 연휴에 종묘는 무료로 개방된다. 해설사와 함께 관람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