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냐 안보냐'…핵합의안 놓고 이란 정부-보수파 전운
대통령 협상성과 부각 속 최고지도자 잇단 반미 메시지 배경 주목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핵협상 합의안(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놓고 이란 정부와 군부·의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정면 대결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양측의 첨예한 마찰은 '경제냐 안보냐'의 대결로 요약된다.
핵협상을 주도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등 정부는 국내외에 핵협상의 성과를 부각하면서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보수파는 JCPOA가 이란의 기밀시설까지 사찰하도록 허용해 안보 주권을 훼손했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국영방송과 라디오에 출연해 핵협상 타결의 긍정적인 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가 TV에 등장한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일방적인 연설이 아니라 남녀 진행자 2명과 문답을 주고받는 토크쇼 형식을 도입해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설정했다.
방송 시간도 황금시간대인 9시로 잡았다.
로하니 대통령은 핵협상 타결의 경제적 효과를 수차례 강조했다. 2013년 40%였던 물가상승률을 2년 뒤 한자릿수로 잡고, 2021년까지 매년 8%의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압바스 아락치 외무차관 등 핵협상 대표단은 거의 매일 이란 언론과 인터뷰나 기고를 통해 경제·금융 제재가 풀리면 이란이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그려내는 데 여념이 없다.
이란 정부는 3일 이란 핵협상에 참여한 관리들을 폄하하고 국익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보수 주간지 1곳을 정간하고 유력 보수 일간지 카이한과 인터넷 매체 라자뉴스에 경고조치했다.
이란 언론감시이사회는 "이란 핵협상은 최고지도자의 지휘 아래 이뤄낸 중요한 일로 불공정한 말로 쉽게 비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란 보수진영의 움직임도 서서히 가사화되고 있다.
현직 군인이기도 한 호세인 데흐칸 이란 국방장관은 지난달 20일 "이란은 외국이 우리 군사시설을 사찰해 이란의 국방과 미사일 능력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미사일 관련 문제는 이번 핵협상의 의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란 보수파의 핵심부인 혁명수비대(IRGC)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 사령관도 이날 "핵협상안의 일부 내용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설정한 '레드 라인'(한계선)을 넘어섰다"며 "특히 이란의 군사시설 부분이 그렇다"고 제동을 걸었다.
관변단체 성격의 바시즈민병대의 학생조직도 최근 "대(對) 이란 제재를 복원하고 이란의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것에 반대하며 JCPOA 실행을 늦춰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경제정책 성공을 내세우는 로하니 정부를 겨냥해 일부 보수파 의원들은 주택 보급 실패의 책임을 지워 도로·도시계획부 장관 탄핵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재 해제 뒤 풀릴 해외 동결자산 규모를 놓고도 예상보다 적다며 시비를 걸고 나섰다.
로하니 정부에 대한 보수파의 압력은 총선이 열리는 내년 2월까지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JCPOA가 일정대로 순조롭게 이행되고 이란 정부가 그 경제적 효과를 과시하면서 여론전을 편다면 현재 보수 일변도인 이란 의회의 지형이 내년 총선에서 뒤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으로선 정부에 이어 의회까지 중도·개혁파가 주도하는 상황은 무척 곤혹스럽다. 현 정부의 최대 성과인 핵협상을 되도록 평가절하해 다음 총선에서도 승리해야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로하니 대통령으로서도 2017년 차기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하려면 이런 보수파와 일전을 피할 수 없는 입장이다.
최종 결정권을 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의중은 안갯속이다.
핵협상을 지지하고 결과를 치하한 하메네이는 최근 잇따라 수위 높은 반미 메시지를 내보내며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이를 두고 예상보다 강경한 미국 의회의 핵협상 반대 움직임에 대응하려는 보여주기식 맞불 작전이라는 해석과, 핵협상안을 결국 거부하려는 포석 아니냐는 관측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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