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공안사범은 배제, 광복 70주년 특사 취지 역행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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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사면 발표하는 법무장관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1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광복 70주년 특별 사면을 발표하고 있다. |
광복절 특사, 법치주의 원칙 속 국민통합·경기회복 방점
재벌 총수 최태원 회장만 포함…실리보단 원칙 선택 분석
시국·공안사범은 배제, 광복 70주년 특사 취지 역행 비판도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단행한 8·15 광복절 특별사면은 그동안 정부가 줄곧 강조해온 '법치주의'를 지키면서도 국민대통합과 경기 회복 도움이라는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 법 감정에 배치되는 재벌 총수들의 사면은 최소화하고 생계형 사범과 중소·영세 상공인 등에 대해서는 관용의 폭을 넓힌 게 이를 뒷받침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치주의 확립과 경제회복이라는 두 사면 원칙 사이에서 균형의 묘를 살렸다"고 평가했다.
◇ 경제인 사면 최소화…법치주의 훼손 비판 부담
이번 특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면 대상에서 재벌 총수들이 대거 배제됐다는 점이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경제회복을 위한 절대적 요건인 대기업 투자·고용을 확대하려면 재벌 총수들을 경영현장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기류가 정부 내에서 강하게 형성됐다.
대기업 회장들에게 국가 경제를 위해 헌신할 기회를 다시 한번 줘야 한다는 재계의 공개 건의도 쏟아졌다.
재계 안팎에서는 국가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과 맞물려 이번에는 재벌 총수들이 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분위기도 감지됐다.
재벌 총수 가운데 애초 사면·복권 대상으로 꼽혔던 인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LIG넥스원 구본상 전 부회장 등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면 명단에 포함된 인사는 최 회장이 유일했다. 최 회장은 특별 복권까지 이뤄져 당장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최재원 부회장은 형인 최 회장이 사면돼 형제의 동시 사면이 어려운 점, 김승연 회장은 이미 두차례 사면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 등이 참작돼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특사에 대해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고심 끝에 당장의 실리보다는 원칙을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공약에서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취임 후 처음 시행한 작년 설 특사에서도 주요 경제인들을 원천 배제하면서 이런 원칙을 지켰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경제살리기'라는 명분만으로 국민 법 감정을 무시하고 지금까지 유지해온 법치주의 원칙을 스스로 뒤집기가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여기에 최근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구치소 특혜' 논란과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 등으로 재벌 일가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한 것도 막판에 박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역대 6번째 규모 특사…국민대통합·사기 진작 원칙 충실
박 대통령은 재벌 총수 사면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과 반대로 서민생계형 사범과 중소·영세 상공인 등을 대거 사면 대상에 포함하면서 국민대통합과 국민 사기 진작이라는 특사 취지에 충실한 모양새를 취했다.
특별감면 혜택자는 220만6천924명으로 역대 6번째 규모다. 여기에는 운전면허 취소·정지·벌점, 건설분야 행정제재, 소프트웨어업체 입찰참가제한 등의 각종 제재의 면제·감면이 포함됐다.
다만, 무분별한 사면을 막고자 명확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사면 대상이 선정됐다고 정부는 강조했다.
형사사범은 부패·강력범죄,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범죄를 제외하고 생계형 사범과 초범·과실범 등을 중심으로 사면됐다.
경제인의 경우 최근 6개월 내 형이 확정됐거나 형 집행률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한 자, 현 정부 출범 후 비리를 저지른 자, 벌금·추징금 미납자는 빠졌다.
행정제재 면제·감면과 관련해서는 상습 음주운전과 뺑소니 사범, 금품수수 범죄를 저지른 건설·소프트웨어업체 등이 제외됐다.
사회지도층에 대한 면죄부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정치인은 이번에도 사면 대상에서 원천 배제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작년 설 특사에 이어 이번에도 시국·공안사건 관련자들은 배제해 사회적 갈등 치유와 사회통합이라는 특사 목적에 다소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한 관계자는 "국민화합을 얘기하면서 통일·인권·노동운동을 하다 사법처리된 사람들을 배제하면서 광복 70주년 특사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집행유예가 확정돼 이미 경영 일선에 복귀한 김승연 회장이 특별 복권 대상에서 제외된 데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책임 경영'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면법에 따라 집행유예 중인 김 회장은 그룹 계열사의 등기이사로 등록할 수 없다. 경영권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인의 경우 사면 취지와 일선 경영현장의 괴리가 나오지 않도록 복권의 세부 기준 등을 면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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