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목숨만큼 팔레스타인 아기 목숨도 소중하다"
비슷한 시기 발생해도 관심 천지차…"분쟁지역 희생에도 관심을"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지난달 27일 짐바브웨의 '국민사자' 세실이 사냥꾼의 화살에 맞고 목이 잘린 채 발견됐다. 사냥꾼의 꼬임에 넘어가 국립공원을 이탈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재미로 사냥에 나섰던 미국인 의사에게 즉각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전세계가 공분했고 의사의 집 앞에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나흘 뒤인 31일 새벽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가정집이 화염에 휩싸였다. 세상 모르고 잠을 자던 18개월 아기 알리 다와브샤가 불에 타 목숨을 잃었다.
극우 이스라엘인들의 기습 방화로 두 돌도 안된 아기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다와브샤의 부모도 중상을 입었다.
다와브샤의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좌파 정당 리스펙트의 조지 갤러웨이 대표는 다와브샤의 죽음이 세실 사건에 묻힐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의 피값은 싸다"면서 "세실 살육에 대한 기사는 지금까지 많이 나왔고 다와브샤 살해에 대한 기사보다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갤러웨이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다와브샤의 무고한 죽음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항의시위와 사태확산을 막으려는 이스라엘 측의 수습 상황 소식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2∼3일 후에는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반면 세실 사태는 1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유엔이 밀렵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전면에는 멸종위기 동물 보호를 위한 동영상이 상영됐다.
항공사들은 사냥 전리품을 싣지 않겠다면서 세실 도륙으로 인한 공분에 동참했다. 사냥꾼 의사의 집에는 '사자 킬러'라는 페인트 낙서가 등장했다.
전세계가 세실의 운명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이 짐바브웨 언론 '더헤럴드'는 지난 3일 '사자 목숨은 중요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어떤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더헤럴드는 "서방에서 세실의 살육을 떼지어 규탄하는데 다와브샤의 사망에는 어떨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면서 "팔레스타인 18개월 아기의 피보다 아프리카 사자의 목숨이 값진 사람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영자지 아랍뉴스도 세실이 소중한 동물인 것은 사실이고 사냥꾼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세실 사건에 쏠린 세인의 관심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신문은 트위터에서 세실과 다와브샤의 죽음을 다룬 주제어 해시태그(#) 수가 크게 차이가 난다고 지적하면서 소셜미디어에서 특정 사건으로 여론이 치우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트위터 주제어로 살펴봤을 때 세실(#CecilTheLion)은 7일까지 84만회 등장한 데 비해 다와브샤(#AliDawabshe)는 1만5천회에 그쳤다.
사자의 죽음에 가슴아파하면서도 서글픔을 느낀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비무장 흑인이 대학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는데도 세실의 죽음만 부각되자 흑인 작가 록산느 게이는 "집을 나설 때 총에 맞을 경우를 대비해 사자 복장을 하고 나설 것"이라면서 "그러면 사람들이 날 보호해 주겠지"라고 트위터에 썼다.
독립방송사 사회자인 엘턴 제임스 화이트도 트위터 계정의 공개 사진을 사자로 바꾼 뒤 "미국의 흑인은 사자 복장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러면 살해되더라도 모두가 슬퍼할 것"이라고 한탄했다.
전세계가 세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변에서는 다와브샤를 추모하는 작은 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모래에 젖병 모양과 다와브샤의 이름을 새기고 무고한 죽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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