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자들, 원폭 70년 맞아 '핵감축' 한목소리
美언론, 원폭 투하 정당성 논란·생존자 경험담 등 조명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70년을 맞은 6일 서방 및 세계 각국 지도자급 인사들은 올해를 역사적 기회로 삼아 각국이 핵무기 감축 노력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히로시마 피폭 70년 기념일인 이날 마이니치신문 기고문에서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무기에 귀중한 국력을 낭비하지 말라"며 "인류의 요구를 총족할 대담하고 세계적인 비전을 수용하라"고 당부했다.
반 총장은 "핵 군축의 긴급성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피폭자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하고 싶다"며 "원폭 투하 70년을 맞는 올해 군축을 실제로 진전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이날 원폭 70년 기념 위령식에 보낸 기념사를 통해서도 "5년 전 히로시마를 방문해 원폭 생존자들을 직접 만난 뒤부터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다"면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유엔은 그들 편에서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히로시마 원폭은 전쟁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을 매우 강하게 일깨운다"며 "미국은 러시아 등 다른 나라와 함께 핵무기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중인 케리 장관은 이날 히로시마 원폭 70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하면서, 특히 원폭 70년이 이란 핵협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고 강조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5일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2차 세계 대전과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은 2차 대전과 원폭 투하는 세계 역사에서 매우 끔찍한, 전적으로 불필요한 사건이었다면서 "이런 위험은 예견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날 미국 등 서방 언론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정당성 논란에 대한 전문가 기고문과 생존자 인터뷰 등을 잇따라 소개하기도 했다.
영국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앤드루 로버츠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원폭 투하가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했다.
그는 "1만대의 전투기, 가미카제 자살 공격 등 일본의 당시 저항 수준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일본군을 봉쇄하고 재래식 폭격만 계속하면서 그들의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히로시마와 같은 주거지역이 아닌 비주거지역에 원폭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논쟁에 대해서도 그는 "불행하게도 당시 동맹군에겐 두 개의 폭탄밖에 없었기 때문에 보여주기용으로 폭탄을 낭비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원폭 투하가 없었다면 더 많은 공습으로 수만 명의 일본인이 목숨을 잃고 더 많은 도시에 대한 공격, 봉쇄 작전으로 대규모 기아 사태가 초래됐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원폭 투하 당시 포로로 잡혔던 미 육군 소속 레스터 테니는 WSJ에 자신의 참전 경험을 소개한 기고문을 실어 "원폭 투하는 절대 항복은 있을 수 없다고 했던 일본군의 믿음을 뒤집어버렸다"면서 "일본의 항복으로 우린 살아났다"고 회고했다.
반면 원폭 생존자인 다케오카 치사코(87)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원폭 투하가 있고 나서 몇 주 뒤 히로시마를 가로지르는 강물엔 불 탄 시신들이 넘쳐났다"고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17세의 나이에 군수공장에서 일을 했다는 다케오카는 폭발의 충격에 어머니의 눈동자가 튀어나왔으나, 의료 물자가 부족해 의사가 마취도 없이 어머니의 안구를 제거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또 자신도 원폭 투하 2년 뒤 첫 아들을 낳았지만 18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털어놨다.
또 폭격 2년 뒤 태어난 첫 아들 역시 18일 만에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미국에 화가 났지만 원폭이 전쟁을 단축시킨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더 일찍 항복했어야 했다"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1945년 8월6일에 8살 생일을 맞았다는 오구라 게이코도 BBC에 "엄청난 섬광과 폭발음이 있은 뒤 숨을 쉴수가 없었고 그대로 기절했다. 깨어났는데 아무것도 안보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밤인 줄 알았다"고 당시 기억을 되짚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보니 살아남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도와 달라고 외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면서 "사람들이 넝마 조각을 걸치고 달아나는 듯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피부가 벗겨져 덜렁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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