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달려온 15년…충주 태극기 전도사 연종택씨
태극기 치장한 자전거로 충주 3바퀴 일주가 일과…'태극기'로 개명 나서기도
(충주=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태극기가 많아진 걸 보면 뿌듯하긴 한데 우리가 너무 눈에 보이는 것만 신경 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가릴 것 없이 태극기 게양 운동이 한창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태극기 사랑에 모든 걸 걸다시피 한 사람이 있다.
충북 충주에 사는 연종택(71)씨다. '연태극기'라는 예명에서부터 그의 유별난 태극기 사랑이 묻어난다.
지난해 9월 본명을 버리고 아예 '태극기'란 이름으로 개명을 하려고 법원에 갔다. 법원 직원은 "개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칠십 평생을 써 온 이름을 바꾸면 생활에 엄청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오히려 그를 설득했다고 한다.
연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지켜본 2000년부터 '태극기 전도사' 역할을 해오고 있다. 벌써 15년이 흘렀다.
이른 아침 온통 태극기로 꾸며진 옷을 입고 곧바로 동네 청소를 시작한다. 충주역을 출발해 충주버스터미널까지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오후에는 태극기로 뒤덮인 자전거를 타고 충주 시내를 세 바퀴 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그의 시내 일주는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계속된다. 단, 눈비 오는 날은 쉰다. 운전자들에게 방해가 될까봐서다.
이러다보니 충주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태극기 오빠'에서 시작해 '태극기 아저씨'를 거쳐 이제 '태극기 할아버지'로 불린다.
태극기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애정 뒤에는 개인과 집안의 아픈 역사가 있다.
그의 두 형은 한국전쟁 때 고향에서 행방불명됐다. 영락없이 죽은 줄만 알았는데 북한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이런 가족력은 집요하게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어렸을 적부터 가슴에 품어온 장군의 꿈을 이루려고 육군 간부후보생에 지원해 합격했지만 막판 신원조회에서 탈락했다. 월남전 참전 신청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임용시험에도 합격했지만 역시 신원조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철도청에 들어갔지만 서울역에 23일 근무한 뒤 다시 쫓겨나고 말았다.
모든 걸 포기했을 즈음 기적처럼 한국전력에 입사해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다.
그는 '4형제 독립운동가'인 집안 할아버지들의 덕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퇴직을 해 여유가 생기고 남북 정상회담 장면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가슴에 묻어뒀던 '국가', '태극기'란 단어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마음에만 있었지 남의 눈이 신경 쓰여 태극기의 '태'자도 못 꺼냈어요. 공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걸 보면서 내가 받은 혜택을 나라와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태극기 사랑 운동에 광복 70주년까지 겹치면서 사방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는 그의 심정은 어떨까.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리는 걸 보는 게 꿈이었는데 흐뭇하죠. 그렇지만 혹시 우리가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경제도, 정치도 좀 그렇잖아요. 국민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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