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전세계 울린 14살 소녀의 일기
(서울=연합뉴스) "나를 잘 안다는 사람들이 내게 다른 면이 있다는 걸 알아챌까 두려워…평상시의 나는 그렇게 놀림 받는 것에 익숙하지만, 더 깊은 이면의 나 자신은 그렇지 않거든" (1944년 8월1일자 일기)
14살 소녀는 이 일기를 쓴 지 사흘 뒤 일기장을 영영 덮어야 했다. 나치 독일 치하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 한 사무실에 무장한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와 네덜란드 경찰이 들이닥쳤다.
사색이 된 사무실 직원들에게 게슈타포는 '다 알고 왔다. 은신처로 안내하라'고 윽박질렀다. 비밀 통로로 쓰이던 사무실 벽 책장이 맥없이 열렸고 뒤편에 숨어 있던 유대인 일가가 게슈타포의 권총 앞에 손을 들었다.
1944년 8월4일 가족과 함께 나치에 체포된 소녀는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Anne Frank·1929∼1945). 나치 패망만 기다리며 2년 넘게 숨 막히게 이어간 은신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안네는 부모, 언니와 함께 수용소로 끌려갔다. 안네는 체포 6개월 만인 1945년 2월 베르겐 벨젠(Bergen-Belsen)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다 장티푸스로 숨졌다.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 오토 프랑크(Otto Frank·1889∼1980)가 1947년 딸의 일기를 엮어 펴낸 '안네의 일기'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가장 생생한 증언으로 꼽힌다. 유복한 유대계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전쟁의 광풍에 밀려 좁은 은신처에 숨어 살아야 했던 10대 소녀의 일기는 전세계인을 울렸다.
일기에는 창문마다 커튼을 치고 햇빛조차 못 보는 '유령'으로 지내면서도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싶은' 어린 소녀의 삶의 희망과 고민이 가득했다. '안네의 일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베르겐 벨젠 수용소 옛 부지에 세워진 안네의 비석에는 지금도 전 세계 추모객의 꽃다발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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