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문제·피해자의 고통, 일제 때 시작"<환경단체>
광산개발·공장운영…한일 시민사회, 피해자 활동 공동전개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을 캐기 위해 한국에서 석면 광산을 개발한 탓에 양국 시민이 석면 피해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석면 광산이 처음 개발된 때부터 현재까지 주요 일지와 피해자들의 증언 등을 담은 '광복 70년을 계기로 돌아본 한일관계와 석면문제' 보고서를 13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충남 홍성에 아시아 최대 석면 광산인 '광천광산'을 개발하는 등 1920∼1940년대 우리나라 석면 광산 개발에 힘을 쏟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일본이 개발한 우리나라 석면광산은 남북을 합쳐서 46개였다.
광천광산 일대는 한국 최대의 석면피해자 발생 지역 중 하나로, 2011년부터 시행된 석면피해구제제도 도입의 단초를 제공한 곳이다.
1937년 중일전쟁 후에는 한국인 징용이 본격화돼 수많은 재일 한국인들이 석면 산업 시설에서 강제로 일하게 됐다.
광복을 맞이한 1945년 후에도 일본에 남은 한국인 중 일부는 오사카 센난·한난의 석면공장에서 일했다.
당시 오사카에 사는 한국인은 45만명에 달했다.
이곳에서 나온 석면은 일본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치르는 국가에 판매할 군수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됐다.
1971년에는 일본 최대 석면 공장인 '니치아스(현 제일E&S)'가 부산으로 청석면공장을 이전했고 1994년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가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했다.
이 여성은 한국 최초의 석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일본과 독일의 석면방직 기계를 들여온 제일E&S는 최근까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직업성 석면 환자를 발생시켰다. 석면 피해자는 '환경성'과 '직업성' 질환자가 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석면 사용을 금지하고 석면피해구제제도를 도입했다. 한국도 2009년부터 석면 사용을 금지했으나 구제제도는 2011년에서야 시행에 들어갔다.
이후 한일 시민사회는 석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류하며 피해자 대책 활동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
보고서는 석면폐에 걸려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는 재일동포 2세 간호사 오카다 요오코(여)씨의 사례를 들며 한일 석면 피해자들의 애환을 소개했다.
중소 규모의 석면방직공장이 밀집한 센난시에 살던 오카다씨는 아기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6년간 석면 방직공장을 오갔다.
30여년의 잠복기가 지나고 오카다씨는 31세에 석면질환의 초기 증세라고 할 수 있는 흉막비후 진단을 받았다.
49세에는 석면폐 진단을 받았고, 다음 해부터는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할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졌다.
한국인인 오카다씨의 아버지와 일본인인 어머니도 모두 석면폐로 사망했다.
보고서는 "오카다씨는 일본의 석면 광산 개발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입은 피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며 "일본이 전쟁을 위해 한국에 석면광산을 개발해 피해를 줬으니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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