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독일로 떠난 시인…시로 고독을 이야기하다
허수경 시인 새 에세이집 '너 없이 걸었다'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시인 허수경(51)은 1992년부터 독일 소도시 뮌스터에 살고 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 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가에 남아 있다"는 시인은 뮌스터 대학에서 느릿느릿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허씨가 다시 한 번 뮌스터 구석구석을 걸으며 글을 적었다. 시인은 에세이집 '너 없이 걸었다'(난다)에서 천천히 걷고 깊숙이 들여다본 뮌스터의 풍경과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 안에서 느낀 것을 털어놓는다.
그는 뮌스터를 인구 30만 명 중에 5만 명이 학생인 '학생 도시'라고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 지어진 도시이기도 하다.
시인은 몇 년만 더 보태면 일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책에는 그가 타지에서 겪은 고독이 묻어난다.
"뮌스터를 걸으며 나는 내가 떠나온 나의 도시를 생각했다. 그곳에서도 어떤 이방인이 걸으며 시를 읽을까. 낯선 모든 것들을 익숙한 인간의 일로 돌려주는 시를 읽으며 걷는 자의 고독과 기쁨을 껴안을까."(32~33쪽)
각 챕터에는 허씨가 직접 번역한 독일 시인의 시가 곁들여졌다.
시들은 23년째 이방인으로 사는 허씨의 감정을 대변하는 작품이면서, 뮌스터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하이네, 트라클, 괴테, 릴케 등 이미 많이 알려진 시인이 있는가 하면 그베르다, 아이징어, 드로스테휠스호프 등 낯선 이름도 한 번씩 따라 읽게 된다.
뮌스터에서 오랫동안 "몸 없는 유령"처럼 살았다는 시인은 이 작가들의 시로 "자아 없는 겉옷의 삶 같은 이방인의 생활"을 견뎌냈다.
"이방의 시인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도시를 드문드문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시를 통하지 않으면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풍경들. 그냥 그렇게 스쳐가는 이방의 순간들. 시들을 읽으면서 그 순간들이 갑자기 가슴에 먹먹하게 차기 시작했다."(24쪽)
역사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독일을 충실하게 소개하기도 한다. 뮌스터 기차역, 중앙시장, 뮌스터아 강처럼 눈에 띄는 장소는 물론 세세한 골목 풍경과 사람들 표정까지 묘사하며 읽는 이를 초대한다.
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 5번째 책.
244쪽.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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